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제가 젊은 한 시절을 한국 충북도 청주시 개신동에 있는 충북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공동학습과정을 겪었습니다. 교수라는 의식을 의도적으로 버렸었습니다. 충북대학교의 소재지도 ‘개신(開新)’동이지만 충북대학교의 건학 이념도 ‘개신(開新=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학문은 개신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햇병아리 학문연구자일 때부터 새로운 미래를 열려고 하는 사람과 현재 국내·외 학회에서 일단 공인된 것을 재빨리 수용하고 번역해서 소개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자는 연구자라기보다는 수입업자로 본 거지요. 비록 몸과 마음이 식민지화·영토화되어 있더라도 영혼이 식민지화·영토화 되지 않는 상태라면 ‘개신개래’(開新開來=저 자신이 만들어낸 말인데 그 뜻은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엶으로서 지금은 없는 미래가 열린다)의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고 거기에 희망과 기대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까지 식민지화·영토화 되어 버리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거기서 탈출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화·영토화된 상태가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오사카대학(大阪大學) 준교수 “정말 그렇습니다.”

 

▷김 주간 “저는 일본의 국가공무원연수소에서 고급공무원에게 여러 번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연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종래의 ‘관주도의식’으로부터의 탈각과 ‘민관대화·공동·개신을 통한 사회변혁의식으로의 대전환’의 필요성과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반응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한마디로 관주도의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일본이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올바른 관주도의 성과이며 문제가 있다면 국민의 의식수준이 시대적·상황적 요청에 걸맞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문이었습니다. 국민은 어디까지 관주도에 의한 계몽·계도·계발의 대상이지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고구조가 관료조직의 기반이 되었고 근대국민구가 형성의 전과정을 통해서 정리·확립·강화 되다가 제2차세계대전후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전후 일본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는데 적지 않게 놀랬던 거지요. 이런 생각이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사회를 오염시켰고 일본사회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의 연원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자기들의 특권적 위상과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양심적인 관료는 자꾸 고립되고, 관료는 집단으로 ‘국민보다 우리 입장이 평온무사한 게 제일이야’라는 병에 걸려 있다는 인상입니다. 양심적인 관료 OB가 목소리를 높여 주었으면 합니다. 신문기자도 이빨 빠진 ‘조직인간’입니다. 관리된 지면을 버리고 큰 언론매체를 뛰쳐나와서 고군분투하는 진정한 저널리스트 중에서 일본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개신(開新)하는 인물이 나타나는 것을 기대합니다.”

 

▷김 주간 “지금 후카오 선생이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면서 거기서 일중관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겠다고 애를 써온 것은 다름 아닌 미래공창의 실천궁행입니다. 일중 어느 쪽에도 너무 편향되거나 종속되지 않으면서 일중 간의 관계 개선을 민간 주도로 도모하고 계신거지요. 저는 대화모임에서 늘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이동하는 가운데서 생각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사이에서 생각한 것을 나라(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어느 나라든) 안에서 문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미래공창을 실현하려는 끝없는 여정을 거쳐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후카오 준교수 “‘사이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네요.”

 

▷김 주간 “저는 여러 곳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통화를 거론해 왔지만 그것이 최종목표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개신개래=미래공창으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요. 미래공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영혼이 다시 무언가의 식민지·영토가 되고 맙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저는 ‘혼의 탈식민지화’를 거론할 때 반드시 동시에 생각해야 될 문제가 ‘미래공창(未來共創)’이라고 생각합니다. 탈식민지화된 혼은 ‘혼의 빈 껍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열고 자유로워진 혼은 어린 아이와 같이 편견이나 선입견 등으로부터 해방되고 있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김 주간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 영혼이란 어떤 의미에서 일체의 과거에 의한 주박·결박·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영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가 거의 없고 미래만이 풍부한 어린아이의 영혼과 같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를 만든다는 생각처럼 반생명적이고 식민지화적·영토화적인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부모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부모 멋대로 아이를 지배·통제·규정하려고 합니다. 말로는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한다면서도 부모 뜻에 맞추어서 인간형성을 꾀하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오사카대학(大阪大學) 준교수

▷후카오 준교수 “그런 감각으로 육아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요.”

