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식 충북도 체육진흥팀장

강창식 충북도 체육진흥팀장

(동양일보) 몇 년 전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큰 인기를 끌며 부부 사랑과 가족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이 영화는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의 76년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그저 그럴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 넘어 관람객 480만 명을 돌파하며 독립영화 흥행 가능성도 확인시켜 주었다.

이 노부부 금슬은 참 애틋하고 살갑다. 백세를 바라보는 연세인데도 할아버지는 하루라도 할머니를 못 보면 병이 날 만큼 끔찍이 위한다. 할머니도 그런 할아버지를 든든히 믿고 의지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이 노부부는 옷도 한복만을 고집하고 똑같은 옷을 입는다. 요즘 말로 ‘커플룩’이다.

할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장난기가 넘친다. 싸리비로 마당을 쓸다가도 할머니가 나타나면 골려주려고 가랑잎을 할머니 머리에 흩뿌리곤 얼른 도망친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가 집 앞 개울에서 빨래를 하면 돌멩이를 던져 할머니에게 물을 튀기는 장난도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하지만 금세 풀어지고 만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도 할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을 찾게 되면 할아버지는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힘들어 한다.

이 노부부 슬하에는 자식이 여섯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생신을 맞아 식구들 모두가 자리를 함께 했다. 원주와 같은 도회지로 나가 사는 자식들은 모처럼 시골 부모님 집을 찾아 생신상을 떡 하니 차려 놓았다.

자식들이 부모님께 술도 한잔 올리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돌아가던 순간 둘째 딸이 술힘을 빌려 장남인 큰아들에게 한마디 쏘아 붙인다. “장남 노릇 하려면 똑바로 해 씨이. 엄마 아빠가 오빠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 따위밖에 못하는 거야!” 분위기는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여동생 핀잔에 화가 치민 큰아들도 이에 뒤질세라 맞받아친다. “내가 못한 게 뭐가 있냐 응?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하며 금방 주먹이라도 날릴 듯하자 다른 형제들이 나서서 뜯어 말린다. 부모님 모시는 문제로 마음이 갈려서 형제간에 싸움이 난 것이다.

결국 둘째 딸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차를 타고 쏜살같이 가버린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노부부는 이런 일이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듯 멋쩍어 하다가 둘째 딸이 눈에서 멀어지자 눈시울이 벌게진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 생신과 같이 집안일로 형제들이 다 모인다고 마냥 좋은 일만은 사실 아니다. 형제들 간에도 그동안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서로의 입장과 형편이 다르다 보니 이해득실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부모님 모시는 문제로, 집안일 분배 문제로 이 영화 장면처럼 형제간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사이가 틀어져 앙금이 남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아전인수 격으로 확대해석해서 그렇지 상처 줄 일도, 싸움질 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문제 핵심은 그런 앙금을 어떻게 슬기롭게 빨리 푸느냐이다.

그런데 동료나 친구 같으면 야 술 한 잔에 풀 수도 있고 풀기도 하련만 피를 나눈 형제간에는 왜 그리 힘들고 어려운 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번 마음이 엇나가면 좀체 꿍한 속을 풀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야 속이 아리고 쓰려도 참고 지내지만 돌아가신 다음에는 남보다 더 원수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가끔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어쩌면 섭섭하고 서운한 일이 생길 때 남보다 형제지간이 더 엄격하고 모질다는 생각이 든다. 구정 명절을 맞이하기에 앞서 작을지라도 형제간에 서운한 일이 있으면 더 서운해지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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