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어머니와 울산 남동생 집으로 갔다. 이튿날은 동생 근무처인 병원이 신축건물에 최첨단의료장비로 구비된 곳이라 기분 좋게 종합건강검진을 받다보니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급하게 집으로 가니 온종일 혼자 집에 계시던 어머니는 반가워했다. 종합건강검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다.
갑자기 아파트는 물론 모든 물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깜짝 놀라 겁먹은 소리로 다급하게 어머니를 불렀다. 거실에 서 있던 어머니도 걸음을 비틀비틀하며 내게로 오셨다. 어머니 손을 잡고 놀란 표정으로 ‘왜 이럴까?’하는 마음에 겁이 왈칵 났다. 어머니는 ‘북한에서 핵폭탄을 던진 것이 아니냐’며 걱정스럽게 말씀하셨다. 무지막지한 북한의 만행에 핵폭발이라도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우리가 아닌가. 요즘 들어 마구잡이로 핵을 터트리겠다고 엄포에 쇼를 하니 말이다. 그건 아니고 좌우로 흔들림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지진인 것 같다고 했다. 순간 울산에 잘못 온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어 겁이 덜컥 났다. 마음을 조이고 있는데 남동생이 들어왔다. 남동생은 주차하는 도중에 차가 심하게 흔들거려 고장이 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진이라는 말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90 평생을 산 어머니도 처음 느끼는 큰 지진이라 하신다.
TV를 켜니 저녁 7시 44분 쯤 경주 내남초등학교 부근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방송이 계속 나왔다. 울산은 물론 경주, 서울, 대전,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흔들림이 감지 됐다는 보도다.‘이러다 큰 사고라도 나는 것이 아닌가’하여 불안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주민센터에서도 지진에 대처하는 안내 방송을 계속했다.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어서 오후 8시 32분께 두 번째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경북 경주시 남서쪽 8㎞ 지점인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화곡저수지 부근이다. 거실의 전등과 시계등 벽에 걸린 물체들이 춤을 춘다. 그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게 좌우로 비틀거렸다. 이 순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멍하니 바보처럼 서성거리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큰 지진은 처음 겪는 일이라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울산화력발전소, 울산석유화학단지와 원자력 발전소,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방폐장) 등이 있다. 현재 이상이 없고 사상자가 없으나 아직도 여진 2.0~3.0정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진 관측 이래 그 강도가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강한 지진이라니 더 심란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 규모 8~9의 거대 지진이 떠오른다. 다른 나라 이야기라 대수롭지 않게 느꼈던 일이다. 모르면 약이라더니 막상 지진을 직접 겪고 나니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된다.
서울 사는 동생과 친구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봐도 연결이 되지 않아 불통상태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서울 막냇동생과 청주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것저것 묻는 말에 막상 일을 당하고 보니 멍하고 겁만 날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내 말을 듣던 친구는 현직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대로 행동요령을 취하지 그랬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생각이 났다. 지진이 일어나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몸을 피하든가 밖으로 뛰어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심한 지진으로 당황하여 머릿속이 하얗고 겁에 질렸던 마음이 친구가 들려준 위로의 말이 약이 된 듯 안정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이 같은 일로 당황하고 서두르지 않도록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을 숙지해 둬야겠다. 여진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울산에서 며칠간의 놀란 가슴으로 불안하게 지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모양이다. 집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보면 편히 쉴 곳은 내 집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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