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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동양포럼 대담 : 유봉기 대표, 안철호 대표, 김숙자 원장
(8)동양포럼 대담 : 유봉기 대표, 안철호 대표, 김숙자 원장
  • 조아라 기자
  • 승인 2016.07.11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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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현장에서 '생명공동체'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삶
 

(정리/동양일보 조아라, 박장미 기자) 김태창(한·중·일이 함께 공공하는 철학대화모임 대표) 동양포럼 주간이 유봉기 삼보종합건설(주) 대표이사, 안철호 ㈜청산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숙자 청주 김숙자소아과 원장을 만났다. 김 주간은 지난 4월 15일 삼보종합건설주식회사 사옥에서 유 대표와 ‘회사다운 회사’의 진정한 의미와 상도, 기업철학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지난 5월 26일에는 동양일보 회장실에서 안 대표, 김 원장과 생명을 살리는 물과 어린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의 긴급성에 대해 대화했다. 김 주간은 이들과 대화를 나눈 뒤 “이 세 분은 각자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바탕을 가슴에 새기고 그것을 생업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역행하고 있는 생명문화친화적 충청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진다”며 “동아시아 생명공동체를 지향하는 동양인문학의 기본 정신은 요란하고 화려한 구호나 슬로건 보다도 개개인의 체험에서 성숙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세 명에 대한 대담 내용을 요약,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주>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유 대표님께서는 토건업을 시작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유봉기 삼보종합건설(주) 대표 “삼보종합건설은 1984년 창설했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정부 시절이라 건설업에 대한 제한이 많았어요. 1989년 면허를 갖게 되면서 7~8명 정도를 모아 주식회사의 여건을 갖추게 됐어요. 그 당시만 해도 한국 돈으로 자본금이 20억. 보유 기술자가 16명이었고 주식회사 식으로 뭉쳐서 했지요. 지금은 지나가던 사람도 신청만 하면 내주는 식으로 바뀌었어요. 그 당시에는 종합건설회사가 26개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600~700개나 돼요.”

▷김 주간 “그러면 가장 중요한 거래처가 대규모 발주를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일 것 같은데 지방 업자에게도 발주합니까?”

▷유 대표 “요즘은 제도적으로 지방업체 육성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는 지방 업체가 아니면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전보다는 낫지만 물량 자체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개인 공사로 아파트를 많이 권하기도 했는데 아파트는 장사이지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안했어요. 그래도 1년 매출이 500~1000억 원 정도는 됩니다.”

▷김 주간 “장사가 아니고 사업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장사와 사업은 어떻게 구별하십니까? 동양 3국에는 사고방식이 ‘사농공상’ 이라는 낡은 사고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여기서는 장사가 가장 밑바닥에 놓이게 되지요. 일본에서 오랫동안 철학대화활동을 광범하게 전개하는 가운데서 느낀 것은 일본은 ‘사농공상’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탈출해 ‘상’의 독자적인 위상을 높였고 상업이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를 재인식했습니다. 이시다 바이간의 ‘상인도’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마는 실제로 제가 일본에 있으면서 실감했던 바도 그런 측면입니다. 장사가 전통적으로 천업이 아닌 귀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고서는 양심과 결부된 상도가 개발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유 대표 “제가 장사를 왜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면 한국에서 장사해서 성공하려면 거짓말안하면 안된다하는 것을 경험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아파트가 막 지어지기 시작할 초창기에는 자기가 짓고 싶은 대로 지었어요. 철근을 10가닥 넣어야 튼튼하게 할 수 있는데 4~5가닥 밖에 안 넣고 짓는 것을 직접 봤어요. 그래서 장사는 남을 속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한국의 대기업들이 많이 비대해졌고요. 그래서 ‘장사는 아니다’라는 것으로 사고가 바뀐 것이지요. 최근에는 내진설계도 하고 감독도 심하게 하지만 옛날에 지은 아파트들은 6도 지진만 나도 1/3은 아수라장이 될 거에요. 인간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는 의식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김 주간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인’의 이미지가 아직은 좋지 않아서 ‘사업가’라는 말을 선호하시는군요.”