 

▷김 주간 “저는 그런 사고와 행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의 근본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식민지나 영토가 아닙니다. 아이는 독자적인 생명가치를 지니고 부모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의 파트너입니다. 그와 같은 인식과 실천을 일상생활화 하는 것이 최우선의 긴급과제입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노르웨이의 오슬로대학에서 열린 세계미래학 대화집회에서 ‘미래는 현재의 영토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격렬한 논의의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합의점은 미래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생크추어리(성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래세대는 현재세대의 식민지·영토가 아니라 함부로 사유화해서는 안 되는 성역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과 실천의 근본전환이야말로 세대간 공정윤리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식화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부모 세대의 근본적 책무가 아니겠습니까?”

 

▷후카오 준교수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은 곧잘 쓰이고 있지만 그 뜻을 잘 알고 쓰고 있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김 주간 “‘부모의 책임’이라는 이면에 오히려 부모의 지배력이나 통제력을 강화시킴으로서 부모의 식민지·영토로 만드는 데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부모로서는 자식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해주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이 아니라 부모가 자기 뜻대로 강행하는 미래 독창에 지나지 않아 아이의 입장에서는 넘어야할 장벽에 불과하다는 점에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저는 한국의 충북도 교육청 간부 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한마디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공동 학습이라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고 그 공동 학습의 핵심과제는 세대 간 미래공창을 가능케 하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제대로 이루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를 체계적으로 성취시켜온 교육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주축으로 하는 공동학습으로의 대전환을 호소했던 거지요.”

 

▷후카오 준교수 “그런 공동학습의 자리가 계속 마련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주간 “공감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통인식이 형성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끈질긴 대화가 필요하겠지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은 훈련일지는 모르나 공동 학습은 아닙니다.”

 

▷후카오 준교수 “시키는 대로 하는 교육이 아직도 학교교육의 주류를 이르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당장에 이단으로 몰리니까 사태개선이 어렵습니다.”

 

▷김 주간 “우선 누군가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 뜻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다른 사람─특히 젊은 학생들─에게 거의 강제적으로 따라오도록 하는 교육강제=훈육으로부터 미래를 모두 함께하는 대화·공동·개신을 통해서 열어나간다는 사고와 행위를 진작시키는 쪽으로의 근본전환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도 누군가가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공동학습자가 되고 상호실천자가 되는 공동체험·체득·체인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후카오 준교수 “저도 함께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주간 “후카오 선생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후카오 준교수 “우리 어머니는 1935년에 하얼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일본군에 투항한 봉천감옥(奉天監獄)의 수감자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3세 때에 아마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수감된 중국인들을 731부대에 보내는 자리에 계셨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를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1938년 무렵에 일본에 귀국했습니다. 어머니는 잔류고아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몸소 겪은 원초적 경험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심적 상처를 입은 듯싶습니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 행위를 빈번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대단히 고생했습니다. 저의 친아버지는 39세 때에 자살하셨습니다. 그 진상도 전연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고뇌와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와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재혼해서 저를 매우 애지중지 키워주신 의붓아버지는 신체허약의 철학자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언제나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도움을 받기 위해 재혼한 남편이 병약했으니까 ‘이럴 수가’라는 마음이 계셨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을 잡고 극도로 핍박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른은 왜 그렇게 되는 걸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39세가 되던 무렵, 저도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틀렸다’고 비관하다가 폐렴에 걸렸을 바로 그 때, ‘여기서 비명에 죽게 될 바에야 차라리 무언가 새로운 행동을 해야겠다’고 해서 생각해낸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엄청난 싸움을 벌이게 되었지만 지금은 간신히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으면 그토록 고생도 안 했겠지만 그런 고통의 과정이 없었으면 이런 연구를 계속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어머님의 입장에서 보면 공격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후카오 준교수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사흘에 한 번씩은 폭발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온화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마음을 열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김 주간 “도쿄대학의 니시히라 타다시(西平直) 교수가 교토포럼에서 ‘세대계승’에 대해 말하는 문맥에서 바로 어머니에 의한 병리의 발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위 ‘모인병(母因病)’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해방시켜주지 않고 자기에게 철저하게 종속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심해서 아이의 독립을 극심하게 저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하는 ‘영토화·식민지화’는 다름 아닌 어머니에 의해서 강행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후카오 준교수 “그렇습니다. 절대선으로서의 어머니상의 신화와는 어긋나는 현상들입니다.”

