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규 마코토 미래공창신문 편집주임

 

야규 마코토 편집주임과 조성환 연구원이 띄우는 편지

 

동양일보가 창사 25주년을 맞아 ‘철학하는 국민이어야 산다’는 명제 아래 진행하고 있는 동양포럼은 이번 회에서 일본과 한국 지식인의 글을 소개한다. 야규 마코토 일본 미래공창신문 편집주임과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은 각각 지인들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한·중·일 관계를 위한 철학과 사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편집자주>

 

 

 

한국의 Y선배님께

 

Y선배님, 오래간만입니다.

집무실(대학 총장실)에서 책을 읽고 계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떠오릅니다. 선배님은 호학(好學)하는 분이니 변함없이 책과 더불어 사시리라 사료됩니다.

지난날의 습관대로 허물없게 선배님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야규상, 그대는 너무 격식을 차려요. 마음을 놓고 얘기해요” 하시던 말씀에 따라 선배님이라고 하는 무례를 용서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지금 나이가 될 무렵에는 좀 더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 있기를 바랐습니다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인간입니다. 저는 무엇 하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소망, 적어도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싶다는 염원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간절합니다.

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한국과 중국의 문화, 사상, 철학과의 아주 좋은 인연과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 혹은 일본과 중국이 서로 어긋나고 부딪치는 현상을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고,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크게 바꾸고 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한국과의 인연은 중학 3년 때에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일본과 한국은 가까운 이웃나라인데도 한국어를 이해하는 일본인은 너무 적다”라는 말을 듣고, “그럼 내가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무렵 할머님께 보낸 연하장에 “저는 일본과 한국의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쓰곤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고등학교는 제2 외국어로 한국어가 있는 어느 신설학교에 입학하였고, 또 한국어 학과가 있는 텐리대학(天理大學)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재일한국인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한 문제를 학습하고 인권옹호 활동도 하는 모임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3학년 때에 한국의 교환유학에 응모하고 텐리대학의 자매교인 강원대학교에서 1년 동안 지냈습니다. 그때의 인상이 너무나 깊어서, 교환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텐리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유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저의 계획을 들으시고 아버님께서는 “취직하기 힘들 거야”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만 그 이상 아무 말도 안 하시고 가만히 지켜봐 주셨습니다.

강원대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한일 월드컵이나 한류 붐이 있었고, ‘겨울 연가’ 등의 촬영지가 되었던 춘천에 어느 때부터인가 갑자기 일본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밀려오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여름과 겨울 방학 때 일본에 일시 귀국하면, 한국의 존재감이 별로 없었던 옛날과 달리 서점에는 한류 서적 코너가 생기고, 비디오 가게에는 한류 드라마DVD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교인 텐리대학에서는 제가 다녔던 시절과 달리, 한국·조선어 코스의 입학 희망자가 세 배 정도 늘어났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유학하기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게 달라졌고, 마치 세계가 확 바뀌어 드디어 한국의 시대가 찾아왔구나 싶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강원대학교에서는 이광래 선생님이 제 지도교수이셨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원래 서양 특히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신 분이지만, 철학과에서 한국 실학-특히 최한기(崔漢綺) 선생을 연구하기를 희망한 저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또 이 선생님께서는 책을 내면 그것이 실적이 된다고 하시면서 제 박사논문을 서적으로 출판하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 책이 공공철학공동연구소의 김태창 소장님의 눈에 띄어서 그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면담했을 때 김태창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저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태까지 동양은 서양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은혜를 입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동양의 사상을 가지고 서양에 보답될 때가 왔습니다.”

서양에 대해 동양의 사상이나 문화를 가지고 맞서겠다고 하는 말이라면 다른 사람한테도 자주 들었지만, 동양의 사상으로 서양에서 받은 은혜를 갚아야 된다는 말씀은 일찍이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말씀을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또 김태창 선생님께서 어느 때, 공공철학 교토포럼에서 20여 년 동안 이야기해 온 ‘공공하는 철학’의 밑바탕에는 ‘한’사상과 ‘한’철학이 흐르고 있다고 밝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사상의 핵심은 ‘자기와 타인, 공(公)과 사(私)의 사이에서 만나고 서로서로 맺고, 잇고, 살리는’ 과정을 통해서 함께 미래를 열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데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밖에도 김태창 선생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체험학습, 대화학습, 개신학습을 전수하시려고 했습니다. 또 저는 교토포럼을 통해서 많은 훌륭한 분들과의 만남도 있었습니다.

