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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한·중·일 국민작가를 견주어 새밝힘 한다(3)
<동양포럼> 한·중·일 국민작가를 견주어 새밝힘 한다(3)
  • 동양일보
  • 승인 2017.07.3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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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희·루쉰·기타무라 토오코쿠를 통해 보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

(동양포럼)

기타무라 토오코쿠와 조명희

카타오카 류(片岡龍)토호쿠대학(東北大學) 교수

“그에게는 천재의 성실함이 있었다. 그 성실함이 그로 하여금 짧은 기간 동안 애처롭기는 하지만 의미 깊은 생애를 보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 참담한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건져도, 건져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빛나는 유물이 남아 있다.”
이 말은 1894년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기타무라 토오코쿠(北村透谷·1868~1894)에 대해 그의 친구이자 평생 그를 선배로 받든 시마자키 토오손(島崎籐村·1872~1943)이 평가한 말인데, 이 평가는 조명희의 생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토오코쿠의 한국어 번역서는 찾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김희보 편저 <일본 명시선(종로서적· 1985)>에 들어있는 시 한 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비가 가는 곳’(기타무라 토오코쿠) ‘蝶のゆくへ’(北村透谷)
춤추며 가는 곳을 물어 주시니 舞ふてゆくへを問ひたまふ // 내 마음 한없이 기쁘지마는 心のほどぞうれしけれ // 가을날의 들판을 정처도 없이 秋の野面をそこはかと // 찾아서 방황하는 나비의 신세. 尋ねて迷ふ蝶が身を. // 가는 곳도 오는 곳도 같은 길이니 行くもかへるも同じ關 // 날아온 곳을 다시 날아가노라. 越え來し方に越えて行く. // 꽃 핀 야산에서 춤추는 몸은 花の野山に舞ひし身は // 꽃 없는 들녘이 나의 잠자리. 花なき野邊も元の宿. // 앞도 없지만 내 뒤도 또한 前もなければ後もまた // ‘운명’ 말고는 ‘나’도 없어라. ‘運命(かみ)’の外には’我’もなし. // 팔락팔락 팔락이며 날아가는 것은 ひらひらひらと舞ひ行くは // 꿈과 현실의 중간이어라. 夢とまことの中間(なかば)なり.

토오코쿠는 근대 일본에서의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명희를 프로레타리아 작가로 설명하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용 없는 규정이다. 조명희의 시 속의 나비(=나)도 가는 곳을 모르고 미친 듯이 춤추고 있다.

‘인연’ (조명희)
만년의 봄이 와 / 만 가지 꽃이 피어 / 몇 만의 나비가 있다 하더라도 / 지금 저 꽃 위에 저 나비는 / 미친 듯이 춤추고 있다. / 영겁의 때가 있고 / 무한의 우주가 있어 / 억만의 생(生)이 있다 하더라도 / 지금 나는 이곳에 서서 / 맑은 바람 팔 벌리어 맞으며 / 피인 꽃송이 떨며 입 맞추고 있다. / 시(時)와 처(處)와 생(生)의 포옹 / 아아 그 무도(舞踏)! / 인연의 결주(結珠)! / 바라문 종(鐘)소리 고개 숙이며 / 십자가 휘장(徽章)에 황홀은 하나 / 이 포옹 이 무도(舞踏) / 아아 나는 어이?