 

▷김 주간 “남자아이는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먼저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고 거기서 자기 형성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기억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이 인간의 성숙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별로 말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최근 저는 우리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물론, 키우고 있는 고양이나 개에 대해서도 그들의 자립을 저해하게 되지 않나 하고 극력 명심하고 있습니다.”

 

▷김 주간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 있을 때는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학자와 여러 사람들과 사귀고 더러 그 가정에도 초대받아 가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거기서 느끼게 된 것은 특히 일본의 어머니 가운데는 아이를 아유화(我有化)하고 자기 영역 안에 가두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도 어머니의 힘이 강해서 어머니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끝내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고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경우에 더 심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흔히 듣게 되었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그런 경향을 두고 ‘자기중심’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아이가 끝내 자기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어머니의 명령이 귀에 들려와서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경향을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느낍니다.”

 

▷김 주간 “모인병적인 현상은 어머니에게 한정되지 않습니다. 인간보다 국가나 국토에 관련해서도 때로는 모인병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국가나 국토가 모든 것을 흡입 용해시키는 강력한 인력으로 작용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국가, 한반도라는 국토, 태어나서 자란 향토에 밀착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거부해 왔습니다. 그래서 니시다 기타로의 장소의 철학에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이라는 땅에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미국이나 일본이라는 땅에도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땅이나 땅에 묶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노마드(유목민)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땅에 묻지 말고 하늘에 뿌려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성신은 토지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지모신(大地母神)의 신화 같은 것도 그 예에 속하지요. 그러나 남성신은 바람이나 불꽃이나 벼락처럼 땅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저 자신도 남성신을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땅에 묻혀서 흙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하늘로 올라가서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은 겁니다.”

 

▷후카오 준교수 “그러네요.”

 

▷김 주간 “종교의 측면에 눈을 돌려도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불교는 결국 땅의 종교인데 반해서 기독교는 하늘의 종교라는 양자의 특성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땅에 밀착해서 토지와 친밀한 관계를 강화하는데서 입명안심을 모색하느냐 아니면 토지와의 관계를 끊는 데서 새로운 생명의 차원·지평·세계를 개신하느냐에 근본적인 지향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어느 땅에도 속박되지 않는 까닭에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나 불안하고 표류하며 방랑하는 사막민들이 발견한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요. 거기서 길러진 본래적인 비정주(非定住)·비안주적(非安住的)인 생활습관은 어떤 의미에서 온갖 식민지화·영토화에 대한 내성(耐性)을 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교회의 형태로 발전하고 나서는 이단 배제·말살의 독선적인 조직 종교가 되고 거기서 절대 진리에 의해 모든 인간의 영혼을 영토화·식민지화시키기를 지향하는 일대 신앙자제국(信仰者帝國)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만 본래의 예수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당시의 종교권력으로부터 개개인의 영혼을 탈식민지화·탈영토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민중해방운동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결코 어느 편이 좋거나 옳고 어느 편이 나쁘고 그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과 땅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의 양쪽이 있고 양쪽의 삶을 잘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분이 조치대학(上智大學)의 미야모토 히사오(宮本久雄: 현 도쿄준신대학(東京純心大學) 교수)입니다. 그분은 저를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같은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땅에 안주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서 “지금 있는 그 장소를 떠나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쪽으로 가라”라는 명령에 호응해서 아무 미련도 없이 정착해온 땅을 떠나 미지의 타향으로 이동하면서 한평생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일이 아브라함의 삶이자 보람이었습니다. 고향 땅에서 안주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늘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도 있는 것입니다. 절대다수의 일본인이 정주형(定住型)인데 비해 저는 외래의 이주형(移住型)의 인간이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 점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후카오 준교수 “계속적인 이동을 통해서 상대성에 대한 의식을 예민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 자신은 지금도 태어난 장소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초안주형(超安住型)의 인간입니다. 그 안에서 어머니와의 싸움이 있고, 그 위화감을 지렛대로 삼고 어떻게든 거기서 이탈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한편에서는 강하게 이동을 희구(希求)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한곳에 뿌리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 자신이 안고 있는 모순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한곳에 계속 머물고 있으면 이동을 거부하고 한곳에 밀착하는 경향이 상화되는 게 분명합니다. 특히 일본사회의 공동체적 주박은 정말로 숨쉬기조차 곤란한 지경입니다.”

