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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잃은슬픔 잊은 채 의사 위로한 산모
아기잃은슬픔 잊은 채 의사 위로한 산모
  • 서흥식
  • 승인 2017.09.06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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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식 괴산성모병원 산부인과 과장
괴산성모병원 서흥식 산부인과 전문의

  어머니는 모내기가 한창이던 농번기 이른 아침에 나를 낳으셨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일꾼을 위해 마련한 새참을 소쿠리에 이고 논에 가셨다. 요즘처럼 편안히 산후조리를 하는걸 보면 어머니 생각에 안타깝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청진기를 놓고 돌잡이 행사를 했을 리는 만무하다. 내가 의사가 된 이유는 환자를 치료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어쩌면 중학교 3학년부터 다리가 아파서였다.

 정형외과의사가 되어 나의 아픈 다리를 치료하고 싶은 순진한 생각이었으나 여학생에게 낯가림도 심했던 내가 산부인과의사가 되었다. 지금 의사로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 내는 환자였었고 큰누나가 만성 폐질환으로 고통 받는걸 옆에서 지켜보았고, 또한 아버지는 비뇨기계 수술을 여러 번 받았으며 어머니는 뇌암으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집안의 주치의 역할을 하며 한편으로는 환자보호자 역할도 하였다.

 아픈 가족들때문에 나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며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게 되었다. 산부인과의사가 된 후 주로 분만병원에 근무하다보니 산모와 함께 새 생명의 탄생의 기쁨을 나누며 때로는 같이 울고 웃으며 지냈다. 여러 환자를 진료하였지만 그 중에도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는 분만에 관한 기억이 많다. 

대기산모가 분만하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운 날은 헤아릴수 없고, 밥을 먹다가 응급분만이 있으면 음식을 입에 넣은 채 분만실로 뛰어 간적도 많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데 옆 베드에서 분만이 진행되어 수술하다 말고 분만을 했던 경우도 잊을수 없다. 

어느 날은 분만이 마지막 단계에서 진행이 안 되어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하고 멀리서 오는 마취과의사를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진행이 되어 수술대에서 분만했던 산모도 있다. 여러 경험이 있지만 무사히 분만이 잘 되어 산모나 신생아가 건강하면 대부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분만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거대아를 분만하며 견갑난산(태아의 머리는 분만되었으나 어깨가 산모의 골반 내에 걸려 더 이상 분만이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 으로 상완 신경총 마비가 와서 오랫동안 법적으로 애를 먹은 적도 있다. 진통 중 자궁이 파열되어 응급으로 힘겹게 수술한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일은 별문제 없이 태어난 신생아가 갑자기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할땐 대학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나는 산모의 남편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평소 50분 거리였으나 눈이 내리는 새벽 도로는 급한 마음과 다르게 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한참을 가는 데 갑자기 “펑”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멈춰 섰다. 타이어 펑크로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나의 가슴도 터질 듯하였다. 신생아의 호흡은 더욱 가늘어지고 있었으나 얼굴은 천사같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119 구급차를 이용해 응급실에서 소아과 진료를 받았으나 천사와 같은 아기는 너무나도 빨리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남편과 함께 승화원에 갔으나 슬픈 남편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아기의 죽음도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닥칠 여러 일들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산모와 남편은 아기를 잃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잠 못 자며 성실하게 분만을 도와준 나에게 고맙다는 말 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런 요구도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산부인과의사 생활하면서 최악의 사건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나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 누구의 잘 못도 아니며 단지 그 아기의 운명이라 생각해보며 나 스스로 위안도 해보았지만 결국 나는 그 후 분만진료를 포기하게 되었다. 이제 산부인과 외래진료만 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슬픈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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