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 박 종 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한국 재벌 중 한 분이 한국의 정치는 제4류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했던가. 정치의 산실이어야 할 19대 국회는 국회 선거구 획정위원회 기구를 통하여 금년 4월 13일에 치러지는 20대 국회의원들에 대한 선거구를 획정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불발된 채 회기를 넘김으로써 ‘최악의 국회’,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남겼다. 입법을 본질적 기능으로 하는 국회가 1만여 건의 법률안(70%에 해당)을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하는 입법마비 사태를 초래케 한 것이다. 여야 5분의 3이 동의하여야만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는 국회선진화법의 독소조항 때문에 국회는 이 안건을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 13일부터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38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 등이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대통령도 지난 1월 18일 서명현장을 방문하여 “저도 노동개혁법?경제활성화법 등을 통과시켜달라고 했는데도 안 돼 너무 애가 탔는데 여러분들의 심정은 어떠실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힘을 보태려고 참가하게 됐다고” 말하고 서명을 하였단다. 대통령이 서명을 하자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동참하였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그리고 국무총리가 뒤따랐다.
대통령과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길거리 서명운동 참여에 대하여 학자와 정치평론가들은 국회의 입법태업을 풀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절박한 심정이나 충정 등은 이해가 가나 헌법으로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최종적 문제해결의 책임(미국의 해리 투르먼 대통령이 백악관 책상에 붙여놨다는 ‘국정의 모든 책임은 최종적으로 자기 앞에 멈춘다’는 뜻의 The buck stops here라는 글귀와 같이)을 타에게 전가한다는 인상과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국정통제능력과 리더십 등에 대하여 회의를 갖게 하였고 국회 최대 의석을 가진 여당소속 국회의원이 법을 만들라고 국회에 보냈더니 국회 밖으로 나와서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코미디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한국이 어찌하여 이런 몰골이 되었는지’라는 안타까움이다. 도대체 국민의 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국민부재의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겠다”, “국민의 행복지수를 향상시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력투구 하겠다”던 다짐과 약속은 어디에다 버린 것인가. 도대체 국민이 누구인가. 국가의 주인이 아닌가. 그런데 주인의 재산과 안전을 위해 권한을 부여받고 채용(선거)된 공복(公僕)들이 그 자리를 확보한 뒤에는 아예 ‘국민’의 자리를 치워 버린 것이 아닌가. 오히려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잠깐만 성찰을 하여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의 권익을 위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사안인데도 이를 반대하며 온갖 이유를 달아 ‘나 모르세’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이 법만은 꼭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하는데도 국회는 막무가내하고 있지 않은가. 입법의 총수인 국회의장은 주야를 가릴 것 없이 앞장서서 입법기능의 원활화를 도모하여야 하는데도 한가하게 법절차만 따지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손으로 해를 가리는 행동’을 하고도 선거 때가 되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변명하면서 표를 달라지 않는가. 국회의원들에게는 당리당략 및 자신의 입지강화만 있지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도 국민부재 현상의 비극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과반의 의석이 넘는 국회의원이 존재하는 여당 소속으로서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민생해결에 대한 지혜를 짜내는 것은 물론 국정최고책임자의 권한 내에서 야당과 정치권을 설득하고 협력을 구했어야 하지 않는가. 야당가에서 설득에 응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시도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민익(民益) 앞에 여야가 따로 있어서는 아니 된다. 이는 정치의 본질이고 기본이 아닌가. 이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실천하여야 할 정치인들이 표리부동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국민을 배반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화상을 어둡게 하는 일이다. 국회는 일차적인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서둘러 ‘식물국회 상’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민익의 대변자 및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장막 뒤에 숨지 말고 무대 앞에 나와 설계자 및 진행자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여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