낭만주의 문학의 특징을 ‘자아’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특징을 ‘연대’에서 찾는다면, 그들은 각각 그 틀을 깨고 있다.
낭만주의 문학이 종종 주제로 삼은 연애에 대해서 토오코쿠도 확실히 “연애는 인생의 비결(=비밀을 푸는 열쇠)이다”라고 하였다. 연애는 ‘연대’의 첫걸음이고 사회가 없으면 ‘자아’도 없다. 그 사회는 무수한 ‘인연의 결주(結珠)”로 이루어져 있다. 토오코쿠의 시에서는 그것은 “운명”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자아’는 현실사회를 그대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상을 갖고 그것과 영원히 싸운다.
조명희 또한 ‘공리공론’이 아닌 ‘이상’을 갖고 현실사회와 영원히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현실사회란 부모형제이고 처자식이고 자기 자신의 불순이기도 하다.
그는 부모형제와도 싸울 것이며 처자(妻子)와도 싸울 것이며 자기 자신의 불순(不純)과도 싸울 것이다. 그렇다. 그는 영원히 싸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믿는다. 사람을 믿으며 아내를 믿으며 자기의 진실한 마음을 믿으며 진리를 믿으며 신을 믿으며 최후의 승리인 구원받음을 믿는다.(조명희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
그가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을 취한 것은 식민통치 하의 현실에서 물음이 ‘노동인가? 문학인가?’로 좁혀졌기 때문이다(조명희‘생활기록의 단편’). 결코 그것을 ‘최후의 승리’로 여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신(神)’이나 ‘인연’에 순종한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명희는 역시 영원한 ‘나그네’이고(토오코쿠도 ‘여행자’라고 불렸다), 그 무궁한 사업은 토오코쿠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을 건축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꺾인 채로 / 피어나는 / 백합꽃”(折れたまま /咲いてみせたる/百合の花)이라는 토오코쿠의 하이쿠(俳句)는 조명희의 최후와도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생명’의 본질은 ‘밥’과 ‘양심’을 위한 싸움