▷유 대표 “저는 원칙적으로 개인 업체와는 거래를 안했어요. 누가 건물을 지어달라고 하면 싸게만 해달라고 얘기하거든요. 비용이 생명의 안전보다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부실이 나와요. 또 제가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능공이 100명이면 100명 다 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공공기관들의 공사는 기준이 있으니 그 범위에서만 하면 되지만 개인 업체의 일을 맡으면 도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안 해요. 정부는 기준이 있고 감독도 철저하게 하는데 개인은 이해 타산만 챙기는 경우가 허다했거든요.

▷김 주간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면 그 쪽에서 철저한 감독을 하니까 그만큼 하자가 생길 가능성이 적어지고 어즈 정도 안전성이 담보된다는 말씀 이십니까?”

▷유 대표 “영리법인이니까 기본적으로는 이익을 내야 하니까 철저하게 이익 계산을 따질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정도로 너무 나가면 사회적 정의감에 어긋나는 일이 되겠지요.”

▷김 주간 “그렇다면 회사를 경영하시는데 관에서의 개입이나 간섭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유 대표 “원칙대로 처리합니다. 물론 불이익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자신도 그런 문제 때문에 현실과 양심의 충돌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제가 이걸 따라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무리한 요구. 비정상적인 요구 때문에 갈등이 있을 때가 많아요.”

▷김 주간 “특히 청주의 실정을 살펴볼 때 공공기관에 버금가는 규모와 내용을 가진 발주원이 없다는 문제가 있겠군요. 어쩔 수 없이 공공기관을 상대하게 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점입니까?”

▷유 대표 “개인 회사와의 거래와 달라서 공공기관은 세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삐딱한 시선을 갖고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들은 1년에 몇 번씩 중간 평가를 받는데 항상 A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최종 심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줘요. 그리고 공공기관과 거래할 때는 떼일 염려가 없어서 쓸 데 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요. 개인 업체와의 거래에는 위험 부담이 항상 따릅니다. 어음 받아 부도나는 경우도 있거든요.”

▷김 대표 “일본에서 일본상도의 핵심에 관한 중견기업 경영자들의 견해를 물어본 적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가장 많았던 것은 정직과 성실을 꾸준하게 견지하는 것이 결국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유 대표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 대표 “100원에 수주를 했는데 공사 중에 삐뚤어지면 100원이 70원이 될 수도 있어요. 제가 초창기에 공사를 하는데 설계변경을 해서 감액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런데 해당 감독기관에서 그걸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깎아서 제출을 했더니 그 사람들이 나중에 거꾸로 엎어서 돈을 더 줬어요. 그게 기관에서 소문이 나서 그 혜택을 음으로 양으로 많이 받았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눈속임을 해서 더 받아가려고 스스로 깎아 이실직고했으니까요.”

▷김 대표 “장기적으로는 정직한 것이 오히려 성공을 가져온다는 말씀이 되는데. 처음에는 손해 보는 것 같다가 상대가 사장님의 정직성을 알게 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꾸 발주를 한다는 것이죠?”

▷유 대표 “한번은 건설부 공사를 하는데 일하는 목수들이 각도를 조금 잘못 맞췄어요. 슬래브로 덮어놓으면 표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제가 스스로 나가서 장비를 시켜 때려 부쉈어요. 지금 같으면 큰돈이지요. 부수고 다시 한 것을 나중에 건설부 쪽 사람들이 다 알았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부산까지 가서 일을 하게 됐어요. 지역 업체지만 200개 현장 중에서 저희가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어요. 그래서 전국적인 회사로 도약하게 됐어요.”

