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보이지만, 그래도 결말이 어떻게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이달 초 충북도는 한 간부공무원의 김영란법 위반 논란이 불거져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난 9월28일 김영란법 시행이후 전국적으로 이 법 위반 논란을 둘러싼 보도가 수차례 있었지만 충북에서, 그것도 간부공무원이 연루된 것인 만큼 파장은 컸다. 일각에선 충북의 첫 김영란법 위반 사례로 기록되는 게 아니냐며 감사 진행 상황에 촉수를 뻗치곤 했다.
충북도청 토목직 S 과장(4급·서기관)은 지난 3일 한 예식장에서 장녀를 출가시켰다. 예식장엔 화환 몇 개가 들어왔고 전·현직 공무원들과 친·인척, 혼주 지인들이 결혼을 축하하러 왔다. 예식장 분위기는 여느 집 결혼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환을 보면서 김영란법 위력이 어떠한 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도청 토목직 과장쯤 되면 화환이 즐비할 법도 한데 말이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사흘 뒤 한 방송이 계좌번호가 적힌 S 과장의 자녀 결혼식 알림을 문자메시지로 건설업체에 뿌렸다고 보도한 것이다. 청첩 문자메시지를 받은 업체들은 인터뷰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껴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익명의 제보자는 “내키지 않았지만 보험도 들고 눈도장도 찍을 겸 결혼식장을 찾아가 얼마를 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심지어 10만원 넣으면 안 하니만 못하니까...라며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주말 결혼식을 치른 뒤 월요일인 5일 하루 연가를 내고 지난 6일 출근한 S 과장은 기겁을 했다. 청첩 문자메시지와 관련해 언론의 취재가 들이 닥친 것이다. 취재가 시작된 뒤에야 자신의 계좌에 50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S 과장은 즉시 이 축의금을 되돌려 준 뒤 충북도 감사관실에 신고했다. 그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고 축의금 입금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50만원을 입금한 업체 대표와도 직무연관이 없다고 했다.
졸지에 김영란법과 관련해 방송을 타고 여론의 입줄에 오르내린 그는 가족들, 그중에서 사위와 딸에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괜한 구설에 올라 축하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으니 자책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청첩 문자메시지는 S 과장과 함께 근무하는 O(7급) 씨가 청내 행정망에 올라 온 안내문을 찍어 작년에 감독을 맡았던 공사 현장감독 2명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도는 내부 행정망을 통해 직원들의 애경사를 공유하고 있는데 직원들의 요청에 따라 3개월 전부터 은행계좌를 함께 공지하고 있다. 
관심은 누가, 왜 이 청첩 문자메시지에 흑심을 품고 제보했느냐에 쏠렸다. 직원 3000여명이 공유하는 도청 행정망엔 이미 계좌번호를 공지해 와 S 과장의 (계좌번호가 적힌) 청첩을 부담으로 느낀 직원의 소행으로 보긴 어렵다는 시각이다. 청첩 계좌번호는 우리 사회에 일반화됐을 정도로 낯설지 않은 신풍속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선은 자연스레 50만원 입금 업체로 향했다. 도청 안팎에선 이 업체가 공사 하청을 받지 못하자 제보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러나 이 업체 Y 대표가 충북도 감사관실 조사에서 이를 강력하게 부인, 실체 규명에 실패했다.
불똥은 O 씨에게 튀었다. 경조사를 외부로 알리지 못하도록 한 공무원 행동강령이 발목을 잡았다. 순수한 마음에서 상사의 경사를 지인에게 알린 게 승진을 앞둔 그에겐 부메랑이 됐다.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공무원 2명과 업자 2명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마친 도 감사관실은 권익위원회 유권해석과 고문변호사 자문을 거쳐 곧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것은 법과 규정을 너무 경직되게 해석하지 말라는 거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2~3년간 3000명은 재판을 받아야 김영란법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김영란법은 투명하고 공정한, 청렴한 사회를 만들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겨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반에서 많은 혼란과 혼선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우리가 우려했던 부분은 ‘고발자 천국화’였다. 내부든, 외부든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있다면 누구든 해코지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게 김영란법이다.
이번 충북도청 사례처럼 부하 직원이 선의로 알린 청첩을-무작위로 뿌렸다면 몰라도-문제삼은 것은 김영란법을 악용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일하는 조직, 서로 믿는 사회를 만드냐는 충북도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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