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유난히 화사한 봄 햇살에 은빛 활어처럼 반짝이는 맹골수로 검푸른 바다 물비늘은 저렇듯 싱그러운데, 1073일 만에 우리는 우리의 기억 저 편에 묻어두었던, 한없는 부끄러움과 먹먹한 절망감과 돌이키기 두려운 트라우마를 건져올렸다.
무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아직까지 사랑하는 아들 딸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의 절절한 아픔을 애써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 아픔이 우리에게 같은 질량으로 전이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시퍼런 바닷물이 들이닥치는데도 ‘자리를 지키라’는 어른들의 말을 너무나도 잘 들은 죄로 봄꽃송이처럼 화사한 아이들의 생명이 속절없이 스러져간 그 절망의 순간들을 다시금 투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7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물때 잔뜩 낀 처참함으로 우리들의 ‘작위적 무관심’을 꾸짖고 있었다. 곳곳에 아픔처럼 새겨진 선명한 긁힘 자국과 심하게 부식돼가고 있는 세월호 선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23일 오전 4시 47분, 세월호는 전남 진도 맹골수로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3년의 세월 동안 40여m 차디찬 바닷 속에 수장시켜 놓았던 우리들의 부끄러움이었다. 그 부끄러움을 감내하며 국민들은 서서히 인양되는 세월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수습되지 못한 고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영면에 이르기를 기원했다.
지난 21일 검찰에 소환된 박근혜 전대통령은 역대 최장 시간인 21시간 30분의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그 시간에는 박 전대통령이 조사가 끝난 뒤 신문조서를 꼼꼼하고 정밀하게 들여다본 시간도 포함돼 있었다.
같은 7시간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뒤 박 전대통령이 마지막 사고관련 지시를 내린 오전 10시 30분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5시 15분까지 ‘실종된 7시간’을 자신의 신문조서를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챙겼다면 이렇듯 국민들의 절망과 분노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 한다. 섣부른 주장이다. 화해에는 선행돼야할 조건이 있다. 소급해 이야기 하자면, 화해의 장을 형성하려면 그 이전에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그 진실의 토대 위에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한 가름이 있어야 하고, 그 가해자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진실된 사죄가 뒤따라야 한다. 용서와 화해는 그 다음의 순서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해자의 입장에서 진실된 사죄를 하는 이는 없었다. 피해자만 있을 뿐이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5년 4월 “세월호선체를 인양하지 말자”며 “괜한 사람만 또 다친다”고 했다. 최성규 국민대통합위원장도 막말 대열에 합류해 세월호 유족들에게 “더 이상 과거에 얽매어 있어서는 안된다”며 “아픈 상처만 곱씹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이런 저급한 인식을 가진 이들에게 역사의 준엄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세월호는 선체의 인양 뿐만 아니라 진실까지 인양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것이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을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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