▷김 주간 “그 말씀은 단기적으로는 정직, 성실하게 온갖 정성을 쏟아서 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신용이 축적되면 나중에는 믿고 맡기는 성공을 가져온다는 것이잖아요. 일본에서는 ‘삼방선(三方善)’이라는 말을 쓰는데 세 쪽이 전부 좋게 된다는 것이지요. 파는 쪽이 기쁘고 사는 쪽이 즐겁고 보는 사람이 행복하게 될 때 비로소 올바른 상도가 실현 된다는 겁니다. 발주하는 쪽도 기분 좋고 수주하는 쪽도 안심하고 거기서 서로의 신뢰가 쌓이게 돼 마침내 신뢰와 이익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정직이 사업의 기본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장사는 남을 속여야 한다는 것은 옛날의 생각이고. 정직하고 성실하면 그것이 처음에는 손해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이 새로운 상도의 체험학습의 성과이겠군요.

▷유 대표 “이런 일도 있었어요. 고량을 세우려면 시끄러운 소리가 날 텐데 인근에 있는 7~8가구의 축산 농가들이 걱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소장과 머리를 짜내 소, 돼지에게 음악을 틀어줬어요.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사서 테이프를 넣어서 갖다 줬더니 처음에는 주인들이 미친 사람 보듯 했어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최고 큰 소리가 나게 틀어줬어요. 그 다음에 가니 주인들이 조금 다른 눈으로 보더라고요. 그 인근에서 포클레인 작업을 해도 소, 돼지가 뛰거나 유산했다거나 하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처음에 현장에서 올 때는 밥도 안 해주던 사람들이 공사 끝나고 갈 때는 잔치를 해줬어요. 뭐든지 최선의 노력을 하고 정직하고 정성을 들이면 다 되더라고요.

▷김 주간 “정직하고 정성을 들이고 곧은길을 간다는 기업철학을 젊은 사원들의 인성교육의 차원에서 공유하려고 노력하십니까?”

▷유 대표 “예. 항상 공유하려고 노력하죠. 직원들에게 첫째는 신용의 중요성을 공유하려합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잘못했으면 이실직고하라고요. 그리고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돈 빌리지 말라고 하지요.”

▷김 주간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불신사회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은 남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퍼져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국가와 국민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신용과 신뢰와 생명 감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공통인식 하는 일이 한중일이 함께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새로운 동아시아를 열어나가기 위해서 필요하고도 중요한 기반조성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중국에서나 건전한 사회가 되려면 매사에 정직하고 성실하고 일관되게 하면서 서로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바탕이 있으면 거기서 상도덕도 생기고, 관의 윤리도 생기고 사회 자체의 전체적인 신용도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그 부분에 앞장서서 실천하고 계시니 건전하고 착실한 기업을 유지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은 동아시아의 공통가치를 찾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동양인문학 운동을 펴나가고 있습니다만은 유 대표님께서 실천하고 계신 정직과 성실과 신뢰, 생명존중이야말로 그 핵심 가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 대표 “저 자신도 정직과 성실과 신뢰와 생명존중을 저의 사원들과 공유하려고 항상 유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직원들 잘 만났고 식구들 잘 만나 잘 되는 것이지 제가 똑똑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하다보면 다 옳게는 할 수 없지요. 그러면 반성하고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죠.”

▷김 주간 “덕을 갖추고 일을 하면 처음 얼마 동안은 고독한 것 같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고 사업적 기반도 안정되게 되고 어느 정도 안정권에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필요한 기업철학이고 실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장님을 뵙고 건실한 기업의 건전한 사회적 공헌에 대한 기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원이 많이 생겨 우리나라 기업 풍토가 개선되어 가면 사회 건전화에 크게 이바지하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철호 ㈜청산영농조합법인 대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농장에서 게르마늄수가 나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참으로 하늘의 축복이 아닙니까?”

▷안철호 ㈜청산영농조합법인 대표 “그렇습니다. 암 억제와 치료에 탁월한 효험이 있었다는 본인들의 증언을 몇 분의 지인으로부터 저 자신이 직접 들었고 또 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바도 있어서 축복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주간 “대학에서는 약학을 공부하셨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동기가 있었습니까?”

