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 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인류진화(人類進化)의 역사는 직립보행(直立步行)에서부터 시작된다. 걷을 때, 발뒤꿈치에 느껴지는 충격이 척추를 타고 직접 뇌로 전달되자 자극을 받은 뇌는 점점 활성화 되고 커졌다.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척추동물들보다 정보를 축적하고 전달하는 것을 더 용이(容易)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 새롭게 등장한 수단이 언어(言語)다. 말을 하기 위해서 인간은 보다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연약한 구강구조(口腔構造)가 필요했다. 불의 이용을 통해 익힌 음식을 먹는 습관이 이를 가능케 했다. 그리하여 ‘직립보행, 불의 이용, 언어사용’의 세 가지 사실은 전기구석기시대(前期舊石器時代)의 시작, 즉 인간출현의 지표(指標)가 되었다. 직립보행이나 불의 이용은 언어사용이라는 항목을 위해 가는 과정에 놓인 것들이다. 
인류의 3대 발명품으로 ‘문자, 종이, 인쇄술’을 드는 경우를 종종 본다. 3가지 모두 언어자체거나 이를 기록하는 수단이다. 결국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을 정의하는 가장 객관적 수단이 바로 ‘언어사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실(其實) 언어는 그것 자체로 존재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지식이나 감정, 또는 정보 등을 운반하고 있지 않다면 언어는 오히려 소음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을 결정짓는 것은 직립보행도 아니요, 불도 아니요, 언어도 아니다. 다만 사회를 통해 형성되는 지식과 감성을 기초로 한 인간의 본질적 가치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이 본질적 가치의 학습과 이의 형성과정에서 ‘언어’가 하는 역할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다.
언어의 형태 중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는 것이 ‘말’과 ‘글’이다. ‘말’이 최초의 인간을 정의(定義)하는 표식인 반면, ‘글’은 ‘말’이 가진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기려는 욕구에 의해 태어난 말의 진화형(進化形)이다. ‘말’은 어떤 사람이 말을 하는 동안에만 들을 수 있다는 시간적 한계를 가진다. 또한 말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명확히 닿는 거리 내의 사람들만이 그 말의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공간적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글’은 이 두 가지 한계를 극복하게 해 준다. 독자들은 글을 쓴 이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어도 그 글의 내용을 전달받을 수가 있다. 인쇄술이 발명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글’에 비해 능동적이고 즉시적인 성격을 크게 가진 말이 사용빈도가 훨씬 높다. 결국, 언어 중에서도 ‘말’이 인간에게 인간의 가치를 인간답게 유지하게 하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일 것이다. ‘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졌다. 육체는 활동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살 수 있다. 정신은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생존범위의 한계로 실재한다. 이때, 육체활동의 에너지원(Energy源)은 음식이다. 음식을 통해 영양소와 미네랄(Mineral)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은 존재할 방법이 없어진다. 반면, 정신적 ‘존재의식’은 지식이나 감성의 크기와 상관이 있다, 지식과 감성의 크기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넓혀가는 경험의 세계에 비례한다. ‘호기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자기가 알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끌어내는 동력(動力)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대한 열정은 그 일에 대한 사랑을 이끌어 낸다. 결국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인식 즉 정신세계는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성장한다. 따라서 육체활동의 에너지원인 음식에 상응(相應)하는 정신활동의 에너지원은 사랑이다.
이 음식들을 먹는 도구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가 왔다. 육체를 위해 음식을 먹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숟가락이다. 이에 반해 정신의 음식인 사랑을 먹는 가장 유용(有用)한 도구는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말로 베인 상처는 낫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며, 말로 들은 칭찬은 천금(千金)의 돈보다 더 짙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인간의 모든 정보는 언어를 통해 살아 움직인다. 인간의 역사는 언어의 사용에서 시작되었으며, 언어가 사라지는 날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 머물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말은 다른 척추동물들과의 경쟁에서 인간을 탁월(卓越)하게 앞서 나가게 한 근본원인이다.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의 존재가치를 확립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말은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조화를 이끌어 내고 이를 수단으로 인간사회의 근본모습을 디자인하는 무형의 수단이다. 그러나 결국 그 말에서 호기심을 발로로 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지식과 정보가 빠져있는 한, 말은 단순한 의미 없는 소리의 구성에 불과해 진다. 인간의 근본요소를 결정짓는 ‘언어’와 이들 중에서 가장 유용한 수단인 말, 그리고 이것이 사랑을 통해 어떻게 한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에 대해 우리는 이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고 교육적 목표이며 교육자체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잣대이다. 가을의 문은 올 해도 어김없이 열리고 있다. 새로 맞을 천고마비의 계절에 우리의 정신을 배 불리기 위해 한 소쿠리 사랑을 ‘말’에 실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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