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무성 의원을 내란죄로 다스려 주십시오”

이런 제목으로 지난 3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 온 청원이 열흘만에 청와대 답변 기준선인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와대가 어떤 공식 답변을 내놓았는지는 아직까지 전해진 바는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자 주거 공간인 청와대를 폭파하자는 말이 공개석상에서 나왔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다. 그것도 청와대 입성을 호시탐탐 노렸던 6선의 김무성 의원 입에서 말이다. 자신의 꿈을 이뤄 대통령 즉, 청와대 주인이 됐다고 가정하자. 자신을 향해 누군가가 청와대를 폭파하겠다고 한다면 김 의원은 어떤 심정일까, 속이 궁금하다.

김 의원은 지난 2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4대강 보 해체 반대 집회에 참석해 “4대강 보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를 빼앗아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시켜 버리자”고 극언했다.

자신과 정파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를 때 격한 감정을 토해낼 수는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견해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옳고 저것은 그르다라고 속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집무를 하는 청와대를 폭파시키자는 것은 법을 떠나 국민을 얕잡아 본 행위다. 그의 말은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에 위해를 가하고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에 해당한다.

심각한 것은 그가 제1 야당 소속의 국회의원이라는 점이다. 소위 극우 세력인 태극기 부대 집회에서 일부 과격 인사의 입에서 이보다 더 거친 발언과 협박이 나오고는 있어도 제1 야당 의원 입에서, 그것도 6선에 아직도 대통령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거물 정치인의 세 치 혀에서 나왔다는 것이 파장이다.

논란이 일자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제의 발언 부분을 삭제했다고 한다. 삭제했다는 것은 곧 자신의 발언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김 의원은 내란죄 처벌 청원과 고발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한 청원인은 “현직 국가원수의 집무·주거공간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겠다는 발언이 내란이 아니라면 어떤 행위가 내란이냐“며 내란죄 적용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처벌을 촉구했다. 한 기독교 단체는 김 의원을 내란 예비 음모, 선동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의 청와대 폭파 발언을 들으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청와대 폭파를 공개적으로 거론해도 무사한 나라가 됐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유신과 5공을 경험한 50대 후반 이후 사람들에겐 당시의 암울했던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디 가서 박정희, 전두환 체제를 비방하거나 잘못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고초를 겪는 일이 다반사였다. 정권 눈 밖에 났다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갱이’, ‘김일성 찬양’, ‘간첩’으로 엮어넣기를 밥 먹듯 한 때였다.

당시 다방에서 옆 손님이 들을까, 레지(종업원)라도 들을까 숨죽인 채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지금이 당시와 같은 상황이라면 김 의원이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했겠지만 만약 꺼냈다면 신세가 어찌 됐을까. 물으나 마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상전벽해다. 청와대를 폭파하자고 해놓고 뭐가 문제냐며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처럼 ‘말할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몇몇 독재국가를 빼고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정치인 막말, 이젠 그만 들었으면 한다. 지지세력 결집용으로 쏟아내는 막말은 정치 혐오와 정치인 불신, 국민에게 상처로 돌아온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떠나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속한 용어를 뱉거나 국격을 훼손하는 막말은 더 이상 안했으면 좋겠다. 5.18민주화운동, 세월호와 관련된 망발도 이젠 신물이 난다. 정치인 입을 보면 또 무슨 막말을 하려나 국민들이 걱정을 하도록 만든다면 그 정치인은 정치에서 손 떼야 한다.

아직도 대통령을 꿈꾸고 있을 김 의원에게 바란다면, 청와대 폭파 건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은근슬쩍 관련 부분을 삭제하는 선에서 머물 게 아니라 공개사과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다른 정치인에게선 볼 수 없는 결자해지하는 ‘덩치 값’ 좀 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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