▷안 대표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하는데 충북대에 약학과가 생겼으니 거기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시험을 본 거죠. 머리가 그렇게 좋지도 않고 가정 형편도 어려웠는데 운이 좋아 합격을 했고 당시 연규횡 총장님 덕분에 가정교사도 할 수 있었어요.”

▷김 주간 “충북대 약학과를 나오시고 처음에는 약제사를 하신 겁니까?”

▷안 대표 “가정교사를 하고 1년 동안은 인턴을 했어요. 약사가 인턴을 한 것은 아마 제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청산(옥천군 청산면)이 시골이라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인턴을 하게 됐는데 감기에 걸려 열이 올라가거나 통증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사를 놔줘야 하는데 약사가 주사를 놓으니 의료법 위반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 육인수 국회의원이 “의사 없는 지역에서 환자 죽으라는 얘기냐”고 검찰지청장에게 사정이야기를 해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약국을 했어요.”

▷김 주간 “그러한 가운데서 생명수라는 것에 대해 특별히 착안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안 대표 “처음에는 게르마늄이 우리 농장에서 나오니 그걸로 내 병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점점 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거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게르마늄수는 특별히 좋은 물이니까요.”

▷김 주간 “그렇다면 게르마늄 성분이 다른 물보다 많이 섞인 물을 생명수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러면 게르마늄 자체가 병균을 이겨내 몸을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말씀입니까?”

▷안 대표 “우리가 병에 걸리면 몸은 면역력이 약해집니다. 몸에 해로운 병균이 들어올 때는 혈액 속에 있는 백혈구가 싸워야 해요. 백혈구 중 NK세포(natural killer cell), T세포(T lymphocytes), B세포(B lymphocytes), 대식세포(大食細胞 Marophage) 등 네 가지 세포가 있는데 이 면역세포들이 제 역할을 하려면 산소 공급을 많이 해줘야 하랍니다. 그 기능을 하는 게 바로 게르마늄입니다. 전쟁이 나면 군인에게 총만 줘서는 안 되잖아요. 실탄도 줘야지. 그래서 충분히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김 주간 “그렇군요. 예전부터 ‘물은 생명’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게르마늄이 함유된 물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균을 제거할 수 있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군요. 실제로 대표께서 이 물을 드시고 암을 극복하셨으니 그 효험이 실증된 거란 말이겠군요.”

▷안 대표 “그렇지요. 수술도 하지 않고 물만 먹고 암을 이겨냈다고 하니 처음에는 믿는 사람이 없었어요.”
 
▷김 주간 “병원에서도 그 물을 쓰나요?”

▷안 대표“ 우리나라에 국립암센터가 서울, 부산 두 곳에 있습니다. 그 두 군데서 방사선을 치료해주는 의사와 방사선 기사들이 그걸 마셔요.”

▷김 주간 “그렇다면 이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 불가결한 정보인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네요. 우리나라에 많은 암환자들이 고생을 하고 제 명에 죽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널리 알려 한 사람이라도 생명을 건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네요. 그런데 게르마늄수로 농작물도 키우신다면서요?”

▷안 대표 “그렇습니다. 우리 농장에서 식물을 재배하면 게르마늄이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미나리, 콩나물입니다. 또 고추, 상초, 토마토 등에도 게르마늄이 들어있죠. 포도나무에도 주사를 놔서 포도가 열리면 열매에 게르마늄이 들어가도록 연구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장난처럼 보이죠.”

▷김 주간 “사장님 농장에서 나오는 농산물들은 기본적으로 게르마늄이 들어가 있습니까?”

▷안 대표 “그렇지요. 땅콩, 인삼도 수경재배가 됩니다. 인삼도 요새는 농약을 하도 하니 외국에서 한국산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게르마늄 수액으로 하면 농약을 안 써도 돼요.”

▷김 주간 “그러면 이제 시험 재배가 마무리 되어 상품으로까지 출시가 됐나요?”

