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겸 청주시 청원보건소 영하보건진료소장

(동양일보) 사랑하고 포옹하고 토닥여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머니는 정이 많으신 분이었지만 스킨십엔 도통 취미가 없으셨고 곰을 닮은 나도 마음속으로만 ‘사랑합니다’ 할 뿐 표현에 서툴렀다. 어머니의 손길을 쑥스러워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을 내 몸이 기억한다. 모녀간에 스스럼없이 안아주기도 하고 손잡아 주는 드라마를 보면 참 부럽다. 내 아이들과도 그런 모녀 사이가 되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왠지 어색하기만 하다.

어머니는 딸 다섯에 쌍둥이 남동생을 낳으셨다. 둘째인 나는 언니랑 비교를 많이 당하고 살았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언니가 정말 미웠다. 귀한 남동생이라서 늘 좋은 것은 언니나 남동생 차지였다.

자라면서 내내 사랑에 목말랐던 터라 아이가 태어나면 많이 사랑해줘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어머니를 닮았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육아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모유 수유가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아예 젖을 물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참 모진 엄마였구나 싶다. 그런 탓일까 분유를 줄 때 품에 안고 먹여도 아이가 칭얼거려 눕혀 놓고 우유병을 이불에 고여 주면 잘도 먹었다. 육아를 위해 시부모님과 합가를 했는데 어머니가 아이에게 우유를 주는 방식이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어른들 앞에서 내 새끼 챙기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음껏 품에 안아주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살뜰히 보듬어주지 못한 탓인지 딸들과 오근자근한 편이 아니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툰, 조금은 무덤덤한 모녀지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특히 작은 아이는 자라면서 독립심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한, 조금 특별한 아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여자아이가 과격한 킥복싱 선수 생활을 하지 않나,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왜 여자만 치마를 입어야 하느냐며 바지 사달라고 승강이도 많이 했다. 방학이면 노랗게 파랗게 머리 염색을 하는 등 개성이 너무나 강한 아이였다. 그런 딸에게 여자애가 무슨 킥복싱이냐며 여자에게 어울리는 발레를 배우라며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댔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갑자기 무슨 관심이냐며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갈등의 날들을 보내는 동안 내 안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님에도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때부터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좀 다른 성품을 지녔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을 공유하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고 엇나가기만 하던 딸애는 다행스럽게 바른 성품의 소유자로 잘 자라줬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제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해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좀 특별하다 싶은 호텔 조리학과를 선택해 요리에 열중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주말마다 집에 와서 실습시간에 배웠다며 불고기, 샤브샤브, 탕수육, 닭찜도 해주는 모습이 신기하고. 이 아이에게 저런 섬세한 면이 있나 싶어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딸애는 지금 내 곁에 없다. 취업차 호주에 가 있다. 취업이 어려운 때에 본인의 전공을 살릴 수 있고 견문도 넓힐 수 있는 길이라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서는 참 잘 된 일이다 싶다. 하지만 어릴 때도 외롭게 했는데 먼 이국땅에서 혼자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안타깝다. 함께 있을 때 사랑을 듬뿍 줬더라면 그 사랑의 힘으로 잘 버틸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싶어 아쉽다.

딸애가 떠나던 날이 생각난다. 온 마음을 다해 힘껏 안아 주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다. 평상시 많이 안아주고 부대끼며 지냈더라면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지인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많이 보고 싶다. 곰돌이 푸를 유난히 좋아하는 딸아이가 모으기 시작한 인형이 빈 방을 지키고 있다. 푸만 보면 딸 생각이 간절하다. 매일매일 통화해 곁에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맛있는 음식 먹을 땐 입에 넣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프다.

요즈음 나는 포옹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돌아오는 딸을 힘껏 않아 주기 위해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내가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상상하고 연습하면서 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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