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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치비화(11) / 치안유지와 경무당국의 고심(2)
조선통치비화(11) / 치안유지와 경무당국의 고심(2)
  • 동양일보
  • 승인 2017.11.0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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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 급거 소집… 폐점 단행에 대비 즉시 검속하라”
일제강점기 일본의 경찰 계급도와 현재 한국의 경찰계급도.
이충호 부이사장

● 폐점에서 개점으로(2)

▷지바

이렇게 결정되었지만 경기도 지사가 일체 책임을 지고 이 어려운 일을 과연 감당해 낼 수가 있을까가 문제라고 마루야마 사무관이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내가 전 책임을 지고 단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마츠나가 지사가 전임되어 그 날 송별회가 열릴 참이었고, 새로 부임할 고토(工藤) 지사는 평양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지사의 책임 일체를 경무국장인 내가 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즉석에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 길로 나는 즉시 마츠나가 지사의 송별회 석상에 참석하여 거기서 만난 수도(須藤) 내무부장의 동의를 구했고, 즉시 제 3부로 돌아와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 1조 경찰서장을 급거 소집하여 만일 내일 폐점을 단행할 것에 대비하여 행정집행령으로 즉시 이를 검속한다.’ 보안법 제 5조의 해석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사정으로 유야무야해져 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지사의 직권에 의해 행정집행령을 적용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방침을 정하고 서장과 협의를 마쳤습니다.

또한 이 취지를 미리 시민들에게 철저하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 날 밤 종로거리를 비롯하여 경성 시내 상인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사람 40~50명을 도청에 초대했고, 내무부장이 지사 대리 격으로 먼저 이 취지를 설명한 다음 제가 단상에 올라가서 한일병합의 취지·신통치의 정신을 대략 말한 다음 ‘폐점은 일본 국권에 대한 반역행위이므로 단호하게 이를 범죄로 취급하겠다.’ ‘독립소요 때에는 단지 위력을 보인데 그쳤을지 모르지만, 이번만은 행정집행에 의해 위반자를 즉시 경찰에서 검속하겠다.’ ‘이는 단지 탁상 위의 공언이 아니고, 반드시 단행할 것이니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숙지해 달라.’ ‘또한 모든 시민에게 이 내용을 잘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초대된 40~50명의 상인들은 그저 네네 하며 반문하는 사람도 없이 돌아갔는데 그 때의 분위기는 비교적 부드러워서 조선에서 오래 근무해온 사람들이 그날 밤 위기를 보고 말한 바에 의하면, 내일 무사히 일이 끝날 것처럼 생각된다고 우리에게 귀띔해준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이 성사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만이 아니라 시민 전체에게 이 취지를 철저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어 지사의 유고를 발포하기로 하고 즉시 이 유고 문을 써서 한글로 번역한 후 그날 밤에 바로 인쇄소에 맡겼습니다. 인쇄소에는 엄명을 내려 3명의 경찰관을 파견했고 새벽까지 약 3만 부의 유고 문을 인쇄하여 10월 1일 새벽 집집마다 배포했습니다.

또한 전신주나 그 외의 벽보에 붙여 이러한 취지를 철저히 주지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새벽 무렵에야 겨우 관사에 돌아와 한 두 시간 눈을 붙이고 10월 1일 아침 일찍 관사를 나와 분위기가 어떤가하고 자동차로 경성 시내를 돌아보았는데 거의 모든 가게가 폐점한 상태였고 문을 연 가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길로 정무총감의 관사에 들러 정무총감을 뵙고 시내 사정을 말씀드린 후 지금부터 경찰력을 동원하여 법에 따라 단호히 처단할 수밖에는 없다는 뜻을 말씀드리자 정무총감은 매우 우려하셨고 그 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는 지사대리로서 책임을 지고, 이 일을 단행할 것이고, 반드시 이 일을 성공시킬 확신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점에 응하지 않으면 이를 위반이라고 구금하려해도 수용할 장소가 없을 것이라고 과거 국·부장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이는 초무라기 상인들마저 감옥에 구인하려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겼던 것입니다. 상인 중에서도 발언권이 강하고 세력이 있는 사람들부터 검거해 간다면 앞서 마루야마군이 말한 바대로 40명 정도만 구금하면 전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만 가지고 조선 사정에 어두웠던 우리들이 과연 말처럼 이 조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은 신이 아닌 미약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예측 불허한 사실이었습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판에 급사가 정무총감실로부터 저에게 전화가 왔다고 알렸습니다. 그 전화는 마루야마 사무관에게 걸려온 전화였고, 폐점 상인 중 3할 정도가 이미 개점하기 시작했고, 계속 개점하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의친왕(義親王) 이강(사진)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배일사상이 강해 당시 조선 황족 중에서 항일 투쟁에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인물이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로 탈출해 상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했으나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전개한 일경에 발각돼 다시 국내로 송환됐다. 일제의 여러 회유책에도 끝까지 배일정신을 지켰다.