▷안 대표 “상품화까지는 안하고 있어요. 대기업에서 하면 잘되겠지만 제가 게르마늄 콩나물이니 인체에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사람들이 구매를 안 해요. 우리나라의 마케팅이 그래요. 브랜드가 있어야 되지요.”

▷김 주간 “상품으로 내려고 하면 여려 복잡한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겁니까?”

▷안 대표 “먼저 브랜드 가치가 있어야 하고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연구도 많이 해야 돼요. 그런 점에서 저는 나이도 들고 한계가 왔어요. 국가 연구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지요. 각 파트별로 연구가 돼야 할 겁니다. 그런데 산자부나 지식경제부, 심지어는 식약청 사람들도 게르마늄에 대한 상식이 별로 없으니 우리가 얘기하면 구름에 뜬 얘기같이 들리는 거죠. 시골에 있는 사람이 이런 것을 한다니 인정을 안 해요.”

▷김 주간 “뜻이 있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그것을 지원하고 보조해야 할 관계 기관의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억제한다는 말씀이시지요?”

▷안 대표 “공무원들이 보는 시각과 사업하는 사람이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니까 그렇겠지요. 공무원들은 ‘이 자식 저거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물이 네 꺼 밖에 없냐. 우리 지금까지 그냥 물 마시고도 잘 살아왔는데 그런 연구를 왜 하냐’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건강한 사회, 명랑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노령 인구는 갈수록 많아지는데 건강하게 살아야지 국가에서도 보험료가 덜 들어 갈 것 아니겠습니까. ‘스마트 에이지’라는 사업이 참 좋은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공무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학자들과 사업하는 사람들과 공무원이 삼합이 되어 발전시켜야지 어느 한 바퀴만 돌아가지곤 안 됩니다.”

▷김 주간 “대표께서 여러 가지 지역사회 활동을 해오시는 가운데서 체감한 것은 무엇입니까?”

▷안 대표 “국회의원도 할 만한 식견이나 학식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해야 민생이 잘 됩니다. 제가 도의원 8년을 했습니다. 도의원이 무슨 권력이 있어요. 감사 능력이 없어요. 감사해서 안 좋은 점을 발견하고 도지사에 조치하라고 하면 도지사는 알았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국정감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당이나 야당 의원들이 하루만 견뎌내면 되는 거예요. 잘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만이지 뭐.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이 너무 거칠다고 할까 수준이 안 맞는 사람들끼리 하려고 하다 보니 엇박자가 많이 나고 소리가 요란하면서도 잘 안 되고 이런 것이 많아요. 전체적으로 정치가 개선돼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요즘 교권이 많이 무너졌잖아요. 애들을 때리면 학부모들이 선생님에게 가서 “왜 때리냐”고 하지요. 이게 정치적으로 산아제한이 잘못됐기 때문이에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하니 하나밖에 없는데 때리면 안 되잖아요. 산아제한에 성공한 지 30년이 됐는데 30년 만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거예요. 하나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하는데 부모 마음은 안 그래요. 선생님도 사랑의 매를 대고 해야 하는데 부모들이 인정을 못하는 거예요.”

▷김 주간 “한쪽의 권리 주장만으로는 좋은 교육이 되기 어렵습니다.”

▷안 대표 “좋은 교육이 안 됩니다. 저는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배우며 컸는데 어른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고 궂은일도 많이 했어요. 인간도 동물입니다. 아주 고등동물이죠. 그런데 고등동물일수록 자기가 알아서 잘해야 하는데 편하려 하는 것이 본능이에요.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규범을 잘 가르치고 집중력을 갖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걸 가르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보니 사회가 혼란해지고 있어요. 인간도 동물이니 규범이 나이에 비해 엄격해야 하죠.”

▷김 주간 “아까 사장님께서 이제 게르마늄과 관련된 일을 줄이고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들이 나눠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셨는데 젊은 사람들에 대한 기대는 갖고 계십니까?”

