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대학에서 만난 박 아무개는 열네 살에 멕시코로 이민을 떠났다. 대학 진학 차 한국에 다시 돌아온 그는 한국어 발음도 어눌한 경계인이었다. 그는 테킬라라는 술을 통해 친구들을 포섭하며 낯선 고국 생활에 연착륙을 시도했다. 우린 그를 ‘박테킬’로 불렀다. 그가 언제부터 테킬라를 마셨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그의 애칭에서 드러나듯 ‘테킬라 홀릭’은 분명했다. 간혹 그와 어울려 한강 위, 새빨간 노을을 안주 삼아 몇 병의 테킬라를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적도 있었다. 시대의 상실감, 대책 없는 낭만 같은 게 밀려오면 공부와는 절연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나라 걱정에 격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쿠바 산 시가를 늘 태워 물었으며 친구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반드시 족발 안주와 소금을 곁들여야 테킬라를 마시던 이른바 ‘자폭적 낭만 집시’였다. 그에 반해 나는 식민지 발음으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흥얼거려도 술과 낭만 어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어설픈 ‘따라지’였다.



나이 쉰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거친 세상과 관계에 실타래처럼 엮이면서 그와 마셨던 테킬라의 40도 순도는 버거워졌다. 다시 그를 만난 것은 2010년도 국회에서였다. 입법화될 가능성이 희박한 법 제정 토론회에서 감격적 상봉을 했다. 나이보다 더 늘어진 주름 낀 얼굴에 어눌했던 발음도 말재간도 훌쩍 늘어 있었다. 건강과의 의미 없는 타협이었겠지만 이제는 타르 함량 덜한 국산 담배를 피워 물고 테킬라 한잔하자며 해후를 기뻐했다. 주머니 안쪽, 비닐에 담긴 멕시코산 소금 주머니를 슬그머니 꺼내들며.



테킬라를 같이 마실 친구가 예전처럼 주변에 있지 않다는 박테킬은 근간의 빈약한 인간관계를 한탄했다. 인간은 적절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결핍을 실감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사람 갈증이 서늘한 도수를 자랑하는 멕시코의 전통술 테킬라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에 하루 하루가 버거운데 출근을 뒤로하고 40도의 술을 매일같이 즐길 작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를 피하는 이들이 많아졌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1997년에 나온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두 사내가 죽기 직전 테킬라를 나눠 마시는 비장한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 본디 테킬라는 멕시코 원주민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 어쩌면 마지막 일지도 모를 아내와 마시는 비장한 이별의 술이다. 멕시코 다육식물인 용설란의 수액은 ‘풀케’라는 탁주가 된다. 이것을 증류한 술이 테킬라이다. 마실 때는 손등에 소금을 올려놓고 핥으면서 들이켜 마신다. 나는 일찍이 박테킬이 건네준 멕시코산 소금에 테킬라를 탐닉할 기회가 있었으니 술에 있어서는 글로벌한 선진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술병이 난 적도 허다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테킬라의 알코올 도수는 내겐 과하다.



그는 결혼 5년 만에 이혼을 했다. 그리고 여직 혼자다. 애틋한 사랑이 어떤 건지 열렬한 사랑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이하다. 그런 이유로 이혼을 감내할 사내는 많지 않다는 나의 세속적 평범성 때문이다. 아내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란 건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도 낳지 않았다. 자신의 견고한 세계에서 삶을 관조하는 그의 지난 이야기는 테킬라처럼 강렬했다. 여의도 모퉁이, 세계 주류를 파는 술집에서 테킬라와 함께 버거운 일상을 토하며,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빨래처럼 널어놓으니 새벽 세시가 훌쩍 넘어섰다.

테킬라 한 병 더하자는 청에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는 날 보며 그는 무척이나 서운해했다. 헤어진 시간 동안 사람도 마모되고 주량도 연약해져갔다는 것을 그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술이 취하자 그는 ‘삶이란 선택의 연속이야. 버려지거나 포기하는 것들이 있어. 그것들에 미안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야’를 되뇌었다. 외로움이 뚝뚝 묻어 나왔다.



멕시코에서 건너와 주변인으로 살아온 그였다. 머리가 덜 여물었던 시절의 동창도 친구도 없이 삶이 치열한 나라에서 그의 일상은 건조하고 힘겨웠을 것이다. 테킬라는 그 모진 외로움을 달랬을 벗이라는 생각이 드니 관계의 부채감이 엄습했다. 그제 서야 출근 근심을 내려놓고 테킬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테킬라처럼 독하고 쓴 내 친구 박테킬의 인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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