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동양일보 홍여선 기자) 당진시는 옛 선인들의 글을 통해 당진의 옛 모습과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고시(古詩)집을 발간 당진의 풍경과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 관심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고려말 조선초 목은 이색(1328~1396)부터 조선중기 구봉 송익필(1534~1599), 오산 차천로(1556~1610), 동악 이안눌(1571~1637), 조선 후기와 구한말 운양 김윤식(1835~1922), 하강 박제경(1831~1910)에 이르기까지 19인의 고시를 수록해 당진의 옛정서와 풍경, 시대적 배경을 담았다.

이중에서 고려후기 문신이자 고려 3은에 속하는 이색의 작품‘면주(沔州)의 미선(米船)이 당도하다’라는 글은 이색이 면천지역에서 왕실로부터 봉액 받은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로 인해‘면천의 쌀을 애타가 기다리는 마음을 읊고 있어’내포평야가 사대부와 왕실의 중요한 경제적 요충지가 됐음을 짐작케 했으며 이색이 이 작품을 지었을 당시 1350년 부터 1392년까지 충청도 지역 왜구침입 횟수는 모두 58회에 이른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청천당 심수경(1516~1599)은 면천반월루라는 고시를 남겼는데 반월루는 면천관아의 삼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1851년 경 반월루가 퇴락하자 당시 이관영 군수가 다시 짖고 풍락루라 명명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운양 김육식의 등양산기는 소들평야의 가을 추수 장면을 표현한 글로 頫東南之大野兮(동남쪽 너른 들판 굽어보니) 黃雲翳而西成(누런 벼가 뒤덮여 가을걷이 하는구나.) 玆海堗之天府兮(이는 하늘의 바닷가 곳간이니) 寔弘濟於中京 (참으로 서울을 크게 돕는다네.) 라는 부분은 소들평야가 조선왕조의 궁실재정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한 곳임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고시집을 발간한 당진시 문화관광과 남광현 팀장은“당진의 고시는 지역적 특성과 인물이 맞물려 당진을 역사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발간했다”며“우리고장을 알고있거나 인연이 있는 시인문객들의 문집으로 인용 당진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당진 홍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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