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나라 꼴이 참 우습다.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여태껏 제왕적 대통령 자리를 지키던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비선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좌절과 허탈감에 빠진 국민 앞에 양심상 나설 수 없기 때문일 게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한자릿 수로 폭락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누가 뭐래도 30%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해 온 박 대통령이었다. 그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한달을 기점으로 곤두박질 쳐 왔다. 지난 9월 둘째주 33%를 기록한 이후 31%→30%→29%로 떨어지더니 10월 둘째주에는 26%가 됐다. 그간 지적된 ‘불통’, ‘경제 실패’, ‘국정 무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아슬아슬한 지지율은 최순실과 함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내일신문>이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달 31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9.2%로 나타났다. IMF를 초래하고 퇴임할 당시 6%를 기록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후 가장 참담한 결과다. 특히 박 대통령의 마지막 보루였던 대구경북 지지율은 전국 평균보다도 낮은 8.8%를 기록, 이 지역민들의 배신감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RDD방식의 유선전화면접조사와 모바일 활용 웹조사 방식 병행,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신뢰와 원칙을 중시한다는 박근혜는 무조건 옳고 그릇됨이 없으니까, 박정희 딸이니까 나라 위상을 바로 세울 거고, 부모를 모두 총에 잃어 불쌍해서, 그래서 박근혜 아니면 나라 망할 것 같아서. 대략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국민 3명중 2명이 하야를 원할 정도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놀아났다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핵심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 사태를 접한 국민들은 좌절과 허탈을 넘어 참담한 심경이다. 여기엔 전적으로 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아무리 ‘피보다 진한 물’ 관계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됐으면 일정 부분 거리를 뒀어야 했다. 괜한 동생들만 청와대에 얼씬 못하게 할 게 아니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위중한 상태다. 그런데도 그동안 박 대통령 치맛자락 붙잡고 호강을 누리던 그 많던 친박 패거리들 가운데 총대 메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다. 되레 최순실 게이트에 행여나 유탄이나 맞지 않을까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얼마 전 기세등등하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불과 6개월전인 4.13 총선때만 해도 이들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유승민 한 사람 찍어내기 위해 친박계 좌장격인 최경환은 ‘진박 감별사’를 자청하며 대구 물갈이를 외쳐댔고, 조원진은 유승민 사무실에 걸려 있는 박 대통령 사진을 보고 ‘대통령 존영’을 반납하라고 호통쳤다.
‘친박 돌격대’ 김진태는 어땠나. 박 대통령 스스로가 최순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고 실토했음에도 JTBC의 태블릿PC 입수경위를 조사하라고 윽박했다. 그러면서 최순실 사건과 별개인 송민순 회고록을 새삼 거론하면서 문재인 전 대표도 특검해야 한다고 물타기했다. 그는 툭하면 ‘종북좌파’를 들고 나와 끊임없이 국민을 이념적으로 분열시켰다. 세월호 선체 인양을 반대해 극한의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는 세월호 유족을 향해 모욕을 주고 염장질을 해 댔다. 급기야 그의 지역구인 강원 춘천에서는 사퇴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친박실세들이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 아니 최소한의 방조범 일진대도 그를 모른다고 발 뺌했다는 점이다. 이에 2012년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 책을 펴 낸 전여옥(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시절 대변인) 전 의원은 “다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여당도, 야당도 다 알고 있는데 친박이 모른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보다도 더 심하다고도 했다.
지금의 국정 파국은 잔정에 이끌려 사리분별을 못한 박 대통령이 화근이지만,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권력향유에 빠져 있던 친박의 소행이 가져온 저주임에 틀림없다.
골수 친박들이여, 그렇게도 박 대통령을 위한 친박이고, 박 대통령 덕과 후광을 입었다면서 꼴심을 쓰더니 사태가 이 지경되니 코빼기는 보이지 않고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앞으로 빨아 먹을 것도 없겠지만) 이젠 단물 꿈도 꾸지 말라고 일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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