▷안 대표 “그럼요. 제가 능력에 한계가 있잖아요. 여기까지는 제가 해 왔지만 이 이상은 제 범주를 벗어난 것 같다는 거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해보라고 했지만 불특정 다수인이 건강할 수 있게 하려면 혼자 하면 안돼요. 팀이 이뤄져야 하고 전문가가 있어야 하죠.”

▷김 주간 “선대에서 배워서 사장님의 피와 살이 된 부분, 슬하의 자녀들에게 이것만은 계승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나요?”

▷안 대표 “첫째 국가관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또 명예와 전통을 지키려 노력을 해야 하고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익혀서 남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자력 정신이 있어야 하고요. 자립을 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이것들이 결국 나에게는 아니더라도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득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김 주간 “종교가 있으십니까?”

▷안 대표 “기독교입니다.

▷김 주간 “선대부터 기독교이십니까?”

▷안 대표 “선대는 불교 신자셨고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김 주간 “기독교의 좋은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안 대표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믿음, 소망, 사랑이 누구나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그걸 좇아야지 나쁜 쪽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평소의 행실, 말을 통해 믿을 수 있게 되니까 믿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도 내 가족을 내가 믿어야지 믿지 않으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믿음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또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잘 살고 건강하려고 노력하는 그 소망은 결국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에는 절대자에게 이렇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보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재미가 없습니다. 성경을 구구절절 해석할 순 없지만 이러한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명상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김 주간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김숙자 청주 김숙자소아과 원장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 분이라 시간을 할애해달라고 요청 드리기 송구스러웠습니다. 병원이 굉장히 바쁘신 모양이죠?”

▷김숙자 청주 김숙자 소아과 원장 “소아병원이다 보니 일반 병원과는 다릅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이 아프면 모든 걱정과 관심이 아이에게 집중되니까요.”

▷김 주간 “병원을 운영하신 지 오래되셨습니까?”

▷김 원장 “36년 전 처음 청주에 왔습니다. 당시 도립병원 소아과에 다녔는데 여자 의사라고 무시를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약이 올라 당시 원장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여자라 안 만나줘서 너무 서운합니다. 나중에 길에서 만나면 여자가 아닌 후배로서 인사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요. 이 편지를 쓰고 나서 주위 분들에게 많이 혼났습니다. 그런데 덕분에 도립병원 소아과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 3년은 쉬지 않고 24시간 병동을 지켰습니다. 이후 김숙자 소아과를 세웠습니다. 사실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늘 넉넉하지 않았죠. 그래서 아버지보다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커 병원을 열게 됐습니다. 당시 환자들도 많았어요. 근데 아이들이 자꾸 죽었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아 서울로 보냈습니다. 서울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결과가 나오는데 아이들은 자꾸 죽었습니다. 한집에서 3명의 남자 아이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태어나면 괜찮았는데 3개월 후에 경련을 시작하다가 5~6개월 안에 남자 아이들만 죽더라고요. 죽은 아이들의 엄마가 자신이 이 남편과 계속 살아도 괜찮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계속 죽어가는데 아무도 해결해주는 사람이 없다니…제 자신이 너무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에서 소아과 레지던트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제가 한국에서는 이미 소아과 의사였기 때문에 레지던트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할 수 있는 시험에 응시해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공부해보니 별로 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브라질에서 열린 대사질환을 주제로 한 학회에 참석하게 됐고 거기에서 닥터 구스리를 만났습니다. 책에서만 보던 분을 직접 만나니 너무 놀라웠습니다. 한국에서는 신생아 유전병 검사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당시 한국에는 그런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그 학회에서 신생아 검사를 통해 문제를 발견한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래서 닥터 구스리에게 신생아 검사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너무 나이가 많아서 직접 가르쳐줄 수 없다며 미국의 닥터 하빌리비를 소개해줬습니다. 저는 하버드대에 가게 됐고 당시 닥터 하빌리비가 신생아스크린 연구의 수장이어서 신생아스크린도 공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시 전문의가 돼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걸 활용하면 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결국 청주에 와서 다시 김숙자 소아과를 열게 됐습니다. 그런데 1999년 갑자기 저에게 뇌출혈이 찾아왔습니다. 환자가 된 저는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습니다. 이름 석자 쓰는 것까지도요. 퇴원을 하고 나서 삼일공원에 가서 청주를 내려다보는데 ‘아, 내가 아직 안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팬덤기계를 융자를 얻어 6억을 주고 남편 몰래 샀습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들여온 것이었죠. 제 병원에서 이렇게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니 소문도 나고 나름대로 진전과 발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까 죽은 세 남자아이들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세 아이들도 시기적으로 간단한 검사만 했더라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보내서 그 아이들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 내가 무식해서 아이들의 생명을 건지지 못했구나. 아까운 생명들을 헛되게 잃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김숙자 소아과 부설 유전학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제가 뇌출혈 이후 갖게 된 생각은 안 아프기만 하다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제 마비가 풀어져서 이렇게 거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새 생명을 얻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숙자 소아병원을 만들고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제는 김숙자 병원을 법인으로 만들어서 계속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수익성이 별로 없으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올해부터 희귀난치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공모한다고 해서 응모했습니다만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상급종합병원만 가능하다는 거죠. 그래서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나는 희귀난치성질환을 20여년 가량 봐왔는데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라고 했더니 답변은 “없다”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형병원에 근무하지 않으면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답답했습니다.”