 

▷김 주간 “교토포럼 관계로 독일을 자주 드나들었을 때 자주 ‘하이마트로지히카이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향상실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사람은 고향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을 때보다 고향에 있으면서 고향이 고향 같지 않게 느껴지는 고향 상실감이 훨씬 심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후카오 선생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나 라는 느낌이 듭니다.”

 

▷후카오 준교수 “저는 그런 경향이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김 주간 “저는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주로 공공철학 대화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의 오사카와 한국의 청주 사이를 왕래하면서 새로운 인문학 대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청주는 저의 고향이기도 한데 전혀 고향이라는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주 낯선 타향=신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오히려 거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동학 운동을 일으킨 최제우(崔濟愚)는 태어난 고향을 한 번 떠나서 여러 곳을 방황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배척당하고 도무지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향땅을 버리고 낯선 타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짧기는 해도 농도 짙은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도 그렇고 무함마드도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마모토 편집장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을 해서 엘리트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국가시험을 돌파해서 국가공무원이 되고, 동료와의 격렬한 경쟁도 이겨내면서 중요한 벼슬을 손에 넣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안정된 지위와 많은 수입을 보장받고 장래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세속적인 성공을 가지고 ‘이것이 골(Goal)이다’라고 여긴 순간, 그 사람은 미래공창의 저해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 자기 양심에 비춘 사회 변혁에 대한 용기 있는 행동에는 무관심하고, 자기 일신의 안전과 더 입신출세하는 것에만 눈이 향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의 생명에너지가 전개(全開)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후카오 준교수 “그렇습니다. 원전 관계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김 주간 “모두 다 자각 없이 근원적인 생명에너지를 죽이고 있는 거지요.”

 

▷후카오 준교수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는 이미 죽었어!(웃음)’. 죽어버리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겠지요.”

 

