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소설가)

 

(동양일보)1.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분노

요즘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상황이 온 국민을 경악과 분노, 수치와 배신감에 휩싸이게 했다. 유권자 절반에 가까운 지지로 권좌에 오른 대통령, 헌법이 보장하는 일국의 최고권력자가 하찮은 ‘강남 아줌마(최순실)’의 간계에 미혹돼 국정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아줌마는 청와대 일부 보좌진과 뇌가 부실한 일부관료를 하수인으로 부리며 호가호위로 탐욕을 채워 온 국민을 농락했다. 국정은 혼란에 빠지고 국가위상과 민도가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대통령이 의혹의 일부를 시인하는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면피성이 짙어 국민 분노는 오히려 격앙되고 있다. 이대로는 검찰이 어떤 조사결과를 내 놓아도 대통령의 처사에 대한 분노가 진정되거나 의혹이 해소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국정전반을 보좌하는 비서진과 정책분야별 수행을 책임 진 충실한 각료가 있고, 정권창출, 정책개발의 동반자인 여당과 국정협력 대상인 야당, 정책연구기관이나 자문 받을 원로들이 숱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왜 이들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하찮은 여인, 학력도 모호하고 경력도 신통찮고 성품도 개차반인데다 관직도 없는 주제에 호가호위의 갑질 횡포로 천지사방을 휘젓고 정부기관과 기업에 빨대를 꽂아 탐욕을 채운 여인에게 그토록 현혹되고, 어째서 그렇게 엄청난 분탕질을 허용 했던가? 그 천박한 여인이 휘저어 흐려놓은 물을 왜 몰랐던가?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고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2007·자서전)’며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정을 위임받은 대통령 박근혜.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유권자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수첩공주란 별칭이 따를 만큼 매사에 치밀하며 약속을 중히 여기는 신뢰의 표상으로, 만기친람하여 국정전반을 속속들이 챙기는 자상함으로, 박다르크로 불릴 만큼 사심 없는 애국심으로 남성일색의 청와대 유리벽을 깨고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된 박근혜. 그에 대한 기대와 명성, 신뢰로운 지도자상은 권좌등극 시점까지만 유효한 것이었나, 아니면 그 모두가 허명과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나?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기대는 역대 어느 대통령 못지않게 컸다. 저간의 신뢰와 명성, 거기에 가난의 굴레를 벗겨 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온 국민이 존경하던 영부인 육영수의 딸로 22세 어린나이에 영부인대리역할을 잘 해낸 후광이 기대상승효과를 냈었다.

그러나 기대는 좀처럼 충족되지 못했다. 명성으로 일컫던 사실들이 역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수첩공주의 명성은 인사정보의 한계를 드러낸 수첩인사로, 만기친람은 각료의 창의적 행정능력과 기회를 막는 장애요소로, 박다르크로 불리던 애국심은 소통부재의 독단으로, 약속과 신뢰의 표상은 친박과 소수측근에 대한 편애로 변질되는 이상발효를 일으켰다.

그래도 국민들은 기대를 접지 않고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기다려 보자고 인내심을 발휘하는 동안은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의 유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친박편애로 여당(새누리) 내부갈등이 심화돼 총선에 참패한 뒤에도 문고리권력이라는 실세들의 잡음에도 대통령의 폐쇄적 통치방식은 요지부동이었다. 소통부재의 독단 여전하고 실세편애 여전하며, 소신발언 각료를 압박하는 레이저시선도 여전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콘크리트 지지층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했다. 거기에 생뚱맞은 강남 아줌마, 어느 노년의 말대로 ‘하찮은 여편네’의 국정농단으로 돌풍상황을 맞은 대통령은 국민의 배신자가 됐다. 국가경영 시스템을 무력화 시키고 전 국민을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한, 이런 상황을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민들의 당혹과 분노는 당연하고, 한때 50%를 넘나들던 지지도가 맨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대통령은 이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청와대를 나왔던 당시와 같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다. 권좌에 앉았으되 신뢰를 잃었으므로 권위와 위엄도 서지 않게 됐다.

