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 이현수(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사회학자 김우창 선생의 ‘정치와 삶의 세계’는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책이다. 성장 중심의 국가정책이 빚어낸 오만과 모멸의 한국적 결합구조를 ‘시장기제적 통제’로 이론화시킨 그의 저서는 여전히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책상 위 지척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시대는 흘러도 그의 명석한 이론들이 여전히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속절없는 ‘진영 논리’가 두드러진 우리 사회에서 ‘규범의 회복’을 공동체의 방향으로 제시한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유실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시민의 일상적 행복을 가능하게 한다고 역설한다. 책의 배경인 97년 외환위기의 경제적 난국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먼저라는 김우창의 주장을 현 시기 다시 성찰해보는 것은 분열된 한국사회의 현주소가 그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의 상대주의 법사상은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논란이 되고는 있지만 관용과 민주주의 가치를 내재했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민주주의를 관용이라는 가치로 이해했다. 법치국가 사상을 민주주의 사상에 우선시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상식과 도덕성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정신적 토양이다.?이는 이성의 질서가 규범이며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관용적 공존이 가치 있는 공동체의 길임을 역설한 것이다. 대선이 끝난 현 시기 우리사회 규범의 회복과 관용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공동체를 이른바 ‘통합’의 길로 인도할 것이 분명하다면 김우창과 라드브루흐의 인문학적 성찰에 이시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우리 사회를 재생산해온 조정원리는 주지하다시피 발전국가에서 신자유주의로 변화된 중대한 전환점이었던 1997년 외환위기였다.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연대와 도덕성이 아닌 경제라는 천박한 신념들이 발원된 것도 이시기 아니던가. 다시 20년의 세월이 흘러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시대에 중심에 인간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대한 출발점은 당연히 97년 시대체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있다. 그리고 그 성찰의 핵심에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공동체 회복에 있다. 이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자본보다 인간을 중심에 둔 규범의 회복과 관용적 민주주의의 증진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청년고용, 안보, 4차 산업혁명, 복지, 외교 등 해결해야 할 산적한 정책과제는 이제 온 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나라의 무거운 숙제다. 이 과제들이 내재하는 각론은 불평등 해소와 인간중심 민주주의 성숙이다. 허나 우리에게 규범의 회복과 공존을 위한 관용의 태세는 채비되어있는지 돌아 볼 일이다. 인간에게는 타인과 소통하고 이해받고 싶은 태생적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가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내가 완전하지 않듯 타인도 완전하지 않다. 이를 인정하는데서 입장의 차이를 넘어 진영갈등은 해소되고 참다운 소통과 공존은 시작된다.?

진영의 입장에 대한 고민보다 공동체에 대한 삶을 기획해야 하는 것이 새 정부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이다. 이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응답은 치열한 규범회복과 입장이 다른 이들에 대한 진정어린 관용이다. 우리의 지난 시대적 과오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데 주저 없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 그 속에 사람을 더 담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들에게 특별함을 요구받고 있는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역설했다. 김우창과 라드브루흐가 역설한 규범의 회복과 상대주의 법사상도 종국에는 인간이 중심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철학과 현실의 거리가 멀다고 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 자체가 철학의 범위를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 사회의 객관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공동체에 대한 사람중심의 철학적 마주침이 존재해야 된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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