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논설위원/침례신락대 교수)

▲ 김주희(논설위원/침례신락대 교수)

겨울방학이 가깝다. 머잖아 교정은 한요해지겠다. 세상은 더 춥고 눈 내리고 길 얼어붙겠다. 눈발 흩날리면 외투 깃 올리며 걸어 별렀던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겠다. 눈을 털고 들어가 향이 좋은 뜨거운 찻잔을 감싸쥐고 먼 이국의 오로라 얘기를 해도 좋겠다. 백석 시인의 나타샤와 당나귀 얘기는 또 어떨까.
 이번 학기는 모교에서 강의를 했다. 인문대 건물은 비싼 대리석 칠갑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강의실마다 설치된 컴퓨터로 출석과 결석을 체크하도록 달라졌다. 그런 것들이 바뀌었다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달라질리 없고, 젊음들의 고민이 없을 수 없으니 후배들을 보면 내 이십대였던 팔십 년대가 자주 겹쳐졌다. 그 무렵 하릴없이 절망처럼 시를 읽었던지. 읽는 것으로 부족해 눈 닿는 데마다 써 붙이고, 노트에 적어두고, 들여다보고, 누구에겐가 적어주다가 마침내 외워버리기도 하면서. ‘기껏 찾아낸 적은 우리의 이웃’같은 구절에서 연대와 안도를 함께 찾으면서.
 지난 주에는 시절이 하수상하고 병처럼 가을도 깊으니 시로 위안을 삼으려고 학교 자유관 카페에서 모였다, 詩國善言이기로. 각 집에 잉여인 것들을 들고 서른 명 남짓이 모였다. 시를 고르고 소리 내 읽고 여럿이 모여 낭송하는 일은 익숙한 일상과 다른 차원의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전도사 제자는 정말 좋은 시가 시편에 있다고 성경책을 펼치고, 박사과정 수업하다가 초대 받았다는 신학부 교수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1, 2 연에 3연은 자신이 덧붙여 썼노라고 내쳐 읽어 내려갔다. 기독교교육과 교수는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절절한 싯구, 진지한 음성들로 시심이 충만해졌다. 거기에 더해 음색 고운 노래, 아름다운 플롯 연주, 어눌하지만 선교에 쓰겠다는 기타 동아리,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떡케잌, 향긋한 차, 이런 저런 선물들까지 맞춤 맞았다. 끝낼 시간을 맞추려고 주최한 몇은 낭송하지 않기로 했더니 읽지 못한 시가 하지 못한 말처럼 돌아오는 길에도, 그 후에도 오히려 마음에서 일렁였다. 대학원 무렵 학과 사무실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일 년을 넘게 들여다보던 이은봉 시인의 ‘겨울방학’.
 내 나이 그새 서른 하나/ 어쩌다 잘못 시작한 공부를 하겠다고/ 쫓기는 마음으로 책을 잡는다/친구들은 모두 장가를 들어/ 어허 춥다, 안방에 누워/ 여우같은 마누라와 자식새끼들/ 솜털 같은 사랑을 어우르는데/ 공부는 해서 무엇에 쓰나/ 무수한 돌팔매를 얻어 맞으며/ 빌려쓰는 연구실 창밖엔 눈 내리고/ 엉덩일 부비며 눈 내리고/ 배고프지,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나는 뜻모를 헛소리를 중얼거린다/ 학생들은 나보다 더 폭폭해서 /번번이 몰려와 치를 떠는데/ 그나마 식민지 토막난 나라/ 오오, 중진국 가난한 젊은 학자여/ 주당 일곱시간 시간강의도 / 실은 얼마나 큰 혜택인가/살뜰한 부모님 못뵌 지 오래/ 고향 눈보라 속 청청한 소나무를 생각다 보면/ 텅빈 외양간, 녹슨 쇠스랑을 생각다 보면/ 잘도, 타는구나 먼나라 중동에서 온/ 석유, 난로 위에 구수한 라면이 끓고/ 나는 또또 콧노래 중얼대며 책을 잡는다/ 그만 악착같이 책을 읽는다/
 이 시를 읽던 무렵 교정은 자주 최루탄이 난분분했다, 학부생들은 시위를 하고, 경찰은 막으러 전력을 다하고. 민주화 대의가 절실하던 시절 사업을 하는 어느 어른이 그랬다. 그래, 독재라는데 국민에게 밥을 못먹게 하냐, 잠을 못자게 하냐, 독재를 한 게 뭐냐고. 이렇게 자꾸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면 수출이 안되고, 경제가 어려워진다고도. 온 가족이 놀러갔던 화양동 어디 쯤에서 마주친 수배 당하는 중이라던 총학생회장은 잡혀서 겪을 일이 무섭다고 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속 빅브라더 생각을 자주하게 하던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이던 삼십년 전에서 세상은 어디가 어떻게 나아졌나. 과장이 좀 허용되는 만화라도 이렇게 허탈하게 맹랑하지 않을 시국,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외려 나라를 제대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데 강의실 학생들은 무엇으로 젊음을 견뎌내는 중인지, 삼십년 쯤 뒤에는 단지 전설로나 남을 수 있을지 이런 꼴난 일들 반복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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