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10여년도 지난 일이다. 태안군청에서 연락이 왔었다. 골프장 건설과 관련하여 추진하려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치열하게 대립하여 토론회를 여는데 사회를 맡아달라고. 태안군에서 사회자를 추천했는데 A는 골프장 측에서 반대해서 안되고 B는 반대하는 측에서 안된다고 하는데 필자는 양쪽 모두 괜찮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동의를 하고 토론회날 가보니 토론장 분위기가 살벌하였다. 골프장추진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여차하면 데모라도 할 듯 전투모드를 하였다.
 토론회 진행과 관련하여 몇 가지 주문을 하고 찬반토론을 벌였다. 찬성측은 속칭 잔디박사라는 인사를 내세웠는데 인상 깊은 주장은 골프장에 뿌리는 농약이 벼농사에 뿌리는 농약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반대 측은 환경관련전문가를 내세웠는데 적절한 반박을 하기보다는 골프장의 유해성에 대해 포괄적인 주장을 하였다. 방청석에서 반대의견을 내세우긴 했지만 합리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이었다. 저울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토론회를 무사히(?) 마친 후 반대측 관계자들이 나에게 다가와 서운한 감정을 표시하였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진행에 대한 불만보다는 자기들 편을 들어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 섭섭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회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게 진행을 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편파성시비에 휘말려서 토론회 결과 자체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그 당시 필자는 반대 측이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대응도 적절하게 하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였다.
 중재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하여 사법상의 권리 기타 법률관계에 관한 분쟁을 법원의 소송 절차에 의하지 않고 사인인 제삼자를 중재인으로 선정하여 그 분쟁의 해결을 중재인의 결정에 맡기는 동시에 최종적으로 그 결정에 복종함으로써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중재인은 어느 한족에 치우침이 없이 불편부당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갈등의 내용에 관여하지 말고 갈등을 풀어가는 절차의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갑질을 하는 고용주와 피해를 당한 을의 관계처럼 이해당사자간에 힘의 불균형이 심할 때에는 실질적인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절차와 과정의 공정성 못지않게 결과의 공정성이 확보될 때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정당성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양쪽의 의견을 들어주고 서로 공방을 벌이게 하는 활동이라 쉬운 것처럼 보여도 사실상 웬만한 내공을 쌓지 않으면 진땀나는 과정이다. 진행하는 동안 자칫하면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 수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 표정 하나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따라서 성공적인 중재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중재자는 갈등의 범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갈등당사자들의 인식 틀(frame) 즉 갈등주체들이 상황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끝나면 갈등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확인하여야 한다. 갈등과 관련된 사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한 정보수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게 좋다. 자신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본인이 쉽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한 사실자료는 편향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사실(fact)에 기반하여 자료를 수집하면서 주의할 것은 ‘가치(value)에 근거한 자료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흔히 사실은 객관적으로 검증이 가능하고 가치는 주관적인 것으로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상황에서는 사실에 관한 주장과 가치에 관한 주장이 혼재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거나 공동조사를 하는 것도 이를 위한 한 방법이다.
 지시와 복종에 익숙한 수직적 문화에서 중재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권위적인 사회에서 민주적인 사회로 변하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사기성있는 중재자가 아니라 진정성있는 역량을 갖춘 중재자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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