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 김주희(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아버지가 아프시다. 아니 아플 거라고 병원에서 그랬다. 첨단 의료기기들이 병 난데를 찾아냈다고 의사가 그랬다. 나는 아버지 운이 틴 거라고 잠시 기뻐했다. 형제들도 심해지기 전에 발견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초기이고 대학병원씩이나 되니 치료를 잘 해줄 것이라고 안도했다. 우리는 때로 규모와 품질이 비례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니까, 무지하므로.
 아버지는 폐렴으로 입원해서 조직 검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들이 다 솔가하고 멀리 살다보니 부모님 두 분이 알리지 말자고 서로 격려해가며 입퇴원을 했고,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와 조직 검사를 해두었는데 결과 보러 간 날 또 입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병실에 도착해 있으려니 옆자리 보호자가 내게 다가와 소근댔다. 부모님 두 분이 아침 내 서로 의견을 다투시더라고 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알리지 말자고, 엄마는 혼자 알아야 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누워계신 병실에 있자니 덤덤한 것 같기도,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기도, 망연한 것 같기도, 어이없는 것 같기도, 억울한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괜한 환자 만드는 거 아니냐고, 아프지 않은데 번거롭게 한다고 하시고.
 멀쩡하던 아버지는 손목에 링거를 꽂자 위중한 환자처럼 출입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사진을 찍으러 이동할 때면 병원 직원이 침대에 누운 채로 밀고 가기도 하고, 휠체어로 밀고 가기도 했다. 그럴 때 아버지는 흰색 면바지를 멋지게 입던 젊던 모습도, 붓을 들고  글씨를 쓰던 평화로움도 없는 단지 환자일 뿐이었다, 세상에나.
 몸 상태 확인에만 일주일 가깝게 걸렸다. 굶고 사진 찍고 한 끼 식사하고, 다음날 또 굶고 사진 찍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병원에 함께 있대도 해드릴 게 별로 없었다. 호흡기 쪽 병동이라 병실 여기저기 기침 소리에 심란해지면 아버지 마스크 드려야 되나 하다가 전염 안되게 병원이 잘 할 거라고 내 손이나 씻기도 하면서 절실하게 시간들을 보냈다. 병에 무지하고 겁먹은 처지로는 병원 검사에 모두 응하고, 의사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일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의사는 신약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했다. 현재로는 가장 좋은 주사약이라니 그러자는 수밖에. 조직을 미국으로 보내서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달리 더 자세한 검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래저래 병원은 여러 검사들을 추가로 더 했다. 며칠 집에 있다가 다시 병원에 가면 영락없이 피를 뽑았다. 병원에서는 굶기고 피 뽑고 무슨 사진인가를 찍는 일을 계속했다. 치료도 받기 전에 굶어서 일 나겠다는 조급증이 들기도 했지만 좋은 주사를 맞는 일이라는 기대로 위안을 삼았다. 
 치료를 받으러 간 날은 기가 막혔다. 치료제와 유전자가 맞지 않는다고, 검사 결과가 잘 못나왔다고, 신약 프로그램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미안하다고 하고. 검사하고, 기다리고, 기대한 것들이 허망해졌다. 치료를 않자니 불안한데 하자니 위험한 방법만 남아 있다고 했다. 고생만 하고, 의술 아는 이들이 말리던 그 방법이라니. 대상을 지정할 수 없이 화가 나고 눈물이 솟았다. 의사에게 묻는 일은 허사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마치 심감하지 못하신 것처럼 의연했다. 팔십이 넘었으니 충분히 살았고, 자식들 다 성례시켰으니 그만 됐다고, 그 치료 받지 않는다고. 욕심을 부리다보면 손주 장가가는 것도 보고 싶고, 증손도 보고 싶고 자꾸 욕심이 늘어날 거라고. 지금은 아직 그 때가 아니고, 너무 이르고, 목숨에는 충분한 게 없고, 모든 생명은 부지하려고 무진 애쓰는 게  당연한데, 무엇보다 아버지가 안 아프고 더 우리와 한참 더 재미있게 사셔야 하는데. 
 병원치료는 이래저래 난망해지고 아버지는 병을 얼마쯤 추상으로 삼는 중인 것 같다. 좋다는 음식 드시는 거 말고는 여전하시다. 엄마의 고마움을 조금씩 내비치는 식으로 달라지는 걸 빼고는. 사는 기쁨을 지켜나가려면 오늘은 오늘 형편만치 살고, 치료 않고 지낼 정도라면 병을 생각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어쩌면 모른다. 질병의 치명적 해악은 일상을 앗아가는 거라고 수잔 손택이 그랬던지. 아버지가 경로당으로 해서 한 바퀴 돌러 나가셨다는 엄마 말씀이 서럽고 반가운 요즈음, 우선은 삶의 기쁨을 용기있게 누리고 다가오지 않은 여러 경우의 수들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도록 튼실해져야 하려나부다. 그 사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들을 알 수 있게 되기를, 고통 적은 치료방법이 또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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