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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 간신(奸臣)의 그늘<이현수>
동양칼럼 / 간신(奸臣)의 그늘<이현수>
  • 이현수
  • 승인 2018.02.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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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간사할 간에 신하신을 쓰는 간신이란 명사는 어감부터 부정적이다. 간악한 부하를 통칭하는 말이다. 윗사람에게 충심이나 능력이 아닌 아첨과 처세로 신임을 얻고 그 권력의 곁불을 이용해 자신의 안위와 잇속을 채워가는 이들이다. 대게 나라나 그가 속한 조직의 흥망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영달에만 천착해 공동체 침몰에 일조한다. 이웃나라 중국의 역사상 간신의 대표적 예로는 해괴한 공차기 기술 하나로 권력을 얻은 고구와 윷놀이의 일종인 저포놀이로 재상에 오른 양국충 등이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구한말의 을사오적 중, 이완용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외에도 현대사의 간악한 인물들은 숱하게 많았다. 그러나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나라여서 역사적 간신들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좌우로 나누어져 첨예하다. 간신은 광명보다 어둠 속에서 숨어 기생하는 자들이다.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비상식적 일들이 만들어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비선의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었던 토양에는 옳고 그름의 보편적 기준보다 기회주의적 처세가 득세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사회상이 있다. 그리고 그 처연한 현실은 지금도 도처에서 현재진행형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도 사실은 획일적이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좌든 우든 이념이 주는 기본적 도덕성이 다를 리 없다, 이념적 성향을 보편적 가치로 지향하는 이들을 찾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쫓지 않고 헌신과 겸양으로 정치를 하던 이들은 대게 국민의 신임을 다시 얻지 못한다. 줄 서기 정치의 척박한 토양도 그러려니 와 이전투구의 내공을 순수의 힘으로는 당해 내기 어려워서일지도 모른다.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국민 수준임을 자각할 때만이 간신이 득세하는 시대는 막을 내린다. 선량을 가려낸다. 허나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중국의 예,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거물급 간신은 명나라 말기의 환관으로 희종의 총애를 받았던 위충현을 꼽는다. 명의 비밀경찰인 동창의 수장이 되었고, 동림파 관료를 탄압하며 정치를 농단하여 명의 멸망을 촉진한 간악한 인물이다.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지식인들을 농락하여 자신의 앞잡이로 만든 다음, 이들을 자신의 지지자로 만드는 포섭에 능숙했다. 지식인으로서 위충현에게 충성을 다한 최정수란 자는 법무부 장관 격인 병부상서 자리를 꿰차고 공안정국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판 블랙리스트인 ‘동림동지록’을 작성하는 등 간행을 앞장서서 도왔다. 현대사의 오늘과 참으로 닳았다. 역사적으로 간신들은 카르텔에도 능통하다. 예외 없이 우두머리 간신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사리사욕에 입각한 패거리를 짓는다.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이런 무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 자들이 이른바 배운 자 들인데 지식으로 권력에 아부하고 거짓된 명분을 창조한다. 권력을 따라 변절을 밥 먹듯이 하는 탐욕적 지식인들의 민낯이다. 부정한 권력과 자본에 굴복하여 학자로서의 자존감마저 내팽개친 그들은 오늘날에도 도처에서 재림 중이다.

당나라의 정사인 당서 이면 전에 기록된 이야기 하나, 덕종에게 간신 노기가 있었다. 어느 날 신하들에게 “모두들 노기더러 간신이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충직하다. 어찌하여 그를 폄하 하는가”라고 물었다. 신하 중 어떤 이가 답했다. “노기가 간신인 것을 폐하만 모르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노기가 간사하다는 증거입니다”. 내친김에&#160;또 하나, 원나라 때의 사서인 송사의 유일지전에는 이렇게 써져있다.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이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 태곳적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린 그 현실을 목도하였다. 이러니 고전을 읽지 않을 수 있을까.무릇 반듯한 신하와 부하직원은 공동체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다. 정치나 경영이 지배와 복종을 뜻하는 게 아니기에 균형감각도 있다.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을 좇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신하들이, 부하들이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윗사람과 객관성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윗분을 위해서도 이러한 태도는 매우 좋다. 권력의 용광로에 너무 가까이 가면 몸에 불이 붙는다. 불나방이 되지 않으려거든 사람보다 공동체에 충성해야 한다. 간신의 그늘은 음습하다. 부패는 필연적이다. 영혼이 단아한 이들을 곁에 두는 일, 나라와 조직을 양지에 세우고 흥하게 한다. 그건 틀림없다. 그리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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