김태창 선생님은 여든 살 생신을 맞아서 교토포럼에서 물러나셨습니다만, 교토포럼에서의 경험과 업적을 발전시켜 한국의 청주에서 동양포럼을 새롭게 일으키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가시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야말로 김 선생님께서 늘 힘주어 말씀하시던 개신(開新)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더없이 기뻤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광래, 김태창 선생님 두 분을 비롯하여 박맹수, 최재목 선생님 같은 한국의 훌륭한 학자들과 만나고, 한국의 사상, 철학, 문화, 역사 등을 배우는 좋은 인연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잠시라도 잊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현상에 눈을 돌리면 2000년대 중반 경부터 한국 붐에 대한 반발인지 ‘혐한(嫌韓)’의 움직임도 일어났습니다.

유학 중에 ‘혐한류’라는 만화가 나왔다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기에 잠깐 살펴보았는데, 그 내용이 한국이나 한국인의 흠잡기나 우익들의 주장 등을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책의 표제와 캐치 카피가 ‘알면 알수록 싫증나는 나라, 그것이 바로 한국’이라고 해서 한심스럽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편자가 자기 입맛에 맞는 재료를 모아놓고 어떤 인상을 만들어 내는, 극히 악질적인 인상 조작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그것이 대단히 많이 팔렸다니 이에 추종하는 군중이 있다는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혐한과 아울러 중국 협위론, 중국 멸시를 부추기는 인터넷 방송이나, 잡지, 신문, 또 ‘재특회’와 같은 배외주의 단체까지 나타나고,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갈수록 배타적으로 되어, 우경화, 국수주의화 쪽으로 기울러 가고 있습니다.

그 ‘혐한류’에서는 가장 중요한 점을 감추고 있습니다. 바로 1910년의 한국침탈에 이르는 경위입니다.

다른 책도 여러 가지 읽어 보았습니다만 결국 메이지 일본이 자기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한반도를 침략, 병합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데, 그것을 청나라의 속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었다든가, 한국을 식민지화시키면서 다리나 학교, 철도를 만들어 주고, 조선왕조 시대에 착취에 시달리고 피폐했던 민중을 구했다는 등등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어로 그런 것을 가리켜 ‘오타메고카시’라고 하는데 자기 이익을 위해 한 것을 마치 상대방을 위하는 것처럼 말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인의 국가적 이기주의와 기만을 바로보지 않고서 “한국이 싫다”고만 우겨대니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일본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아라!”라고 하는 미사여구(?)로 포장된 국가적 이기주의와 기만을 정당화시키는 언설에 찬동하고 공감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결코 웃어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일본인의 태도가 이와 같다면 비록 한일 간의 정치 지도자들이 아무리 교섭을 거듭해 보아도, 결국 한일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리가 없고, 한일 간의 새로운 미래를 연다는 것은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고 실현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미래공창신문(未來共創新聞)’이라는 신문에서 이 여름부터 수습기자로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래공창신문’이란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기와 타인이 힘을 모아서 함께 새롭고, 보다 나은 미래를 “열고” “일으키는” 신문이라는 뜻입니다. 미래공창신문을 창간하신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사장님의 이른바 미래공창 실천학을 제가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야마모토 사장님은 오래전부터 특히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일본과 한국이 사이좋게 지내고, 더불어 보다 나은 미래를 여는 철학,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나 힘의 논리를 뿌리째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때에, 일어난 것이 이른바 동북지역의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였습니다. 그 대참사에 대하여 일본의 대형 매체들이 특히 원전 사태를 은폐하고 왜소화시키고 늦게 보도하고 ‘탈(脫)원자력 발전’을 호소한 사람들을 제외하는 등 진실을 전하는 일을 버리고, 대기업 스폰서인 전력회사나 원자력 발전 유지를 최우선하는 정계, 재계, 관계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경영 판단을 우선하는 비양심적인 태도에서, 철학의 부재를 간파하시고 철학 신문 ‘미래공창신문’을 창간하신 것입니다.

그 사이에 저는 도호쿠대학(東北大學) 가타오카 류(片岡龍) 선생님의 소개로 중국에서 일본어 교사를 하게 되고, 교토포럼을 떠나 중국 섬서성(陝西省)에서 3년 동안 현장체험을 쌓고 돌아왔습니다. 계약 종료로 일본에 귀국하여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을 때, 야마모토 사장님께서 저에게 ‘함께 세계를 바꾸어 보지 않겠는가?’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신문을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는 단계입니다만, 미래공창신문을 거점으로 일본이나 한국, 나아가서는 세계의 사람들과 서로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 사람들이 국가, 민족, 문화, 종교 등의 벽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생명을 더더욱 소중히 여기는 철학의 물결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을, 그것도 청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배님을 반갑게 뵙게 되겠습니다만, 그에 앞서 먼저 선배님의 안부를 여쭙고 앞으로 더 많은 지도편달해주시기를 빌면서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뵙는 날까지, 환절기에 부디 건강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