드물지만 그래도 동정론을 펴는 이가 없지 않다. ‘외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불쌍하다’ 이유는 그거다. 흉탄에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그 선의가 심리적 측면에선 합리적인 해석이라 쳐도, 국가는 트라우마 환자 치료소가 아니다. 때문에 호가호위로 국민을 농락한 강남 아줌마는 물론, 그를 조장 방치한 대통령에게도 면죄부는 불가다. 어떤 보수인사는 ‘박근혜를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했다. 오죽 분통이 치밀면 그랬을까. 자칫하면 그 외에도 숱한 국민이 트라우마를 앓게 될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국법을 시궁창에 패대기친 셈이니, 믿었던 유권자들의 분노와 배신감치유는 물론, 국정혼란 수습처방은 그야말로 난제다.

2. 배신의 트라우마와 그 여파

트라우마는 극한의 공포나 경악, 슬픔, 감동 등의 여파가 장기간 마음속에 상처로 남는 것이다. 이른바 정신적 외상(外傷)이란다. 학자들은 적기에 심리치료를 하지 않으면 갖가지 신경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한다. 대인관계나 상황대처에 과잉경계심을 품고 의사결정이나 일상행동에 이상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방치는 위험하다. 그 후유증이 본인은 물론 주변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박대통령의 처지에 동정적이거나 선의의 해석을 붙이는 이는, 이런 트라우마의 후유증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10여세에 청와대에 들어간 박근혜는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를, 예의바른 태도와 절제된 언행, 교류 상대의 제한 등 폐쇄적인 생활에 묶여 살았다. 소수인과만 절친 관계를 맺고 의지하는, 평범치 않은 생활의 장기간 지속은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1974년 영부인인 어머니가 흉탄에 서거한 사건으로 박근혜는 극한의 경악과 충격으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外傷)을 입었다. 영부인 대리로 아버지를 보필하기 5년여, 1779년엔 측근의 배신으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시해라는 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중첩된 상처로 만신창이의 가장이 된 박근혜는 동생들을 이끌고 청와대를 나왔다.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그가 맞닥뜨린 건 권력의 소진과 함께 등 돌린 사람들의 냉혹한 외면, 그것 또한 몸서리치는 배신이었다. 흉탄에 부모를 잃고 이중의 상처를 입은 박근혜를 더욱 절망케 하는 고통이고 삼중의 상처였던 셈이다. 박근혜에게는 부모에게 흉탄을 날린 저격범들뿐만 아니라, 등 돌리고 외면하는 사람들 모두가 배신자로 비쳤을 것이다.

과거에 충성스럽다고 믿었던 지인들의 배신은 새로운 충격이었고 18년의 은둔생활에서 겪은 외로움은 세상을 보고 사람을 대하는 눈에 불신과 경계심을 걷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 ‘믿었던 사람도 언제 배신할는지 모른다.’ 이런 불신의 시선은 홀로서기 각오와 재기의 투지를 다지는 동력이 됐을 것이다. 결국 박근혜는 1979년 청와대를 나온 후 18년간의 소외와 은둔의 칩거를 접고, 야당인 한나라당후보로 달성재보선(98)에 당선, 국회입성에 이어 당 총재, 그리고 천막당사로 위기에 처했던 당을 쇄신하는 등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측근의 배신으로 부모를 잃는 깊은 상처를 입고 청와대를 나온 후 다시 냉혹한 배신을 겪으며 다진 각오와 투지를 관철한 셈이다.

그러나 배신의 쓴 맛과 불신의 너울을 잊거나 벗은 건 아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눈에는 과거나 현재나, 공사 간 심금을 털어놓고 의기투합, 신뢰할 수 있는 정치적 동지가 없다.