언어, 작가의 세계(시공간)를 담은 집: 한 인물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이 가졌던 ‘세계’를 아는 일이다. 그래서 즐겁고도 또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 작가의 작품은 그가 ‘언어’로써 영유(領有)했던 전(全) 시간과 공간이다. 그가 ‘알고’, ‘느끼고’, ‘생각했던’ 시공간은 이미 ‘휙 지나가버렸고’ ‘망각돼 지워져버렸다.’ 언어는 그런 기억과 흔적을 담고 있는 집이기에, 우리는 한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밖에 없다.
개 같은 인생…대지를 핥는 말: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1894~1938)는 ‘대지를 핥는’ ‘땅의 말’을 토해 내고팠던 작가다. “동무여 / 우리가 만일 개(犬)이어든 / 개인 체 하자 / 속이지 말고 개인 체 하자! / 그리고 땅에 엎드려 땅을 핥자 / 혀의 피가 땅 속으로 흐르도록, / 땅의 말이 나올 때까지…”(‘동무여’·<포석조명희전집>·동양일보출판국·1995·37쪽) 개 같은, 처절하게 구속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귀결이 결국 ‘주림과 죽음’임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무지한 발이 고려의 땅을 짓밟은 지도 벌써 오래다. … 그놈들은 공장과 상점과 광산과 토지를 모조리 삼키며 노예와 노예의 떼를 몰아 채찍질 아래에 피와 살을 사정없이 긁어먹는다. … 온 고려 프롤레타리아 동무-몇 천의 동무는 그놈들의 악독한 주먹에 죽고 병들고 쇠사슬에 매여 감옥으로 갔다. … 고려의 프롤레타리아트! 그들에게는 오직 주림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주림과 죽음!”(‘짓밟힌 고려’·<전집>·384~5쪽)
‘밥’과 ‘양심’: 그래서 그는 삶의 문제를 간결하게 두 가지로 정한다.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밥과 또는 내 양심 이 두 가지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던 맹자의 주장처럼, 먹고 사는 문제(=밥, 경제)가 있고 난 다음 인간다움(=휴머니티, 도덕)이 생겨나지만, 이 두 가지 모두를 일본 제국주의는 박탈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투쟁을 결의한다. “배고픈 고통 앞에 무슨 고상한 사상이고가 있겠느냐? 제 양심의 비위짱이 틀리는 마당에 세상이고 무엇이고가 있겠느냐…다만 밥과 양심, 이것만을 위해서 싸울 따름이다.”(‘단문(短文) 몇 -나의 현재-’·<전집>·318쪽).
‘신기운(新機運)’=신흥운동(新興運動): 사람의 눈동자를 응시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듯이, 조명희의 작품에도 그런 가장 빛나는 대목(=눈동자)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꾸미기(=文· 치장) 전에 본질(質·바탕)이 먼저 있듯이,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의미’(뜻)에 해당한다. 만물의 의미는 바로 ‘생명’이다. 조명희가 파악한 인간 생명의 본질은 ‘밥과 양심’이었다. 그것이 없으면 죽은 삶이고, 죽은 역사이기에, 의미=생명이 없다. 그래서 그는 ‘생명이 고갈’한 시대를 진단하고, 거기서 ‘신기운(新機運)’ 즉 새로운 기회(機會)와 운수(運數)를 기획하려 한다. 그것이 ‘신흥운동’(新興運動)이다. 이 신흥운동에는 먼저 ‘힘과 열이다.’ 힘과 열이 없으면 ‘마른 잎’, ‘시들은 꽃’과 같이 되고 만다.(‘생명(生命)의 고갈(枯渴)’·<전집>·313쪽, 315쪽) 
생명=‘힘’→‘열’→‘빛’: 조명희는 ‘생명’은 ‘힘’이라고 단언한다. 생명은 ‘살아있는 까닭’ 즉 ‘의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먼저 ‘살려져야’ 하며, 그 다음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타력과 자력이 멋스럽게 합쳐진 생명의 실상이다. 천지가 만물을 ‘살리려 하고’(生) 살아있는 만물들이 스스로 ‘살려고 하는’(生) ‘힘’인, 이른바 ‘생+생’(生生)이다. 생생이란 ‘생겨나서=살려져서’ 또 새로운 것을 ‘낳는’=‘태어나고 낳는’ 것이다. ‘천지지대덕왈(天地之大德曰生)’의 ‘생’,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의 ‘생생’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명희는 말한다. ‘힘’이 있음으로 ‘열(熱)’이 있고, 열이 있음으로 ‘빛’(光)이 있고, 힘과 열과 빛이 있음으로 온갖 ‘빛깔’(色彩), ‘소리’(音響), ‘모양’(形態)이 있다. 생명에 진(眞)과 미(美)가 있는 까닭이라고.
그는 또 말한다. 자연에 ‘굼실대는 바다가 있음’과 같이, ‘사람에게는 예술이 있다. 철학이 있다. 온갖 것이 있다. 이것은 다 생명의 표현이다. 살아있는 까닭이다. 생명이 있는 까닭이다.’ *[생명=힘→열→빛쮌빛깔·소리·모양=진·미=예술·철학]
“밥과 양심을 위해 싸울 따름”: 조명희의 생명에 대한 논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일제 식민지하 조선의 현실에 당면한 발언이다. 그는 말한다. “형식은 비록 거치나 뻐개고 나오는 힘이 있어야 한다. 끓어오르는 열이 있어야 한다.”(‘생명(生命)의 고갈(枯渴)’·314쪽) 조선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그는 “부끄럼과 아픔”을 느껴야 하며, 이런 환경에 대해 “지구라도 뒤집어엎고 싶은 분감과 반항을 느끼지 아니할까. 이러한 침통한 자의식이 있은 다음에야 어찌 힘과 열이 없을 리가 있을까. 힘과 열이 있은 다음에 문예가 나오지 아니 할까.”(‘생명(生命)의 고갈(枯渴)’·316쪽)라고 안이한 지식인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힘과 열은 압제와 통제를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다만 밥과 양심, 이것만 위해서 싸울 따름이다. 그 끝으로 어떤 광명이 올는지, 암흑이 올는지 그것은 모르겠다. 다만 싸워 갈뿐이다.”(‘단문(短文) 몇 -나의 현재-’·318쪽)
조명희가 삶을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처했던 조선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밥과 양심을 위해서, 그것을 목적으로, 싸우고자 했던 그의 영혼은 식민통치기 망명 중, 총살당했다. 이중, 삼중으로 짓밟힌 디아스포라 조명희. 그가 고국에 돌아와 부디 편히 잠들도록, 그의 비극을 꺼내서, 우리는 이렇게 다시 기리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신적 탈식민지화와 루쉰 사상의 방법

중국 산동대 교수 궈지아웨이(國家瑋)

