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의병항쟁, 정부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제천문화원은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 위치한 김규철(金奎喆, 1881~1929) 의병장의 묘소 성역화 작업을 지난 25~26일 2일간 실시했다.

(동양일보 장승주 기자) 제천문화원(원장 이해권)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제천의병묘소 벌초관리 및 봉분 새 단장 사업을 매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 위치한 김규철(金奎喆, 1881~1929) 의병장의 묘소 성역화 작업을 지난 25~26일 2일간 실시했다.

김규철 의병의 본관은 청풍이며, 부하들이나 일본군이 ‘날아다니는 장수’로 불려 호가 비장(飛將)으로 불렸을 만큼 신출귀몰한 기동력으로 전투 때마다 용맹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그는 일찍이 궁내부 주사를 지낸바 있으며,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청풍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의진의 중군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강년 의진에 참여해 1907년 음력 9월 죽령지역에서 400여 명을 인솔하고 일본군과 접전을 벌여 5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철원싸움에서도 대승했다.

그 해 11월 일시 체포됐으나 탈주했으며, 이듬해 봄에도 체포와 탈주를 거듭했고 끊임없이 의병항쟁을 계속했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조직적인 독립활동이 시작되자 김규철은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했고 이를 독립군에게 전하기 위해 상해로 가다가 체포돼 재판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5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이강년의 전투기록을 간행하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손자 김훈영(84)씨는 “선영을 잘 관리하고 싶었으나 묘테석과 봉분이 무너져 안타까워하던 중 문중회의를 거쳐 국립묘지로 가려 했었다”며 “제천문화원에서 7년 전부터 벌초 관리를 해주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천 장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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