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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간서치의 내공<이현수>
동양칼럼-간서치의 내공<이현수>
  • 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 승인 2017.11.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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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조선 후기 문인인 이덕무는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던 선비였다. 곡기를 염려할 만큼 사는 형편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수만 권의 책을 구해 읽고 수백 권의 책을 필사했다. 오늘날 후세들에게 곰살 맞게 지혜를 일러주는 그의 저서는 10여 종에 달한다. 그는 평소 “나의 글이 진귀하지 못한 것이라, 한번 남에게 보이면 사흘 동안 부끄러워진다.” 말하며 상자 속 깊숙이 넣어 두었다 한다. 어설픈 지식과 얕은 성찰의 한계 속에 때론 의무적이기까지 한 내 졸문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책으로 빼곡히 쌓여진 서재를 ‘팔분당(八分堂)’이라 작명하고 팔분의 철학을 이리 설명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가 십 분의 선한 본성을 갖추지만 어른이 되면 기질에 구애받고 욕심에 빠져 본성을 잃어 소인으로 전락한다고 통찰한다. 허나 죽을 때까지 선을 행한다면, 다행히 육분이나 칠분에 도달하지만 팔분의 경지를 사모하고자 서재를 팔분당이라 칭하기로 했다 한다. 결코 현실적이지 않을 십 분과 구분이 아닌 팔분의 경지는 여백의 미도 그러려니 와 인간 본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칠분과 구분 사이의 지향점이리라. 수려한 글 솜씨로는 당대에 대적할 자 없는 미당 서정주도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 이 바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미당의 잉여 된 이 할 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팔 할을 충족조건으로 판단한 건 자명한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들, 글 공력, 참으로 우월하다.

평범한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은 세간에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놀림을 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의 이해나 찬사 따위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의 세계를 보고 만들고 즐길 뿐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을 읽는 것이고 세상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지적 세계를 구축해 가는 것이다. 이덕무의 일생에 비견해 책 읽기의 즐거움을 논한다는 것이 어찌 가당키나 하겠냐만 책 속에, 글 속에 담겨있는 것은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납득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나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책만 읽는 간서치가 아니라 책도 안 읽는 천치가 얼마나 많은가를 따져보니 순간 졸렬한 우쭐함에 으쓱해지기도 하지만 자성 없는 시대의 인문학 위기가 어디 남의 일이던가.

먹고사는 것에 고운 심성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를 산다. 가뜩이나 생존이 건조하기만 한데 속절없이 인간의 수명은 길어진다. 보잘 것 없는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의 단절이 쉬이도 행해지는데 어찌 존재를 납득시킬 것인가. “마음에 조바심과 망령됨을 갖지 말자. 오래 지나면 꽃이 피리라. 입에 비루하고 속된 것을 올리지 말자. 오래 지나면 향기가 피어나리라.” 이덕무의 나이 19세 때, 그의 집 문설주 한쪽에 써놓은 글귀이다. 이 짧은 그의 좌우명을 읽고 되뇌면 단아하고 단단한 이덕무의 성정이 느껴진다. 그는 지식 실천의 대가를 벼슬이나 이익의 획득, 도덕적 향상에 두지 않았다. 마음에 꽃이 피고 입에 향기가 난다고 했다. 삶의 꽃과 향기를 위한 목표이기에 간서치였던 그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고 고결하다. 나는 그의 삶을 흉내나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호구지책에 어림도 없을 일이다.

혹여 간서치의 삶은 생존의 시대에 철딱서니 없는 선비 놀음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또 무엇을 위해 책을 모으는가. 의욕이 솟구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글 한 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지치는 날이 오고, 모든 게 부질없다고 에둘러 판단해버리는 시간이 우리에겐 늘 일상처럼 도사린다. 그러나 인생의 고단한 지점에서 나 자신의 답을 준비해둬야 열정은 식지 않고 인생 전체를 관조할 수 있다. 그리하려면 책 읽기의 지속성을 견지해 내야 한다. 읽었던 책 모두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언어에서 구현되는 흔적이자 지난 삶의 여적이다. 한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인생살이의 등불이다. 서재에 손때가 묻은 책들로 들어찬다는 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포만감을 선물하니 이 또한 버릴 게 없는 민어 같다.

책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도구이고, 책 읽기가 그 담백한 실천이라는 믿음은 휘황찬란한 스마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책 읽는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며, 세상의 지식을 흡수해서 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책 읽는 사람은 우리의 역사가 때론 불의가 지배했던 긴 밤의 역사임을 알고 있다. 깨어있던 민초의 힘으로 변혁의 역사였음도 알 수 있다. 생계의 서슬 퍼런 전선 앞에 간서치로 살지는 못해도 책이 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오롯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는 세상은 확연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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