그때 정무총감은 “그러면 자네의 예상이 맞아 들었네! 잘 된 일이야!”하고 싱끗이 웃으셨는데 이 웃음이 얼마나 단단한 얼음판 위의 한 가닥 춘풍처럼 따뜻하게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3할 정도가 개점했다면 전부 개점케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즉시 관사를 나와 본부로 돌아와서 경찰서를 돌며 계속 독려했고 정오까지는 한 집도 남김없이 개점하게 하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독립소요 당시 병력을 동원해서도 수 십일에 걸쳐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을 겨우 반나절 만에 행위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했다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는 후에도 이야기하겠지만 경성 시내에서 일어난 경찰 사고 수 백 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인정받은 이강공전하(1877~1955, 조선 독립운동가,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義親王)으로 배일사상이 강함)의 일주(逸走)사건 및 미국 의원단의 경성 방문 사건과 똑같은 비중을 갖는 3대 사건 중의 하나로서 특기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 신정(新政) 제1보의 성공

▷미즈노

당시 폐점문제 처리에 대해 실은 저도 당황했고 망설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폐점문제는 일찍이 일본에서는 보지 못했던 문제였고, 조선에 오자마자 곧 이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조선에 근무해 온 국장들의 의견도 들어 보고 또 새로 부임해온 경무국장의 의견도 들어 보았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로서도 도저히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루야마군이 강경한 의견을 제시했고 또 지바군 같은 사람은 직접적인 관련국인 경찰당국자였기 때문에 특히 걱정을 많이 하면서 내 관저에까지 찾아와서 어디까지나 강경책을 펴며, 경찰력을 써서라도 개점시킬 결심인데 괜찮겠습니까? 하고 물어 왔습니다만 실제로 확신이 없었습니다.

처음 나는 폐점이라는 사건을 우습게 보았습니다. 조선 상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가게 문을 닫았으니까 내버려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폐점행위가 정부나 관헌에 대해 반항하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의미를 갖는 행동이라면 관헌이 침묵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또한 이를 방치한다는 것은 관헌의 위력을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조선통치상에도 중대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직접 경찰사무를 담당하고 있던 경기도 3부장이 “이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법에 의해 단호하게 처단하겠습니다.”하고 말했을 때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실행시킬 수 있을까가 심히 의심스럽고 위태롭게 생각되었습니다. 종로거리를 비롯하여 경성부 내에는 수 백 개의 가게가 있는데 이 가게 주인들을 모두 구금한다 해도 구금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였습니다. 경찰서 유치장이 그다지 넓지 못하니 모두 세워둘 수도 없는 입장인데,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지 않게 되면 도중에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를 것이고, 끌고 온 자들도 모두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더욱이 관헌의 위신이 실추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바군의 의견에 대해서 상당히 주저했고, 또한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지금 지바군이 말한 바대로 지바군이 내 관사에 와서 말하기를“법에 의해 처단할 방침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자네가 과연 이 일을 실행해 낼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만약 이를 실행할 수 없게 되면 도리어 덤불을 들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 되고 조선인들로 하여금 더욱더 경찰을 경멸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점을 특히 강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지방관의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던 만큼 나는 그에게 “자네가 그렇게 확신을 갖고 있다면 해보게. 그러나 이런 우려가 있다는 것쯤은 미리 알고 일을 처리해 주었으면 하네.”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지바군은 “이 일이 지사의 권한이지만, 지금은 지사가 공석 중에 있습니다. 지사의 의견을 들을 수가 없어 결국 지사대리인 내무부장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는 궁극적으로 제가 책임을 지고 일을 수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든 이 일을 수행할 자신이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라고 했으므로 “자네가 그 정도로 결심하고 있다면 해보게. 이 일이 무사히 끝나게 되면 굉장한 공적이 될 거야. 그러니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분투노력해 주게”하고 격려했습니다.

그후 경기도 3부장의 용의주도한 주의력과 교묘한 방법으로 주동자를 호출할 수가 있었고 목적대로 개점시킬 수 있었다는 전화 보고를 경무국장에게 받았을 때 굉장히 기뻤습니다. 이는 뭐니 뭐니 해도 신정(新政: 신정은 일제가 3.1운동 이후 조선통치를 새롭게 한다는 의도로 사이토 마코토 총독 부임 후 발표한 개혁정책을 말함. 소위 문화통치.)의 성공적인 치적의 첫 번째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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