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 / 충북대 교수)

▲ 권수애(논설위원 / 충북대 교수)

지하주차장을 주로 이용하는 터라 현관 게시판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며칠 전 무심코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던 중 게시판에 붙어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거주지 주변에서 일정거리 떨어진 곳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공지내용이었다. 평소 평화롭고 조용한 동네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왔다. 오래 전에 어린이 성추행 미수범이 나타났다는 내용의 문자를 지인들에게 재빨리 발송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였다는 한 학부모의 기지와 의로운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성범죄 전과자가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과 함께 긴장이 되었다. 하물며 어린 딸을 둔 가정에서의 불안과 근심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성범죄자가 병원 이송과정에서 탈출하여 도망하던 짧은 시간에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른 최근의 사건 보도를 보니 사회 4대 악으로 꼽히는 성범죄의 심각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파렴치한 성범죄 사건도 많으나, 일반적으로 신뢰할만한 직업을 가졌거나 존중받을 만한 직위에 오른 사람들의 성관련 범죄 사건도 적지 않다. 사기업은 물론 군대나 학교와 같은 공직사회에서의 성추행 사건도 자주 보도되고, 성추행 사건을 조사하던 교육청 감사관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였다는 의혹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양성평등 기본법에 의하여 모든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에서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가정폭력에 관한 교육을 일정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관련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가장 청정해야 할 학교 현장에서, 그것도 미성년을 교육하고 보호해야 할 교사들이 제자나 동료 여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 성폭력  사건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한 보도에 의하면 교사의 성범죄가 해마다 늘어나고, 2009년 이후 피해자 중 40%가 제자이고 20%는 동료라고 한다. 수 년간 청소년 성폭력을 상담해온 모 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어떤 경우가 성희롱이고 어떤 것이 성추행인지 조차 잘 모르는 어른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학교에서의 성폭력 예방교육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학교가 오히려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철저한 예방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폭력 가해자들 중에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진심으로 뉘우치지 못하는 것이 더욱 실망스럽다. 그런 정도의 말이나 행동은 호의를 가진 사람에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절대로 고의가 아니고 상대를 불쾌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는, 자신의 딸이나 손녀 같은 마음에서 농담을 했다거나 가볍게 신체를 친 것 뿐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우리를 더욱 화나게 만든다. 빤한 거짓말로 발뺌하며 비열해 지지 말고 우선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를 빌며 뉘우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피해자를 자신의 가족으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해답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신중하지 못한 자신의 가벼운 처신이 상대방에게는 심한 불쾌감과 모욕이 되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교육, 업무, 고용 관계기관에서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철저히 하고 사건 관리의 책임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직장과 사회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는 성적 표현 이나 신체 접촉 등으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거나 사적 만남이나 교제를 요구하는 행위에 불응하여 불이익을 받는 일 없도록 말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해자는 엄중하게 처리하여 다시는 그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야 한다. 건강한 사고와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몰염치한 사람들은 설 땅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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