▷김 주간 “몇 년째 의사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김 원장 “내년이면 20년이 됩니다.”

▷김 주간 “의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김 원장 “저는 옥천 청송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까지는 지원을 받아서 다닐 수 있었지만 저희 집이 6남매여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기를 권유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가지 말라고 하니까 더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희곡을 쓰고 연극도 해서 돈을 벌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연극을 하면 희곡도 써줬죠. 그러던 중 한전 소장 딸을 가르칠만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거기 가정교사가 됐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학교를 다니려고 했습니다. 강의료는 이렇게 해결했지만 입학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주실 리는 없었고 입학시험을 보는 학교에 들어가서 장학금을 받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덜컥 학교에는 합격했는데 입학금이 없으니까 울고만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더니 돈을 빌려오셨습니다. 꾼 돈으로 입학금을 내러 갔지만 납부기간이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 댁에 찾아가 사정하니 교장선생님이 농협에 전화를 해줘서 입학금을 내고 입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희곡을 쓰며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사였던 안철호 선배가 돈을 버는 모습을 보고 ‘아 약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약사를 생각했지만 이왕 하려면 의사가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의사가 됐습니다. 사실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기 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충남대를 졸업하고 그 부설병원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40살쯤 미국으로 건너가 레지던트부터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 주간 “원장님은 아동난치병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신 것 같은데 그렇게 아동 난치병 환자가 많습니까?”

▷김 원장 “많았지만 그동안 몰랐던 거죠. 한국에 이러한 환자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근친결혼이 빈번한 일본과 달리 법적으로 동성동본 결혼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한국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전병이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다 단군자손인데 다 근친결혼 아니냐’ 이 말을 듣고 멍 했습니다. 그래서 충북도의 도움을 받아 지적장애 시설을 돌아다니면서 조사해보니 대다수가 선진국에서 태어났으면 치료를 잘 받고 나았을 사람들인데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망가져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김 주간 “그렇다면 난치병은 결국 부모의 결혼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까?”

▷김 원장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근친결혼일 경우 더 관계가 깊습니다. 친척끼리는 유전자가 비슷합니다. 이미 나쁜 유전자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나쁜 것끼리 만나니 문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김 주간 “그렇다면 가능한 먼 관계의 사람들끼리 만나야 한다는 옛 말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봐도 되는 것입니까?”

