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부른 컨베이어 등 10월 안전검사 결과 ‘합격’
서부발전, 국회 제출 자료에 하청업체 사망자 누락
노동부, 안전보건 관리 실태 전반 특별 감독 들어가

충남 태안군 태안읍 한국서부발전 본사 정문 옆에 태안화력 하청업체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시민대책위가 15일 촛불문화제 이후 서부발전까지 거리행진을 한 뒤 갖고 온 국화를 철망 사이에 꽂고 초코파이, 자물쇠 등을 걸어놓았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씨의 사진을 15일 공개했다. 김씨가 지난해 9월 입사를 앞두고 자택에서 정장을 입고 씩씩하게 거수경례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충남 태안군 태안읍 한국서부발전 본사 정문 옆에 태안화력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주변에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가득 걸려있다.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초래한 석탄 운반설비가 두 달 전 안전검사에서 합격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가 지난해 국회에 인명사고 발생건수도 축소 보고한 사실도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태안화력발전소는 지난 10월 11~12일 석탄, 석회석, 석고 등 운반설비 안전검사를 받았다.

검사항목은 컨베이어벨트 안전장치 정상 작동 여부, 노동자에게 위험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의 덮개 등 안전장치 유부, 통로의 안전성, 비상정지장치의 적절한 배치와 정상작동 여부 등이었다. 이 검사는 민간 안전검사기관인 한국안전기술협회가 점검해 모두 합격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김용균(24)씨는 지난 11일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는 협착 사고로 숨졌다. 혼자 밤샘근무를 하던 그는 비상정지장치를 작동시켜줄 동료도 없이 참변을 당했다.

이번 사고의 주원인은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2인 1조’ 근무체제를 운영하지 않은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여기에 사고 두 달 전 운반설비가 안전검사에서 합격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검사를 부실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동부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한 특별감독에 착수했다. 과거 안전검사를 제대로 했는지도 감독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이 지난해 국회에 인명사고 발생건수를 축소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 박정 의원실에 보낸 2008~2017년 발전소 인명 사상자 자료를 보면 서부발전은 ‘9년간 44건의 산재가 발생해 사망자가 6명’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자료는 2011년 9월 28일 발전시설 외벽공사 중 하청업체 직원 3명이 추락해 2명이 숨진 사고와 2016년 2월 18일 컨베이어벨트 고정 공사 중 시멘트를 타설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2명의 추락사를 누락한 것이다. 이들 사고 사망자는 모두 하청업체 직원이다.

서부발전은 또 화력발전소에서 크고 작은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해진 매뉴얼대로 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15일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는 안전사고가 발생했는데 부상자를 구급차 대신 병원까지 이송했다. 이 노동자는 사고 발생 1시간 만에 숨졌고, 하청업체 측은 사고사실을 뒤늦게 경찰에 알렸다. 그해 11월 1일에도 3호기 보일러실 인근에서 용접 작업 중 불똥이 가스에 옮겨 붙으며 폭발, 노동자 2명이 숨졌다.

서부발전 측은 사망자 축소 의혹에 대해 “국회에 낸 자료는 자체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부를 통해 산재 처리된 내용을 받아서 제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관계자는 “화력발전소 내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산재가 수두룩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하도급 사고를 숨기고, 사고책임을 하도급에 떠넘긴 서부발전의 횡포를 조사하고 사고 축소·은폐가 있는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이번 사고에 대해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을 혼자 해 긴급 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없었다. 안전과 직결되는 교육이나 안전검사도 미흡했다”며 당국에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서부발전은 16일 공식사과문을 발표하고 진상규명과 사고 재발을 약속했다.

서부발전은 이날 사과문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김용균님의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신속하고 철저한 사고 진상규명을 위해 관계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성실히 임하겠으며, 조사결과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어 “더 이상 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하고 확인해 사업장 전 영역을 철저히 개선하겠다”며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고 소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을 존중하는 정부의 방침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서부발전은 사고가 발생한 지 5일 만에야 사과문을 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유가족에 먼저 사과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사과문 발표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김병숙 사장이 유가족에 사과하러 빈소를 몇 번 찾아갔지만, 민주노총 등의 반대로 만나지 못했다는 게 서부발전 측의 설명이다. 태안 장인철/이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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