친박계 ‘무성대장’으로 불리던 김무성도, 여당원내대표였던 유승민도, 대선후보 당시 경제정책 브레인역할을 했던 김종인도, 당 대변인으로 밀착 보필하던 전여옥도, 현재 여당대표나 원내대표도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할 동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과 내각 혹은 청와대에서 함께 일 하던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등한 동반자가 아닌, 일시적 참모 혹은 경쟁후보로 인식, 경계대상일 뿐이다. 혹여 상대가 동지적 의식을 가졌더라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앙금을 남기고 곁을 떠난 사람들도 박근혜의 뇌리엔 배신자로 각인됐을지도 모른다. ‘수첩공주’와는 또 다른 ‘얼음공주’라는 별칭이 따랐던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10세에 청와대에 들어간 박근혜는 평범한 인간관계 속에서 수신(修身)하고, 신뢰와 사랑을 체득할 제가(齊家)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간에 겪은 극한의 시련은 남다른 인내와 의지를 키워 이를 관철했으나 치국(治國)의 덕을 쌓기에 이르지 못했다. 의지를 허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변화를 거부하고 갈등을 타협 아닌 투지로 돌파하면서 불통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는 그의 뇌리에 박힌 가장 강력한 키워드, ‘타협은 패배요 패배는 곧 배신을 부른다’는 강박감이었고 그에 대한 과잉경계로 폐쇄적 환경을 자초함으로써 ‘고독에의 함몰’을 불렀다. 결과적으로 치유되지 않은 배신의 트라우마 후유증인 셈이다.

정상의 권력자는 고독하다.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남다른 박대통령은 어떤 권력자들에 비할 수 없는 절대고독의 상황에 처했고 위로하고 순종하는 충복이 간절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야심 채울 호기로 삼아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최태민 일가였다. 위로와 순종, 충복을 가장한 교언영색에 미혹된 대통령은 그 저의를 간파하지 못했다. 경계와 긴장을 풀고 신뢰하던 끝에 사생활을 의지하던 것이 점차 한계를 넘었다. 아버지 최태민에 이어 딸 최순실은 혈육조차 이간시키는 등 대통령을 더욱 고립시키고 얼빠진 공직자를 하수인으로 동원, 호가호위로 탐욕을 채우다가 마침내 국정농단이라는 돌풍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이 안고 있는 배신의 트라우마가 다시 최순실 일가의 배신을 부른 셈이고 원인은 사사롭고 사소한 미풍인 듯 했으나 결과는 나라를 흔드는 돌풍이 된 것이다. 만약 최순실 일가의 저의가 북한의 지령수행에 있었다면 상황이 어찌 됐을까?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3. 난국치유를 위한 변수 찾기

이제 난국수습은 국민 몫이되, 원망과 분노로 일관한다면 국민 모두가 집단 트라우마에 갇힐 판이다. 분노의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국민들의 요구는 대통령의 퇴진이지만, 침묵 속에서 걱정하고 있는 더 많은 국민들의 의견은 다를 수도 있다. 군중의 함성과 침묵하는 다수의 서로 다른 의견을 절충, 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법적이며 여야가 합의된 수습책을 마련할 곳은 국회다. 국회의원 각자가 국민을 대리하는 독립기구요, 국회는 그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탄핵발의 이전에 국회가 제시하는 수습책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속죄의 한 방편이고 자신의 명예와 국위손상을 감하는 길이다.

이선후퇴, 하야, 퇴진, 퇴출, 탄핵. 용어는 비슷해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위헌이냐 합헌이냐 법리해석이 달라지고, 대통령 권한의 축소냐 정지냐 또는 박탈이냐에 따라 빚어지는 결과의 차이도 크다. 또한 후속조치에 대한 과정 역시 간단치 않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명예나 국가위상과도 관계가 깊다. 이선 후퇴나 자진 하야라면 대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수치가 아닐 수도 있지만, 퇴출이나 탄핵이라면 ‘쫓겨난 대통령’, ‘대통령을 쫓아낸 국민’으로 역사에 기록 될 것이고 대외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느 때 보다도 엄중한 만큼, 국가원수의 공석도 국정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될 시기다. 경제하락 안보불안 등 상시적인 난제 말고도, 이변을 낳은 미국의 대선결과로 동남아 주변국이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일본총리는 이미 미국 차기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위대한 우정’을 과시했고, 중국과 러시아도 대미외교의 새로운 틀 짜기에 바쁘다. 현재의 ‘견고한 한미관계’가 미국의 차기정권에서까지 보장된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우리가 내부혼란에 허둥대는 현재도 세계의 외교판도는 소용돌이치고 북의 핵위협이 점증하는 가운데 고립위험수위는 높아지고 있는데 국가원수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런 난국을 분노만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 분노표출과 확산은 멈추고 파국을 면할 수습책을 찾아야한다.

