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숙 시인

심재숙 시인

(동양일보) 동양일보 해외 길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경험하게 되는 크루즈여행이었다. 여행으로 시작하는 한해, 2019년은 그 어느 해보다 환할 것을 기대하면서 여행을 맞이했다.

꽤 오래 전, 대마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뱃멀미를 너무 심하게 해서 배가 무서웠다. 뱃멀미 걱정에 전화를 걸었다. 걱정하는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배가 커서 뱃멀리 같은 것은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믿을 게 따로 있지,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그 말을 믿었고 크루즈여행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그래, 괜찮겠지. 배가 크다고 하니까. 괜찮으니까 배에서 1박을 하는 거겠지!’

나는 내 방식대로 그렇게 믿어버렸다. 그런데 배에 올라 멀미약을 먹기도 전에 멀미를 시작했다. 수시로 밖에 나가 파도와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니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뱃멀미와 씨름을 하고 일본 도토리현 사카이미나토항에 하선을 하니 온 몸이 홀가분해졌다.

버스를 타고 오카야마로 이동하여 에도시대의 상업도시, 국가지정 전통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는 구라시키 미관지구에 도착했다. 먼저 오하라 미술관엘 들렀다. 오하라 미술관은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화가인 고지마를 기념하여 건립한 일본 최초의 사설 미술관이다. 고갱, 모네 등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는 개성 있는 미술관으로 평가 받고 있는 곳이다. 고개를 젖히고 바라본 미술관 외관 건물도 예사롭지 않았다. 고지마의 ‘잠들어버린 어린 모델’ 그림 속 꼬마가 자꾸만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아기자기 꾸며진 골목길을 다니며 크고 작은 팽이, 콩주머니, 전통켄다마(요요), 다루마오토시 등 손에 쏙쏙 들어오는 놀잇감들을 샀다. 회벽과 맑은 운하와 늘어진 수양버들이 인상적인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여러 미술관과 모모타로 트릭 박물관, 일본 향토 장난감관, 국가와 시 지정 중요문화재 등 곶감 꼬치처럼 잘 관리하고 보존한 알찬 볼거리가 숨겨진 곳이다. 정해진 시간에 쫓겨 맛있는 곶감을 한두 개 맛보고 돌아서야만 하듯 아쉬움이 많은 곳 중의 하나였다.

다음날은 우노항을 출발하여 세계적 명소인 예술의 섬 나오시마엘 갔다. 귀동냥으로 이미 다녀온 듯 마음에 익숙한 나오시마. 춥지 않은 기온에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그래도 잘 참아줬다. 바람을 가르며 좁다란 길을 조심스레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걷기도 하면서 예술 속으로 들어갔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를 먼저 둘러보았다. 이어서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지중 미술관 관광을 했다.

지중 미술관은 입장부터 달랐다. 인원을 10명 내외로 제한하며, 입장 시간도 철저하게 지켰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모든 사람이 차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인위적인 등이나 불빛이 없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장소다웠다. 특수하게 설계된 건축으로 빛이 들어오고 빛의 각도에 따라 혹은 빛의 밝기에 따라 작품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기 위하여 미술관에서는 엄숙하리만큼 질서 정연하고 작품 하나하나가 보는 사람과 하나가 되었다. 이 미술관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에 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모네의 수련 시리즈에 푹 빠져볼 수가 있으며, 신발을 벗고 조용히 계단을 오르며 빛 그 자체를 예술로 제시한 터렐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또한 마리아의 ‘시간/영원/시간 없음’이란 작품 역시 내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롭게 말을 걸어왔다.

작품 감상을 하는 동안 저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느라 조용했다. 격이 높은 미술관, 수준 높은 관람객이 지켜나가는 지중 미술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선 예술의 감동이 한층 성장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2019년 여행으로 물꼬를 튼 나의 한해, 환한 빛의 감동이 긴 여운으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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