중국 현대문학과 역사에서 루쉰과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사상가들은 모두 중국인의 사상개혁을 통해 당시 중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비록 그들의 목적은 같았으나 중국 현대문학과 역사에서 루쉰이 이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사상이 가지는 특징에 있다. 루쉰의 사상은 언제나 실제적 가치를 중요시했고, 무엇보다 당시 중국 사회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결에 중점을 두는 실천 가능한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루쉰이 제시한 다양한 사상과 내용은 루쉰이 줄곧 주장한 ‘사람을 세우는(立人)’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사람’을 중심으로 여기는 루쉰 사상의 핵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루쉰의 민족주의(이는 동아시아 민족문화와 서양문화 간의 차이, 후자가 전자에 미치는 영향 및 정신적 식민지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계급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가 주장한 ‘사람을 세우는’) 사상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루쉰은 인간이 그 본연의 주체성 형성에 실패한 후에 다가올 비극적 상황에 주목했다.
‘사람’을 목적으로 삼는 루쉰의 사상은 실제로 반고전적, 반관념적, 반예술지상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동시에 이는 인간생존 문제에 관한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루쉰은 ‘화개집(华盖集)’의 ‘홀연히 생각났다(忽然想到)’에서 “만약 나에게 청년들이 어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첫째 생존권의 보장, 둘째 의식주의 해결 즉, 안정된 생활의 보장, 셋째 자아발전의 추구이다. 만약 누군가 이 세 가지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에 대해 저항하고 그 세력을 궤멸해야 할 것이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는 그 당시 다른 ‘5.4’인물들과 비교하여 루쉰의 사상이 더욱 현실 지향적이고 실천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가치를 중요시하고, 현시대적 상황을 고려하고, 강력한 실천성을 가지는 등을 특징으로 하는 루쉰 사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신적 식민지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루쉰은 개인이 반드시 모든 역량을 다하여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 자신을 재발견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자연스럽게 그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전제를 토대로 루쉰의 주장은 ‘나’ 자신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타자’의 지배를 받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속박을 벗어나 ‘나’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개인의 주체성 확립은 기본생존권과 생리적 욕구의 보장, 자아발전에 대한 창조적인 가치관이 없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식민 지배를 받는 민족들을 살펴보면 그들에게서 강한 노예근성이 숨겨져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신적 노예성에 관하여 루쉰은 매우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루쉰의 논의에 근거하면 이러한 노예성은 서로 다른 분열적/양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이들은 폭력의 가해자 앞에서는 한없이 연약하고 불쌍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만약 이들이 자신보다 더 연약한 상대를 만난다면 그들 앞에서는 이들은 자신보다 더 연약한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잔인한 가해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식민 지배를 받는 민족들이 식민지 통치자들에게서 경험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오히려 계승 발전시킨 결과인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 루쉰은 “그들은 양인 동시에 사나운 맹수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짐승을 만나면 그 앞에서 순한 양(羊)처럼 변하지만, 그들보다 연약한 상대를 만나면 그 내면에 잠재하는 잔인하고 사나운 맹수로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만다.”라며 그들의 노예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동아시아지역의 정신적 식민지화 문제와 관련하여 근래 중국의 신유학자들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방안은 아직도 오래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문제해결의 방법은 아직도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의 대립적인 구도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주장은 현실사회와 심각한 괴리감을 형성한다. 이미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진입한 많은 동아시아국가들의 현황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사고에 얽매인 유학사상가들의 주장은 오히려 이들의 발전을 저지하고 퇴보하게 할 뿐이다. 이는 오히려 동아시아국가들로 하여금 더 급속하고 철저하게 자본주의 사회체계로의 전환을 재촉할 뿐이다.
중국 현대사회에서 루쉰 사상의 수용과 이해는 아직까지 아쉬운 점이 많다. 루쉰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사람을 ‘세우며’, 그들이 생존권과 생리적 욕구의 보장 이후에 어떠한 방향으로 긍정적인 자아 ‘발전’을 모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은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루쉰 사후에 그의 사상은 새로운 국가이데올로기의 선전용으로 이용되거나, 그의 강건한 인품과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출연한 ‘포스터모더니즘’의 배경에서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경직된 사상이라는 오해를 받고 외면당했다.
현재 동아시아사회에서 특히 중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기술의 발전이 정치, 경제와 인간의 존재론, 가치관, 윤리의식 등 모든 면에 절대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 맹신하고 있다. 이들의 인식 속에서는 현대기술의 진보가 빠르면 빠를수록, 세상은 더욱 평등해지고 이상적인 지구촌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칭 인터넷시대에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의 입장에서 우리가 제시하는 문제들 즉, 어떻게 동아시아지역의 정신적 식민지화를 탈피할 것인가? 왜 우리는 현시대에서 동아시아지역의 문제를 특수하고 신속히 처리해야 할 사항으로 간주하는가에 있어 명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시대에 공존하는 동아시아지역 사람들의 정신 속에 오랫동안 잠재한 식민지의 그림자와 그 문제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적 탈식민지화 담론과 문제제기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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