그런데도 여·야 의원들의 행태는 어떤가? 여당은 갈팡질팡 분당 직전이고, 야당은 분노선동과 정국기선잡기에 올인 중이다. 차기대선후보를 꿈꾸는 거물(?)들이나, 야 3당 대표들은 자기존재부각에 열을 내고, 의사당에서 난국수습에 머리 싸매야 할 의원들은 촛불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국민의 대변자지위를 팽개치고 일개 시민신분으로 내려 선 것이다. 촛불 들고 나선 그 행위가 난국수습책 모색인가 분노선동인가? 아니면 혼란확대를 바라는 불순세력에의 동조인가? 신뢰와 구실을 저버린 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그 밥에 그 국인 셈이다. 반면에 거리에 나선 국민의 행동은 과거 어느 때 보다 냉정하고 침착했다. 극소수의 일탈을 자제시키며 질서를 지키고 일부는 스스로 쓰레기를 줍는 등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속에 불순세력의 폭력시위나 혼란선동이 끼어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두 차례의 면피성 사과 후 검찰조사까지 미루며 버티고 있는 대통령의 의중에 변화가 없다면, 지금은 성숙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시위가 어떤 양상으로 바뀔지 예측조차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시위대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일부 정치인은 ‘더 분노하라’고 목청을 높일 뿐, ‘이제 국민의 뜻을 알았으니 수습은 우리에게 맡기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시라’는 소리는 없었다. 분노를 진정시키고 여론을 선도해 사태를 수습해야할 정치인들이 분노에 편승, 정치적 득실을 따지며 좌고우면, 갈등을 키우며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북핵위협과 안보, 외교적 고립위험, 국정혼란, 대통령거취. 어느 것도 낙관할 수 없는 난제요 택일의 여지도 없는 긴박한 문제들이다. 결국 여러 종속변수의 변화를 주도할 독립변수가 어느 것이냐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변수는 당연히 대통령의 거취다. 국민을 분노케 했다고 대통령 자리를 비워놓고 다른 어떤 국정운영 방식을 택한대도, 선택 과정이나 운영초기의 혼란이 여타의 사안(종속변수)에까지 미칠 건 자명하다. 대통령은 진솔한 반성과 사과 후 통치권의 일부(내치·內治)를 총리에게 위임, 간섭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국가원수 지위를 유지하고 임기를 보장 받는다면 더 이상의 혼란과 공백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탄핵과 북핵, 두 사안이 시소의 양 끝에 놓인 셈이다. 탄핵에 무게를 싣는다면, 통과여부와 관계없이 정계나 민심의 분열로 혼란은 가중 될 것이고 국가위상과 대통령의 명예에도 상처가 남는 건 물론 북핵과 여타의 위기도 높아질 것이다. 대통령은 버티기가 아닌 속죄와 타협의 여지를, 정당은 기선잡기 각개전투가 아닌 수습합의안 도출을 위해 머리 터지게 고민하되 탄핵은 최후의 카드여야 한다. ‘병 든 가장이라도 가장이 있어야 집의 담장이 바로 선다.’고 했다. 비록 상징적일지라도 가장과 담장, 국가원수와 국위의 관계는 그만큼 중요하다.

언론은 선동성 보도보다 원로 석학들의 고견을 제시하고, 국민들은 더 이상의 분노나 선동에 휘말리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혼란의 원인이 대통령중심제의 허점 때문이라면 개헌은 필요하되, 이 난국수습 후에 차분히 고민할 일이다. 우리는 ‘미워도 다시 한 번’ 용서하고 믿어보는 너그러운 국민이지, ‘헬(hell)조선’의 막가는 백성은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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