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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사명대사 일시적인 강화를 경계하다
풍향계/ 사명대사 일시적인 강화를 경계하다
  • 이석우
  • 승인 2018.09.10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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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석우

 

 

조선조정은 의주에서 명나라에게 원병을 청해 놓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조선의 국정지표는 배불승유였으니 유생들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세조는 유생들을 불러 모을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가까운 묘향산에 기거하고 있는 서산대사를 불러 내렸다. 나라가 위급하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서산대사는 전국 사찰에 승병모집 격문을 붙이고, 순안 법흥사에서 1500명의 승병을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격문을 보자마자 자신이 모은 승병을 끌고 법흥사로 달려가 합류하였다. 사명은 서산대사의 명에 의해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되어 승병을 이끌고 평양성 공략에 나섰다. 이때 승병의 수는 5천에 이르고 있었다. 대도주가 대마도에서 뽑은 병졸과 같은 숫자였다.

1593년 1월 사명의 승병은 조선관군과 더불어 명과의 합동작전으로 평양성을 공략하여 탈환에 성공하였다. 이어 권율과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꺾은 사명대사는 노원평에서 또 한 차례의 승전보를 조정에 알렸다. 이에 선조는 사명을 당상관에 오르게 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절을 일체 마을에 짓지 못하게 하고 산으로 쫓아 올릴 때를 생각하면 염치없는 일이긴 했으나 나라가 거센 바람을 이길 수 없는 촛불 신세니 어찌하랴

1953년 6월 진주성이 함락된 이후 전쟁은 무려 4년간 휴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조선은 명과 일본의 먹잇감이 되어 휴전협상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두 나라 외교관들은 국서 위조를 서슴없이 자행하여 자국의 왕조차 농락하고 있었으니, 조선에 대한 홀대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조선은 이 협상에서 제3자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서생포 성은 동해 바다를 한 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로 당시 일본군의 요새였다. 사명대사가 이 성으로 가토 기요마사를 찾아갔다. 사명은 자신을 ‘북해 송운(松雲)’이라 자칭하며 ‘대선사(大禪師)’라고 품격을 높여 가토에게 알렸다. 가토는 휘호부터 부탁하였다. 사명대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加藤淸正)를 제도하기 위해 쓴 필묵을 담대하게 써내려갔다.

正其而不謀其利(정의가 아니면 그 이익을 꾀하지 말라)/明有日月暗有鬼神(밝은 데는 일월이 있고 어두운 곳엔 귀신 있으니)/苟非吾之所有(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雖一毫而莫取(비록 털끝만한 것이라도 취하지 말라) 자기 물건이 아니면 털끝만치라도 취하지 말라는 추상같은 결기가 깃든 문장이었다.

불자이기도 했던 가토는 사명의 높은 경지에 압도되었다. 마침 가토는 기독교 신자였던 고니시와 전공 다툼으로 경쟁관계에 빠져있던 터였다. 사명은 가토 가슴속의 갈등을 자극하여 군사정보를 털어 놓게 만든다. ‘조선 8도를 분할해서 남쪽 4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 등 5개항의 내용이었다. 이 협상비밀은 조선조정에 전해져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사명은 두 번째 적진 담판을 마치고 돌아와 선조에게 “일시적인 강화로 국가 백년의 대계를 망각하지 말고 국세 회복에 만반의 방어책을 세울 것”이라는 골자의 보민토적(保民討賊)을 위한 상소를 올린다. 이는 현 국방 외교안보팀들이 명심해야할 명제라고 할 것이다. 김정은이 술이 취하였는데도 권하는 술잔을 받았다고 좋은 평가를 내 놓는 분들은 한번쯤 짚어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조정의 여러 신료들이 평상시에는 묘당에 높이 앉아 있다가 이같이 급한 일을 당해서는 아무도 계책을 내지 못하니, 나라를 구할 계책을 가진 자가 오직 유정 한 사람뿐이던가! 아아, 통탄할 일이로다”라고 당시 정치가들을 비판한다.

일본의 역사책 근대일본국민사는 ‘승장군 유정 송운대사는 승려로서 아까운 인물이라 할 정도로 지모와 변론을 구비하였다. 그의 대담함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다. 같은 승려이지만 일본의 겐소(대마도 간첩승)나 승태 등과는 완전히 그 자질의 차원이 다르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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