▷김 주간 “일본인 지식인 가운데는 일본을 기본적으로 모성 사회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인간을 포함해서─을 포용해서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후카오 준교수 “포용한다기보다 포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관계’의 울안에 갇혀버립니다. 국외자나 이방인은 철저하게 격리 차별합니다. 중국도 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만 길거리나 마을 안에서 모르는 타자와 우발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회화를 나누거나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서로 돕는 일이 의외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일본에서는 일일이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부터 물어야 됩니다. 어설프게 말을 걸으면 곧 ‘이 사람은 수상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일일이 상대에게 신경을 쓰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중국에 가면 그러한 면은 굉장히 자유롭고, 정말로 호흡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가 지적했듯이 일본인은 ‘장소의 공기’를 눈치 채고 그것에 맞추는 것이 행동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대화보다 무언(無言)의 ‘동화(同化)’ 압력이 강합니다. 동화할 수 없으면 ‘KY’(k?ki o yomenai: ‘공기를 못 읽다’ 즉 분위기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로 간주되고 소외당하게 됩니다. 정의나 도리를 열성적으로 말하면 금방 ‘너무 시비를 가려서 시끄럽다’고 해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후카오 준교수 “‘도리’를 느끼고 그것에 공명해서 움직이는 것도 별로 없어요. 중국의 시골에서는 ‘도리’에 맞는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일본에서는 ‘도리’ 감각이 희박해서 묵묵 무반응입니다. 김 선생님계서도 여러 번 겪어서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일본에서는 도리라는 게 따로 없고 그저 관(官)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이 도리입니다. 말하자면 공(公)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관이 주도하는 공과 다른 민 주도의 공공을 따로 떼어서 그것을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서 개신했던 것이 도쿄대학출판회에서 간행된 시리즈 <공공철학> (총 20권)을 통해서 김태창 선생이 역설하셨던 공공성과 다른 ‘공공하다’의 중요한 뜻이 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공하는 도리를 생각하고 논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시킴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대화적·공동적·개신적 실천이 ‘미래공창(未來共創)’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분석이나 평가가 아닙니다. 미래 개신(開新)에의 꿈, 희망, 행동입니다. 지사(志士)들에 의한 도쿠가와 막부의 타도와 메이지유신이야말로 ‘미래공창’이 아닌가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일본은 주로 초슈벌(長州閥·현 야마구치현 출신자들)에 의해 사물화(私物化)된 국가였습니다. 한국을 식민지화시키고, 대륙 침략을 추진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급기야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패전하고 망국의 비극을 스스로가 초래했습니다. 일찍이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렸던 대동아공영권이나 팔굉일우의 구상들은 모두 일부의 광신적인 일본지상주의자들의 미래독창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의 생명이 상실되었고 훨씬 더 많은 한국민과 중국인의 생명이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영혼마저 식민지화되고 영토화되었는데 그것이 가져온 부메랑효과인지 알게 모르게 일본인의 영혼도 타자에게 씌웠던 식민지화·영토화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는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인의 경우 일본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대륙적인 규모의 크기, 너그러움, 공감력, 다원성, 포용력, 등등의 자질이 느껴집니다. 일본의 ‘동’(同: 공기를 읽기, 분위기를 눈치 채기)적인 기질이 ‘화(和)’로 변할 때에는 서로를 어울리게 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서로의 장점을 서로 살리는 관계가 되면 여기서부터 한중일간 평화상태가 세계평화 구축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지요.”

 

▷후카오 준교수 “최근의 일본인 학생들은 대만에는 가지만 중국에는 안 가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좋은 인연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 주간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 가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일본인 은 절대적 소수자인 것 같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일본인 가운데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런 말의 진의를 수상하게 여기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폄하·왜곡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학생에게서도 느끼는 일입니다만 굉장히 완고한 장벽이 있고 그것을 깨부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 일본사회의 폐색상태를 어떻게 해보고 싶습니다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모두 눈을 떴을 덴데도 일본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 채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는 절망적입니다.”

 

▷김 주간 “후카오 선생이 보시기에 인간의 영혼이 식민지화 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태는 어떤 것입니까?”

 

