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 논설위원 / 충북대 교수

권수애 논설위원 / 충북대 교수

(동양일보)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주말이었다. 거실 앞 군자란이 연두 빛 꽃대를 살짝 올리더니 주황색 꽃봉오리를 터트려 한 두 송이가 활짝 피었다.

겨울에 관리를 잘못해서인지 소생하지 못한 식물이 마른 가지만 남겨두었다.

관심이 부족했음을 자책하면서 화분을 가지고 화원으로 향했다.

끝부분에 연한 새싹이 돋아난 홍콩야자와 분홍색 꽃을 가득 피운 허브를 새로운 식구로 맞아들이며 이제 죽지 않도록 더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농경사회에서 우리는 고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대를 이어 한집에서 오래 살면서 이웃과도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생활까지 공유하는 문화에 익숙했었다. 동네 사람의 면면을 다 알고 지내는 터라 어른들은 어떤 집의 아이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훈육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관습은 집을 떠나 외출을 했다가도 동네 어귀에 들어서게 되면 마주쳐 보는 사람이 없어도 옷매무새를 바로 잡고 걸음걸이까지 조심하여 비난받을 행동을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인간관계에 있어 당사자 외에 가족을 비롯한 후광에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되는 비합리적인 측면도 있었다. 산업의 발달과 함께 지리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활동 범위가 확대되면서 생겨난 도시 문화는 과거보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무언의 제약에서 한층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지연과 학연을 통한 모임을 중시하고 주변 사람의 개인사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버리지 못해 불편한 관계를 초래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사랑에서 우러나는 관심이라면 부담스럽거나 불편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심은 자칫하면 사생활 침해나 간섭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사실이나 근황이 궁금하다 해서 일과 무관한 사적인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자녀의 입학이나 졸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 것이 상례라 여기고 있다.

젊은이들이 겪는 일반적인 진로의 길이지만 매 과정마다 어렵고 힘든 고비를 극복해야 하는 요즈음에는 진심으로 잘 되기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것이 최상의 배려이다.

부모의 관심마저도 지나치면 자녀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개인의 성공과 미래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느낀다는 사실만 생각한다면 자녀를 믿고 기다리는 무언의 관심이 최선이 아닐까?

일본에서 시작되었다는 ‘졸혼(卒婚)’이 최근들어 늘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 ‘졸혼을 권함’을 쓴 스기야마 유미코는 형식적인 혼인상태는 유지하되 각자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졸혼이라고 했다. 기존의 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결혼 형태에서 벗어나 각자가 원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졸혼을 선택하는 사람은 부부나 가족이 너무 가깝다는 생각 때문에 서로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도리어 상처를 줄 수 있으나, 떨어져서 각자 생활하다가 가끔 만나는 것이 가정불화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는 이미 5년 전에 황혼 이혼이 신혼 이혼을 앞질렀다고 한다. 졸혼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부부간에도 간섭과 불평이나 불쾌한 지적으로 비칠 수 있는 지나친 관심을 경계하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은퇴 후의 부부들에게는 자유로운 여유시간을 자신에게 재투자하고 배우자에게는 적당한 관심을 보여, 따뜻한 마음과 가까이서 지켜봐 주는 아름다운 무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스스로 성장하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무한한 신뢰가 있다면 무관심이 내포하는 충분한 사랑의 빛을 느끼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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