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새솔마을은 어디로 가야 하지요?”라고 물어 보면 안 된다. 이 세상에는 없는 곳이니까.

가방을 메고 대문을 나서면 아득해 보이는 벌판. 그 끝에 작은 뫼를 등지고 앉은 산마을이 있다. 들판을 건너가는 길은 언제나 굽어 있다. 작은 개울이 있고 논들이 여기저기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길은 솔뫼 마을에서 출발하는 길과 만나서 개울을 건너는 다리 위를 넘어가야 한다. 산마을에 이를 때쯤이면 나는 학교 간다는 사실도 잊은 채 들 풍경에 푹 빠져서 이것저것 풀꽃도 따고 작은 무당벌레도 들여다보고는 했다. 드디어 작은 고개를 구비 돌아 넘으면 거기에 새솔학교가 있다. 신송초등학교다. 신송리(新松里) 인근의 마을들은 노씨 집성촌이라서 모두 혈족 같은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고 있었다. 설날이면 같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같이 한 상에서 떡국을 먹었다.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입학식을 하러 가던 날은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바람 불고 추운 날이었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올라서니 6학년이 된 동네 언니들이 달려와서 나를 번쩍 등에 업고 가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나의 부끄러운 감정은 언니들의 등짝과 타협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나중에는 외롭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낯설기만 한 공간에서 등에 업힌 채 한참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기억은 지금도 햇살 눈부신 조각이 되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때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어서 열댓 명이 한 울타리에서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고모들, 삼촌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 하루는 할머니가 머리에 큰 양푼을 이고 학교운동장을 가로 질러 오시는 것이었다. 고구마를 쪄서 교무실로 가져가시는 길이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또 하루는 아침에 멀쩡하던 하늘이 빠른 속도로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장마철이었던가. 쉬는 시간에 친구가 뒤에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돌아보니 할머니가 우산과 장화를 들고 교실 문밖에 서 계셨다. 부끄러웠다. 장화까지 들고 오셔서 위풍당당하게 떡 버티고 계신 것이었다.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나는 두 시간 내내 가슴 속이 꼼지락거려서 선생님 말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정말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운동장 귀퉁이에는 검은 목재의 창고가 서 있었고 측백나무 울타리가 큰 키로 주욱 둘러쳐저 있었다. 나는 가끔 푸릇푸릇한 측백나무 열매를 짓뭉개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고는 했다. 그 풋풋하고 상큼한 냄새는 수십 년의 시간을 날아서 지금까지도 내 코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나는 그 모티브를 ‘회억(回憶)’이라는 제목의 시로 써서 ‘잠의 사원(寺院)’을 앞세워 ‘한국문학’으로 등단하였다.

 

고마운 측백나무 울타리.

 

“밤이면 어둔 내면에 / 꽃잎이 충일하고 / 심연의 회오리 속에서 / 움터 오는 풀잎의 노래 // 숲 끝에 농기구 창고가 우뚝 있었다 / 숲에서 내다보면 / 창고 곁에서부터는 밭의 시작이었다 // 청소 시간에 남자애들은 / 측백나무 밭으로 갔다 / 一年生 여린 잎새 밑에 / 열매를 따 가지고 와 / 우리가 닦은 골마루와 유리창에 / 신 목향 냄새를 날렸다 // 우리들은 어항 씻던 물을 떠서 / 비눗방울을 날렸다 / 무지개의 작은 우주는 터지지 않았다 / 뒷동산 솔숲으로 사라져 / 눈에 안 보일 때까지”

 

가을이면 마을사람들은 일제히 들기름을 짜고 우리는 그 찌꺼기를 목화솜에 묻혀서 학교로 가져와 삐걱거리는 교실바닥을 문질러 대곤 했다. 며칠간은 들기름 내가 진동하는 교실에서 산수를 배우고 색칠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여섯 해를 그 울타리 속에서 인간과 역사와 세상을 배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신송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씩 신축건물이 들어서고 낯선 모습으로 변해 갔다.

새솔학교, 새솔마을 그리고 어머니는 내 시의 원천이 되었다. 그 때의 살림살이들을 시어로 차용할 때는 늘 어머니의 검증을 거치고는 했다. 검고 낡은 목조건물, 삐걱거리는 골마루. 나에게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쳐주고 낯설음의 공간들을 설계해 주던 새솔학교. 거기서 새솔마을로 가는 들판을 가로지르던 하얀 길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만 살아 있는 상상의 학교, 상상의 마을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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