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 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와 관련된 국정조사 청문회장에서 국회의원과 증인 사이에서 벌어진 질문과 답변은 마치 창과 방패를 든 무희들의 경연 같았다. 실제 누가 유리할 것인가는 창과 방패의 재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질 수 있겠지만 기분상으로는 창을 든 쪽이 방패를 든 쪽보다 유리할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하지만 청문회장의 풍경은 그렇지 만은 않았다.
 특히 김기춘, 우병우와 같이 노회한 증인들의 경우 대부분 ‘모른다’ 혹은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하였고 업무지시를 받아 적은 비망록의 내용조차 당사자가 고인이라는 이유로 부정해버림으로써 국회의원들의 예봉을 무디게 만들었다. 철면피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그들의 뻔뻔함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들이 대거나 답변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두 사람은 법률을 공부했고 검사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청문회에서 나올 질문에 대한 답변을 철저하게 준비하였고, 청와대에서 일어난 일은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입막음을 잘해서 그런지 증거가 있으면 내놓으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 그들은 살아있는 권력과 가까이 있었다.
 이에 반해 칼자루를 쥔 국회의원들은 언 듯 보기에 유리한 것 같았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보니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 사실 국정조사 특별위원이라 하여도 국회의원들은 검사와 달리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실체에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한다는 입장에서 그리고 촛불민심을 무기삼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나 의혹을 집중 추궁하였지만 증인들의 답변이 부실할 경우 질문은 의혹제기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사실관계나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도 부인하거나 마지못해 인정하는 증인들에게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감정을 앞세우거나 훈계조로 호통을 치고 겁을 줘도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상황까지 미리 예상하고 연습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서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효과를 얻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리한 추론과 비약이 나오고 따라서 시청자인 국민들은 답답해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때론 어르고 때론 회유하며 아니면 비분강개하여 목소리를 높이거나 으름장을 놓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국회의원들은 한 두 명이면 된다. 헛발질도 하고 엉뚱한 얘기도 하면서 증인들의 정신을 잠시 헛갈리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도 질문의 전술 중 하나였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의원 상호간에 협업과 역할분담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공조하면 되는 것이다. 진실은 하나이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국정조사청문회는 국정농단의 핵심의혹당사자들의 진술을 국민들이 직접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이다. 예전과 다르게 이번 청문회에서는 정보통신사회에 걸맞게 국민들이 청문회에 직접 참여했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특히 네티즌수사대들은 증인들의 과거행적이나 사실들을 실시간으로 특조위원들에게 제보하여 증인들의 사실인정과 태도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동안 몇 차례 청문회에서 창은 날카롭지만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혹은 많은데 연결고리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개인의 역량도 있고 정당의 사정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때 보다도 높아진 국민의 관심을 격려 삼아 그동안의 왜곡된 국정운영행태와 정치질서 그리고 잘못된 관행과 관료들의 삐뚤어진 충성심, 정경유착 등을 척결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진 창이 어떻게 사용될 것이냐에 달려있다. 남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창을 갈고 닦아서 방패를 뚫어야 한다. 새해 특조위원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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