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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⑧
동양칼럼/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⑧
  • 동양일보
  • 승인 2019.02.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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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퇴계가 지금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선유동에서 9개월간 머물며 선유구곡을 정하고 바위에 글씨를 새겼다고 글들을 쓴다. 선유동의 절경을 홍보하려는 깊은 충정의 발로인 줄 안다. 단언하건데 기록상 정황상의 증거로 볼 때 퇴계는 선유동에 온 적이 없다. 그러나 선유동의 존재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선유동엔 퇴계와 율곡이 찾아가지 않아도 용기(龍氣)를 받은 인간신선이 선점하고 있었다. 바로 화피관(華皮冠)을 쓰고 소를 타고다니는 칠송거사(七松居士) 기우자(騎牛子) 선유거사(仙遊居士) 이녕(李寧 1514~1570?)이다. 그는 범인이 아니다. 고인일사(高人逸士)다. 당대 전국 거물들이 그를 숭상예찬한 말이다. 이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선례다. “지인지감(知人之鑑)”의 석학들은 누구인가? 기록은 정직하다.

첫째, 이녕의 전기를 쓴 사람들이다. 송인이 「증칠송거사병서(贈七松居士幷序)」, 이만헌이 「칠송거사전(七松居士傳)」을 지었다. 유성룡의 하회풍산유씨편,4,『고문서집성』「종천영모록」과 「퇴계연보 고증」에도 이녕이라는 이름이 있다.

둘째, 예찬시를 보자. 이황의 「증이거사(贈李居士)」, 성운의 「선유거사색시제황구이색기근」, 박지화의 「장입동해, 이령지우연방숙, 서이증별 오수」, 노수신의 「증이녕(贈李寧)」 등이 있다.

셋째, 선유팔경시를 지어준 사람들이다. 이황의 「선유동팔영」, 성운의 「칠송팔경七松八景)」, 구사맹의 「선유동십영」이 있다.

넷째, 이녕을 인정하고 교유한 당대 거물들을 보자. 성운, 이황, 박지화, 노수신, 송인, 구사맹, 신응시, 이이, 이지함, 유성룡등이다.

다섯째, 송인이 1569년에 쓴 「증칠송거사 병서」를 보자. “근방의 여러 승경들을 팔경으로 삼았는데, 신응시가 그것을 읊었으며, 또 박지화의 시에 화운하여 주었다. 이산해와 이이에게 소개하여, 한 마디 말을 해 주기를 청하니, 두 학사가 흔쾌히 만나 그와 즐겁게 말했다. 사람들으로 하여금, 문득 비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다.” 이녕은 『주역』 팔괘를 선유동에 적용하여 선유팔경이라는 문화산수로 창의했다. 인간신선 이녕이 퇴계를 만나러 갔다. 선유거사 이녕이 퇴계를 만나러 간 이유는 산수유람을 핑계 삼아, 퇴계가 도산일대의 지역사령관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만헌의 「칠송거사전」을 보자. “경오간(1570년)에 단양과 청풍 3개 군의 산수에 놀러갔다가, 죽령을 넘어 예안으로 내려가서 도산정사에서 퇴계선생을 배알했다. 선생은 자리를 마련해 회포를 풀며 대접하고, 「선유동팔영(仙遊洞八詠)을 지어 노래했다. 작별할 때 고시 8구를 지어 주었다.” 고시의 제목은 「증이거사」로 다음 내용이다. “선유동거사 지팡이 하나 짚고, 월악산과 구담봉을 거쳐 도옹(陶翁)을 찾아 왔네. 애오라지 팔영시 읊어 떠나는 그대에게 주니, 선유동 신선의 뒤를 따라 노니는 것을 좋아하네” 이때가 1570년이다. 이황은 자기를 찾아온 이녕에게 「선유동팔영」과 「증이거사」 2편의 시를 지어주며 극진한 예우를 했다. 왜 그랬을까?

구사맹의 「선유동십영」의 서문이다.“이황, 성운, 이지함, 송인, 신응시의 여러분들이 그를 허여했다. 여러분들이 지은 시를 하나의 두루마리로 잘 만들고, 나에게 시를 지으라 요구했다. 나는 홍굴(虹窟)과 석준(石罇)을 첨가하여 10영을 완성했다.”시축(詩軸)이 출현하기를 고대한다. 구사맹이 8경에 2경을 더해 10영을 지어준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만헌의 「칠송거사전」을 또 보자. “그 모습이 간정(簡靜)하고 자득(自得)의 정취가 있어, 대관(大官)들이 직무에 관한 일로 붙잡아두려고 했으나, 드디어 알리지도 않고 피해버렸다.” 이녕이 서울에 갔을 때 일이다. 이녕의 인품과 학식을 상상해보라.

이만헌의 「칠송거사전」의 다음 내용을 보자. “청주에 와서 이녕을 만나보지 못하면 두루 여행객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시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청주에 와서 이녕을 모르면 간첩이다”라는 수준이다. 청주에 와서 이녕을 못 만나면 고격(高格)의 사람이 아니었다.

이녕은 고도의 인품과 학문을 겸비한 전인적인 인물이다. 청주지역에 앞으로 이런 인물이 출현할 수 있을까? 양성할 수 있을까? 온고지신하여 창의융합학문교육의 주역이 되라!

그후 후학들은 선유동에 선유구곡을 정했다. 그리고 와룡폭포에서 용과 함께 수영하며 문화산수인 구곡에 대한 평론을 했다. 그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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