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논설위원/강동대 교수)

(동양일보) 우리가 시쳇말로 오뉴월 땡볕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 종종 한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현상을 반영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명언들이다. 이러한 말이 후세들에게는 삶의 지침 혹은 명언이 된다. 살다보면 낱말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과거 보릿고개 춘궁기 구황작물 등이 요즘 귓전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우물가 샘 마중물 장독대 토광 등등은 우리 일상 주변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 이었다. 그리고 한 여름이면 개울에서 목욕하고 배고프거나 출출하면 주변 밭에서 농작물을 서리하여 배고픔을 채우는 시절 이었다. 한 여름의 무더위는 동네 마을 앞 개울가에서 목욕을 하거나 개울이 멀면 집 앞마당 우물가에서 주로 등목을 하였다. 등목을 하던 시절의 마을 인심은 시원하고 사람냄새가 솔솔 풍겨나는 세상이었고 사람이 사는 것 같은 사람세상이었다. 오늘은 예전 오뉴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등목에 대하여 논해 보고자 한다.

등목이란 무엇인가? 등목은 사람의 목에 닿을 만한 깊이의 물 혹은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사람의 허리 위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겨 주는 일을 말하는 것이며 비슷한 말로 목물 등물이 있다. 등목과 목물은 널리 사용되는 표준어이고 유사한 의미의 등물은 네이버 어학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목물이 기본적인 표준어로이며 이는 냇물 우물물 등의 자연수에 몸의 땀이나 먼지를 씻어내는 간단한 목욕법이다. 이는 옛날 죄나 부정한 것을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는 생각의 찬물 목욕법으로 조상의 제사나 공을 드리는 산신제를 지낼 때 등 종교적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불교풍속 전래에 의하면 몸과 마음은 항상 맑고 깨끗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였다. 오늘 날 인도나 이슬람교에서 강물 혹은 비를 맞으며 몸을 씻는 것도 유사한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 종교적 의미보다는 큰 대야에 따뜻한 물이나 우물물을 떠서 광이나 뒤꼍에서 간단히 몸을 씻는 것도 목물이라 하였다. 시쳇말로 등목은 한 여름날 농촌 마을에서 노동으로 땀을 많이 흘린 후 윗옷을 벗고 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리면 바가지로 물을 퍼 몸에 쏟아 붓는 것이다. 그러면 물은 등줄을 타고 뒷목에서 허리 쪽으로 시원하게 흘러내렸다. 샤워 시설이 없던 예전의 간단한 샤워법이다.

더불어 오뉴월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절을 말하는 것으로 이와 관련된 속담이 매우 많다. 그 중 몇몇을 소개해 보자.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아니 걸린다는 여름에 감기 앓는 사람은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고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고 오뉴월 더위에는 염소(혹은 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오뉴월 더위가 어찌나 심한지 단단한 염소(암소) 뿔이 물렁물렁하여져 빠질 지경이라는 뜻으로 오뉴월이 무더위를 비유한 것이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더운 오뉴월에 손님 접대는 무척 어렵고 힘듦을 비유한 것이고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는 북한어로서 오뉴월 장마에 식물이 잘 자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남의 일은 오뉴월에도 손이 시리다는 남의 일은 쉬운 일이라도 괴롭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남을 위하여 진심으로 성의껏 일하는 것이 쉽지 아니함을 비유한 것이다.

유년 시절 시골 우물가에서 커다란 대야에 펌프질해서 물을 채우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요즘 대도시의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는 우물가의 자유로운 물장난도 등목하자라는 말도 무슨 소린지 모를 것이다. 벌건 대낮에 웃통을 벗는 것은 도회적으로만 자란 요즘 아이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이다. 옷은 목욕탕에서나 벗는 일이고 시골마을의 담장주변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집 안을 넘겨다보는 곳에서 벌거벗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등목을 하는 모양은 과거 선생님 앞에서 기합을 받는 것처럼 엉덩이는 올리고 팔을 쭉 펴 땅을 짚어야 하며 등에 물을 부으면 바지와 팬티로 물이 줄줄 흘러들어 왔으나 시원함은 에어컨의 수 백 배 이다. 과거 어린 시절 우리의 아버지나 이웃 집 아저씨는 모두 등목으로 더위를 달랬고 한 여름날 동네 우물가에는 저녁이면 어머니들의 이야기 거리로 화기애애 하였다. 지금은 집집마다 에어컨이 아파트 외벽에 매미처럼 매달려 있으나 예전 시골마을에는 동네 우물이 냉장고였고, 참외 수박 막걸리가 더위를 달래는 요깃거리였다. 동네 우물가와 집안 샘은 이웃 간 혹은 가족 간 사랑과 정을 나누는 장소였다. 마을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우물가와 가족 간 사랑과 정을 교류하는 샘에서의 등목은 한여름 날 이웃 간 가족 간 화목과 친목과 사랑을 나누는 정겨운 우리의 전통놀이였지 않았나 싶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