▷후카오 준교수 “생각과 행동이 고착화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식민지적 사고를 근본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인에게는 친밀한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예속되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조직이 사람(사원)을 통째로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오직 그곳에서의 보신(保身)만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 이외의 일들은 그저 기분전환 정도로 조금씩 일시적으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안정과 성공을 이루기 위한 전술이 모두 식민지화의 방향으로만 고정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도 정해진 길에서 빗나간 생각을 하지 않게끔 철저하게 규제하고 오로지 조직의 명령에 순응하는 사람만을 대량 재생산하는 데에 있습니다. 학교의 클럽 활동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보니까 클럽 활동이라는 것도 모두 영혼을 식민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죽어도 거기에 매달려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주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 상태로 회사에도 들어가고 또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반의 구석구석에도 그런 사고가 들어가 있는 거지요. 일본인의 삶은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집으로 오가는 가운데 술집에서 잠깐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서 자고 또다시 회사에 나가는 식의 고정된 왕복입니다. 지역사회와 직장만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왜 ‘사이’ 라는 것이 없는 걸까요? 다른 연령층이나 다른 업종의 다양한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계기도 동기도 시간도 없습니다. 중국의 길거리나 공원에는 다양한 모임이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다름 아닌 노예 공동체군요. 노예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중 속에 섞어서 남과 똑같이 하면서 그런대로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후카오 준교수 “그래서 흔히 조직인간 타령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결국 그것은 자기 자신의 노예근성을 ‘과시’하는 도착된 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인간’은 꼭대기에 서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연기력에 묘한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강자에 대한 굴종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방향을 약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후카오 준교수와 김태창 선생의 문제관심의 공통점을 전제로 하고 대화를 전개해 왔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차이점을 의도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을 확실하게 밝혀두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태창 선생께서 후카오 선생의 저서와 논문들,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다른 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어 보시고 나서 어떤 차이점에 주목하셨는지부터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주간 “첫째로 직감하게 된 차이는 ‘혼’과 ‘영혼’의 차이입니다. 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는 일관해서 혼과 영을 구분해서 논의를 전개해 왔습니다. 누구의 이론이나 학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직접 체험·경험·증험·효험해온 결과 혼은 개체생명력=에너지로, 그리고 영은 개체생명(체)과 개체생명(체)과의 사이·개체생명(체)과 우주생명과의 사이로부터 국가간·민족간·문화간·종교간 등등 다차원적인 ‘사이’에 작동하는 상관연동적·상호매개적인 근원적 생명력=에너지로 나누어서 파악·이해·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후카오 선생을 비롯한 일본 측의 지식인들은 개인중심의 논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경향과는 달리 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관심은 주로 국가간·민족간·문화간 그리고 개인간 등등 다차원의 사이들에서 일어나는 영(靈)과 개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魂)’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를 동시에 공구공론(共究共論)하는데 역점이 주어져 있습니다. 둘째로 ‘혼의 탈식민지화’(후카오)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김)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공통점을 함께 지니고 있으면서도 ‘영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것이 ‘혼의 탈식민화’ 논의에는 없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혼은 개체 내에서 작동하는 독자적 생명에너지라고 하면 영은 개체간·집단간에서 작동하는 관계 형성적 생명에너지라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체험학습에서 얻은 소견입니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내적 생명에너지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이고 개인간·집단간의 생명에너지가 식민지화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동시 병행적으로 성취시킨다는 것이 영혼의 탈식민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식민지화와 영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한 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체득·체인의 귀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양쪽이 똑같이 개인·민족·국가·문화 등등의 자주성·자립성을 박탈당하고 상실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차이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차이는 식민지화는 명백한 의식을 동반한 가시적 자주성 박탈이고 영토화는 자각증상이 결여된 비가시적 자립성 상실입니다. 대일본제국에 의한 자주성 박탈은 분명한 의식을 동반한 채로 당한 것이고 영토화는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에 의해서 우리 나름의 문화적·의식적 자립성이 상실되고 과잉 종속성이 현저하게 강화되는데도 그것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는 경향이 그냥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그렇다면 오는 8월 13~15일에 개최 예정인 한·일 철학·문학 대화에서는 조명희(趙明熙·1894~1938)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 루쉰(魯迅·1881~1936)을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관점에서 상호 비교·검토해보겠다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우선 어떤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전혀 예상 못하거나 안하실 심산이십니까?”

 

▷김 주간 “대회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고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무례한 것 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의 개인적인 예감만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이 한국을 영과 혼이라는 양면에서 식민지화를 이루려고 하는 가운데서 일본인과 일본 사회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토화되어가고 있다는 모순적 상황을 개탄했고 뤼쉰은 분명하게 식민지화된 영과 혼의 비참한 인간상을 다양한 형태로 소상하게 묘사했으며 조명희는 글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로 영혼이 철저하게 식민지화 되는 과정을 실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조명희가 가장 뚜렷하게, 루쉰이 그 다음으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에는 어떤가?라는 것이 논점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한국은 완전히, 중국은 반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에 있었던데 비해서 일본은 가까스로 서양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대표적인 문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기본적인 시대인식과 상황인식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어떤 논의가 전개되고, 어떤 공통인식이 도출될지, 안될지 주최자인 저 자신도 궁금합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그러면 이것으로 두 분의 대화를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정리 박장미·야규 마코토 원광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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