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끼리끼리 모이면 참으로 입이 걸기도 하다. 남녀노소 없이 똑 같다. 말이 있다, 어른애 할 것 없이 여자건 남자건 입은 다 달렸으며 소견도 다 멀쩡하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입이 걸다고 하면 여자보다는 남자, 애들보다는 어른을 내세우게 된다. 왜? 아무래도 남자어른들이 음담패설 또는 육두문자 등에 관한한 보고 들어온 것이 더 많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격어 본 일들까지 합쳐지고 이에 덧붙어 이를 구사하는 데는 아무래도 애들이나 부녀자들보다는 그 위치나 성격상 더 자유롭기 때문일 게다.

해서 사랑방에 남정네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입이 걸어지게 된다. “아직 불알이 여물지도 않은 것들이 입은 살아서 말끝마다 씨발 씨발여. 그게 무슨 말인지나 알고 하는 소린지 원!” “알긴 뭘 알어, 애들 자지는 꺼플자지 아닌가, 아직 벗어지지도 않은 것들이 껍적대느라고 그러는 거제.” “근데, 아직 시집장가도 안 간 어린것들이 어떡해 애를 만들었는지 몰러. 호기심에서 어뜨케 하다보니께 그렇게 된 거겄제!” “그렇제, 말이 있어, ‘장난치다 애 밴다.’ 고.”

그러다 부녀자 쪽으로 말을 옮긴다. “여자가 살이 찌면 엉덩이는 더욱 비대하게 된다지?” “그게, 계집엉덩이가 한 짐에는 못 지고 짐 반은 되겠다는 데서 나온 말이랴.” “삼거리 주모 참 웃기지 왜, 달라고 치근덕대는 사내들한테 뭐라는지 알어. 달라는 게 고마워서 준다는겨. 그러면서도 정작 준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말이지.” “그 주모 말 말어, 돈 닷 돈 보고 보리밭에 갔다가 명주 속곳만 찢겼다는겨. 누가 물레방앗간엘 가쟀나 여관방엘 가쟀나 미리 방패막이를 하더라구.” “그려? 내도 개코망신 당했어. 입 한 번 맞춰보자고 입을 쑥 내밀었더니, 남녀가 입을 맞추면 배꼽도 맞추게 된다면서 극구 떠다밀더라구.”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계속 유혹하면 결국 빠지게 된다는겨. 누가 알어 끈덕지게 달라붙으면 성공할지.” “그려, 계집과 숯불은 쑤석거리면 탈난다고 하지 않던가.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봐!” “자꾸 그러지들 말어 이 사람 그러다 늦바람 나겄어.” “늦바람에 머리털 세는 줄 모른다구 했어, 조심햐!” “늦바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늦바람난 여편네 속곳 마를 여가가 없다는 말이 있어 그만큼 헤어나기가 어렵다는 말 아닌가.” “맞어 , 바람도 올바람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무슨 말인고 하니 젊어서 피우는 바람은 바로 잡을 수 있으나 늦게 피우는 바람은 걷잡을 수 없다는겨. 내 말 새겨 듣게.” “이 사람들 누굴 엇다 몰아넣는 겨 시방!” “아니, 이를테면 말이지 고정하게.”

사랑방 시대가 어느덧 거하고 바야흐로 경로당 시대가 도래 했다. 그 남자방에 하릴없는 늙수그레한 남정네들이 모였다. 기억도 생생한 지난날의 일들을 들춰내고 들어 올리는 게 이들의 낙이다. 여기에도 걸은 입이 끼어든다. “옛날엔 좀 산다는 집은 머슴을 두었지 왜, 그때 어리바리한 날망집 장손이가 장가들었잖여 근데….” “그 날망집 샌님 어렵사리 빚내서 장손일 장가들여 놓았더니 기와집 머슴 좋은 일만 시켰다는 사건 말이지?” “맞어, 그 소문이 동네에 퍼져서 왁자했지 왜.” “덜떨어진 장손이보담 그 여편네가 맹랑한 여자였어. 옛말이 있잖여, 계집 못된 것이 아래위로 주전부리 한다고.” “ 여하튼 장손이 그 여자와 헤어지고 제 명대로 못 살고 갔으니 참 딱햐.” “어디 일찍 세상 뜬 사람이 장손이 뿐인가 우리 동네만 해도 여럿 있지만 그 개씨바리 양반은 아직도 눈에 선하이.”

‘개씨바리’ 란 눈병의 한가지다. 눈이 벌겋게 핏발이 서고 눈곱이 끼며 밝은 데서는 눈이 부시어 눈 뜨기가 어려운 눈병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원래는 ‘개ㅆ앓이’인데, 개가 ㅆ앓이를 하면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인지?) 그래서 그는 늘 안경을 썼다. 그러면서도 그는 집안 살림이 어려운 처지였지만, ‘보잘 것 없는 집안에 태어나더라도 나만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서 떳떳해 했다. 그런 그가 또한 ‘자라자지’라는 것이다. 이는 양기가 통하지 않았을 때에는 자라의 목처럼 움츠러들고, 보통 때에는 이렇게 작아도 한번 일어서면 몹시 커지는 자지를 이른다. 이건 흠될 것이 없어 그의 결혼생활도 원만했다.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전매특허는 ‘개치네쒜’ 이다. 그는 감기 즉 고뿔을 ‘개좆부리’ 라 했는데 이 개좆부리의 증상이 있어 재채기를 한 뒤에는 꼭 “개치네쒜‘하고 외쳤다. 이렇게 외치면 고뿔이 물러간다는 것이다.

“그려, 그 개씨바리 양반의 ‘개치네쒜’ 하고 외치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이.”

모두들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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