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참 이상한 나라다. 얼굴을 직접 맞대고 보고 받는, 이른바 ‘대면보고’라는게 뉴스가 되고 심지어는 논란까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작년 7월21일자 한 중앙일간지 1면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박 대통령의 변화 수석 비서관들과 마주앉아 보고 받아’
요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에 청와대 각 수석실별로 대면보고를 받았고, 이 자리엔 취임후 처음으로 비서관들도 함께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취임 1년 4개월만에 박 대통령이 비서관들에게까지 보고받았다는 건 소통을 강화한 거니 잘 된 일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이제야 비서관 대면보고를 받은 거니 때늦은 감이 있다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는 혹평이 이어졌다.
세상에 대통령이 대면보고 받았다는 걸 뉴스로 만드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참 재미있는 정부요, 나라다.
얼굴을 맞대고 올리는 보고가 제일이라고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대면보고를 하는 일은 그 사람의 표정을 통해서 정보와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 수시로 묻고 따질 수 있어 보고자를 긴장시키거나 분발케 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이다.
요즘은 전자결재가 보편화돼 왠만한 사안은 컴퓨터로 끝낼 수 있지만 중요사안에 대해선 여전히 사전보고하거나 결재를 받는다. 일부 공무원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하직원 몫까지 가로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눈총을 사는 일도 없진 않지만.
하여튼 기관이나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특정사안에 대해 사전보고나 결재를 받는다는 것은 소통을 통한 원활한 업무처리와 자신의 뜻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흑산도에서 귀양살던 자신의 중형 정약전과 고경(古經 )인 서경(書經)에 대해 토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얼굴을 맞대고 직접 아뢰게 하는 것이 고적(考績:공직자의 업적 평가)법으로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차선책으로는 자신의 공적사항을 기록해서 올리도록 하는 일이다.” 다시말해 최고 책임자가 아랫사람을 직접 만나 자세한 업적과 업무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이 가장 훌륭한 평가방법이라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장관쯤 되면 수시로 대통령을 만나 국정운영을 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중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나마 장관들을 자주 만난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횟수는 1년에 4번 정도. 국가비상사태와 같은 경우에는 예외이겠지만 1년에 4번 대면은 그나마 감지덕지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장관들이 대통령을 제때 대면조차 못하니 ‘대면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TV에서나 대통령 얼굴을 본다면 일반 국민들과 뭐가 다를 게 있나. 스타 장동건의 아내 고소영에게는 장동건이 남편, 애 아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장동건, 고소영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를 대면하는 자체가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대면보고 기사가 나간지 1년이 지난 지금, 대면보고가 또 뉴스가 되고 있고 불통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국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 지뢰도발사건을 대면보고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네차례 서면보고했고 유·무선으로 구두보고를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실질 책임자인 한민구 국방장관은 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조차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때는 사고 7시간이 지나도록 회의를 주재하거나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땐 확진자 발생 6일 뒤에야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면보고를 했다.
중대사안이 발생할때마다 대통령이 보고를 언제, 어떻게 받았느니 따진다는 건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헌법에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과 장관이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헌법이 요구하는 헌정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요즘과 같은 난장판 세상에서 서면보고로만 일을 처리하고 지시만 내린다면 소통이 되고 정당한 판단과 옳은 정책을 세울 수 있을까. 
올 신년기자회견때 박 대통령의 말. “옛날에는 전화도 없고, 이메일도 없고...지금은 그런 것이 있어서 전화 한통으로 빨리빨리 해야 할때가 더 편리할때가 있어요.” 그러곤 장관들을 돌아보며 쐐기를 박는다. “대면보고,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이쯤돼서 “예, 필요합니다”라고 대답할 장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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