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괴산경찰서 경위

 

#새벽 1시 30분. 정적을 깨고 112신고가 접수되었다. 마을과 다소 떨어진 외딴 집에 커다란 들개가 나타나 자신을 따라다니며 물려고 하여 너무 무섭다는 것이었다. 빨리 출동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4∼5Km 떨어진 인근에서 농산물 절도 예방 순찰 중이던 순찰차를 급히 찾아 출동지령을 했다. 커다란 들개가 사람을 물게 되면 필시 크게 다치거나 소중한 생명까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출동하는 경찰관에게도 장구를 갖추고 대비할 것과 함께 119소방서 구조팀에도 출동 협조요청을 했다.

이윽고 경찰차량 2대가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모니터에서 확인되고 뒤이어 119구난차량과 구급차량이 현장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왔다. 출동한 경찰관으로부터 신고자의 안전을 확보했다는 보고도 뒤를 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칙~~칙~~ 무전기에서는 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현장 경찰관의 보고가 이어졌다. 신고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부인과 싸우고 112신고를 했으며 위험상황은 없다는 보고다.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인가? 들개는? 이윽고 무전기 전파를 타고 허탈한 경찰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신고자가 술에 취해 자신의 부인과 싸웠고, 부인이 따라다니며 계속 귀찮게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58년 개띠랍니다”

사건 2. 지난 며칠 벌써 봄인가 싶던 날씨가 오후 들어 갑자기 쌀쌀해지더니 4시 무렵이 되자 사방이 컴컴해지며 눈이 내린다. 눈송이가 거의 주먹만 하다.

지난 한 겨울에도 없던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다. 따르릉~ 지역의 행정기관과 도로관리사업소로 제설작업이 시작되었는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벌써 출동하여 제설 중이라는 답변이 따라온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린다……. 라고 생각하는 찰나, 112신고 접수시스템에서 딩동~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거의 울부짖듯이 접수건수가 폭증한다. 고갯길에서 꼼짝을 못한다거나 도로 옆으로 미끄러졌다는 신고다.

각 사건에 경찰 순찰차량을 배치하기는 했으나 승용차인 순찰차가 제아무리 스노체인을 장착했더라도 두툼한 눈길엔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신고건수가 출동할 수 있는 순찰차의 3배에 육박하고 있었으니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친다. 보험회사 렉카도 출동을 못한다고 거절하니 빨리 와서 어떻게든 해 달라며 아우성이다. 그 와중에도 절도, 폭력 등 각종 범죄 신고는 꾸준히도 접수된다.

정신이 아뜩하고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하나하나가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으므로. 우리 경찰서 소속 12대 순찰차도 모두 컴퓨터 스크린에 반짝거리며 관내 이 곳 저 곳에서 제각기 사투 중이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기가 울린다. 수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거친 숨소리와 술을 마신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육두문자 폭격이다. 10여분 전에 쌓인 눈 때문에 관광버스가 고갯길을 못 올라간다고 신고 했었던 산악회 승객이었다.

“대뜸 뭐 하는 놈들이냐, 가만두지 않겠다며 소리를 지른다. 왜 제설차량을 보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갑작스러운 눈으로 여기저기 고립되어 계신 차량들이 많습니다. 계신 곳으로도 제설차량 출동요청을 했으니 잠시만 더……”답변 중간에 또 다시 육두문자가 창문 밖의 눈발처럼 가슴에 꽂힌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에게 물었다. 혹여 신고자들이 위험한 상황이냐고? 출동 경찰관의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승객들 대부분이 술에 취해 있는데 당장 제설차를 끌고 오던지, 관광버스 바퀴에 채울 스노체인을 사 오라며 그야말로 생떼를 쓰고 있습니다. 제설차량은 언제 오죠?”

허위신고는 다른 누군가의 피해로 이어진다. 그것은 과장신고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신고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112는 범죄 신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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