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열 <증평군수>

 

나의 아내는 가끔 나에게 투정을 부리곤 한다.

“당신이 만날 걱정하는 애인들 좀 소개시켜 줘요. 나보다 더 예쁜가 보게요.”

그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애인들과 헤어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오래전부터 홀로 사시는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매주 한 번씩은 들러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사먹고, 가끔은 함께 산책도 했다.

그 분들은 내가 올 때를 손꼽아 기다리다 나를 보면 반가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지금은 바쁜 일정 때문에 전보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날마다 가슴에 품고 다니는 할머니들이다.

그 중에 커플반지를 나눠 낄 만큼 아주 친한 할머니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몇 년 전 어느 날, 정기적으로 방문을 하던 할머니들 중 가장 연세가 많은 마리아 할머니를 찾아갔다.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는 손을 모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위해 정성껏 기도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나와 인연을 맺은 후로 나를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하신다고 하셨다. 나 또한 유난히 마리아 할머니에게 정이 갔었다.

마리아 할머니는 서른 살도 안 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병이 들어 저 세상으로 보냈다며 울먹거리셨다.

“그때는 입에 풀칠도 못하던 시절이라 약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땅에 묻었어. 저승에 가면 무슨 염치로 아들을 볼까나. 난 염치가 없어 죽지도 못 혀. 아이고, 서러운 내 팔자야.”

두 손으로 가슴을 뜯어가며 우는 구순이 넘은 할머니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아팠다. 나는 흐느껴 우는 할머니 손을 잡아드리고 어깨도 주물러드렸다. 할머니는 우시다가 말고 응석을 부리셨다.

“아이고 시원타. 이왕이면 다리도 주물러 줘. 우리 아들이 주물러주고 가면 한 열흘은 안 아프다니까. 아무래도 자네 손은 약손인가 벼.”

할머니는 미안하고 고마워서 인사치례로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내 손이 진짜 약손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아들, 이 늙은이는 이때까지 가락지 한 번 못 껴 봤구먼, 죽을 때가 돼서 그런지 가락지 한 번 껴보고 싶어. 가락지 하나 사다 줄 텨?”

할머니는 바지 안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0000원짜리 몇 장을 꺼내서 나에게 쥐어주셨다. 나는 그 돈을 할머니에게 돌려드리고 밖으로 나와 곧장 금은방에 들려 똑같이 생긴 금반지 두 개를 사서 다시 할머니 댁으로 갔다.

“뭔 일이여? 왜 다시 온 겨?”

“하하. 커플반지 사러 갔다 왔어요. 이제 할머니랑 저는 애인이 된 거예요.” 할머니는 똑같은 반지 두개를 보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하셨다.

“자네는 내 아들인디…….”

“서로 끔찍이 걱정하고 배려하는 사람끼리는 애인이라고 부른대요. 가족이든 남남이든 모두 다요.”

“그려? 그렇담 우리가 애인이지. 암. 난 늘 자네걱정만 하고 사는 늙은이니까. 그리고 이 가락지에 자네가 나를 위하는 마음이 들어있으니 이 가락지도 자네나 다름없구먼. 앞으로 죽을 때까지 가락지 안 뺄 겨. 아니지. 죽을 때도 끼고 갈 거여. 으흐흐흐.”

그때 커플반지를 만지며 웃으시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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