▷김 원장 “그런데 일본사람들의 경우 근친혼이 많은데 섬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바다를 건너 결혼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 주간 “결국 인간의 생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원장 “솔직히 깊은 뜻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의사 가운을 입고 아픈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 순간이 저에게는 기적이요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입니다.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김 주간 “그러면 의사란 어떤 인간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원장 “단지 의사 되는 데만 만족한다면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다른 의사들 보다 훨씬 많이 노력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존경 받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이 모든 것들이 함께 따라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사로 살고 싶은가는 그래서 자신의 욕심이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김 주간 “유전병이라고 하면 부모가 포기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가 낳은 생명에 대해 건전하고 정상적이면 소중히 여기지만 결함이 있고 불완전한 경우에는 생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김 원장 “보통 유전병이라고 말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더 안쓰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더 이상 고통 받지 말고 자신보다 하루라도 먼저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김 주간 “하버드대에 에릭슨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첫 아들이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그 아들은 수용소에 보내고 다른 아이들은 잘 키워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애아로 태어난 큰 아들이 격리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자녀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버드에서 세미나를 개최했을 때 그의 딸이 저에게 “아버지를 믿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지탄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왜냐하면 생명을 차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랍니다. 온전한 생명은 중요하게 여겼지만 결함이 있는 생명은 버렸다. 이것이 자기에게 상처를 줘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릭슨의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지만 그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제가 잘 아는 여성은 결혼 하자마자 낳은 아이가 중도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지요. 그러다 그 아이를 데리고 산에 들어갔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산을 개간해 자연농장을 만들어 살았습니다. 암환자 요양소도 만들고 일본 최고의 의사들을 모셔다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성의 삶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분은 대략 25년 정도 정말 고생했습니다. 에릭슨이라는 세계적 학자는 자기가 낳은 생명에 결함이 있다고 버렸고 일본의 한 여성은 결함을 안고 태어난 자식을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 많은 생명을 보살피는 사람이 됐습니다. 지금 그 딸아이가 40세가 됐는데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지금은 그곳이 생명존중의 성지가 됐습니다. 저도 강연 때문에 거기에 갔었는데 그 아이의 거실을 둘러보고 그 두 손을 잡고 그저 기도를 올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더라고요. 이제 그분은 자연농원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생명과 연결돼 있다는 생명철학으로 저와 의기투합이 됐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결함을 가진 아이들을 부모가 포기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결함 있는 아이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아이도 성가시단 이유로 때리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고 생명무가치 시대가 됐습니다. 자기의 기대에 맞는 아이만 선호하는 이런 현상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생명이 고갈되어 가는 시대의 최전선에서 생명가치를 수호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절망적인 형편에 놓이게 되었을 때 환자와 환자 가족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원장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고 봅니다. 어머니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8년간 말 한마디 못하시다 4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동료 의사들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편히 가시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래도 좋으니 하루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가 힘이 없으시더라고요. 엄마를 살려보겠다는 신념이 있었을 때는 그렇게 강건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러다 두달 전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정정하셨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니까 끈이 끊긴 느낌이었습니다.”

▷김 주간 “저도 일본에서 오랫동안 여러 번 만났던 일본대학 긴급구명의료센터장으로 맹활약 하던 분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이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근원적 생명력이 작동해서 치유 곤란한 환경에서도 기적적으로 회생할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오 헨리라는 작가의 ‘마지막 잎새’의 이야기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저는 83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연구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학식이나 지위, 명예보다는 다른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그 사람의 인격이 숨김없이 나타난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말입니다. 병마와 싸우시는 어머님을 위해 선생님께 하셨다는 아버님의 말씀이나 취한 행동이 정말 인간다운 인간의 품성을 지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립니다. 인간의 가치가 물질의 가치보다 낮아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아버님의 일상 언행과 어머님의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헌신적 간호에서 생명 가치의 지고성과 숭고성에 깨우침을 얻고 그래서 그것을 실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생명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청주에서 선생님의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의 생명을 하나라도 더 건지고 싶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늙은 마음이 따뜻하게 살아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원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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