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며칠 전 원로 법조인 9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반대하는 의견광고를 한 중앙일간지 1면에 게재, 논란을 자초했다.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 등 원로법조인을 자청하고 나선 이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나 찬반을 떠나 순전히 법률전문가로서 법적 견해를 밝혀 헌재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서 6개 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법으로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일반 국민과 보수세력들이 첨예하게 대립한 상태에서 한쪽 편에 선 원로법조인의 모습이 그리 당당치 못하다는 의견이 많다. 특검 수사결과와 헌재 재판결과를 지켜보면 될 일을 갖고 이런 의견을 냈다는 것 자체가 헌재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이 박 대통령 대리인단에 참여하고 광고게재에 참여한 원로법조인중 일부가 추가 합류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순수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동안 원로법조인들의 순수한 개인의견으로 보고 공식 대응을 하지 않던 국회 탄핵소추위원단도 이들의 주장을 공개 반박하고 나섰다.
세상 살면서 원로라는 이름이 부끄럽게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원로임을 내세우려면 그만큼 후학들에게 모범이 돼야 한다.
원로(元老)란 무엇인가.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해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일컫지 않는가. 경로사상을 중히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원로를 원로답게 대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나 원로들이 있고 나이가 들수록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며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하거나,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원로가 짐이 되는 사회라면 어떨까. 검찰 수사결과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나 다행이긴 하지만 김병우 충북교육감 초청 원로체육인 만찬 자리가 문제된 적 있다. 김 교육감은 지난해 10월 전국체전을 앞두고 원로체육인 30여명을 초청해 저녁을 함께 했다. 이날은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다음날이어서 초청하는 쪽이나 초청받는 쪽 모두가 극구 조심할 때였다. 엄밀히 말하면 체육담당 장학사들이 ‘소년체전 7연패 달성 기(氣)’를 받기 위해 선배 또는 스승을 초청한 자리에 교육감이 함께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참석한 누군가가 김 교육감이 식사비를 냈고 경북교육감의 3선을 거론하며 도와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며 외부에 흘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공직선거법과 청탁금지법 위반혐의로 번진 이 ‘사건’은 동료 원로체육인은 물론 후배체육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순수한 마음에서 밥 한끼 대접한 식사자리가 고발전으로 얼룩졌으니 원로 대우받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원로체육인 사건이 수습되기 무섭게 또 터졌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설 연휴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지역원로 13명을 초청해 만찬간담회를 가졌다. 이 지사는 정·관계, 학계, 언론계, 문화계, 사회단체분야 원로들에게 지역현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그런데 국토부가 확정 발표한 동서4축 중 공주~청주간(20.1㎞)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자료집에서 빠진 것을 두고 한 참석자가 SNS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중부고속도로 확장에 올인하는 이 지사가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청주경유를 희석시키기 위해 일부러 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공주~청주간 고속도로는 국가사업이다. 국가가 추진하는 이 사업이 자료집에 빠져 있다고 해서 지역현안 추진에 영향을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고의든, 착오든 이 노선이 빠져 있다면 즉석에서 지적하면 될 일이지 굳이 바깥까지 들고나와 들쑤실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원로 초청 행사를 갖는 기관장에게 한마디 한다면, ‘뭐주고 뺨맞을 짓’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밥 한끼로 그들의 사상과 언로를 막아서는 안되겠지만 원로 모임만 하면 불미스런 일이 터지는 꼴불견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원로 선정부터 잘 해라. 원로는 나이로만 따질 게 아니다. 학식과 덕망이 있어야 하고 원로답게 언행해야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다. 어느 분야든 원로가 대우받는 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원로라는 분들도 뒷담화나 하는 그런 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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