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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 고령화 사회 고령자를 생각하다
동양포럼 / 고령화 사회 고령자를 생각하다
  • 박장미
  • 승인 2019.07.07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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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적으로 본 ‘나이 듦’의 의미 ―삶의 가치와 보람을 찾는 마무리를 할 때-
신규(수필가)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1. 시작하며

현대사회를‘장수시대’또는‘100세 시대’라고 한다. 사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노인의 법정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조정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장수사회로 진입했음을 나타내는 의식의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축복을 눈앞에 두고,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장수시대가 진정한 축복으로 이어지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논제의 주체인 개인의 인식변화는 물론 전문가와 유관기관이 지혜를 모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요즘 사회적 담론으로 노인문제가 많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의 대안을 찾고자하는 고심일 것이다. 본란에서 ‘노인철학’이라는 철학적 명제로 수년간 석학들의 고견을 다루고 있음은 시의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차제에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늙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은퇴자로서 옛 분들의 사상과 삶의 지혜를 빌어, 본제의 의미를 수필적으로 풀어 우회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예로부터 우리사회의 소박한 소망은 오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었다. 오래 살고(壽), 부를 이루며(富), 건강하게 살면서(康寧), 덕을 베풀고(攸好德), 제명대로 살다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考終命)이었다. 현재의 잣대로 치더라도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그러나 온 가족이 대를 이어 한 곳에 정착해서 살던 농경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재처럼 역동적인 사회구조에서는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생활환경과 가치관의 변화도 변화지만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생의 주기가 달라진 것도 주요원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매년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다. 이날에는 사회의 여러 단체에서 노인을 위한 행사를 치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100세를 맞는 노인에게 청려장(靑藜杖)을 증정하는 지방자치 단체가 늘고 있는 추세다. 원래 청려장은 명아줏대로 만들어서 가볍고 단단하여 노인들이 짚고 다니면 건강에 좋다고 여기던 지팡이다. 노인에게 청려장을 주는 풍속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속 중의 하나로 조선 대에는 부모가 50세가 되면 자식들이 잔치를 베풀고 청려장을 드렸다. 이것을 가장(家杖)이라고 했다. 60세가 되었을 때 고을의 수령이 주는 것을 향장(鄕杖), 70세 때 국가에서 주는 것을 국장(國杖), 80세가 되면 임금이 내리는 청려장을 특히 조장(朝杖)이라하고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다. 청려장을 받은 노인은 늙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가정이나 사회의 대소사에서 어른으로서 존경을 받았다. 아름다운 우리의 풍습이었지만 시대상황이 변하여 현재로서는 의미가 퇴색되었다.



2. 언제부터 노년인가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60세까지 산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집안에 회갑을 맞이하는 어른이 계시다는 것은 가정의 경사였으며, 더불어 동네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잔치를 치렀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회갑잔치를 전후하여 60대에 치러지는 잔치가 4번이나 있었으니, 육십 세의 생일에 치러지는 육순(六旬), 회갑 다음해 진갑(進甲), 66세에 미수(美壽)이다. 요즘 세태에 회갑잔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일흔 살이 되는 해의 고희연(古稀宴)이나 팔십 세 때의 생신(傘壽)잔치도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사람이 칠십 세까지 살기는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는 옛글에서 유래한 70세나 80세 모두 현재 우리국민의 평균 수명에 미치지 못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농경사회에서 인생의 주기는 보통 유․ 소년기에서 중년기를 지나 바로 노년기로 이어졌다. 현대에 들어 우리사회가 급격하게 공업화사회, 정보화사회로 변하면서, 전문기술인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간이 늘어나 성인으로서 취업하는 연령이 늦어졌다. 또 의술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생존기간이 연장되면서 생애의 주기도 변하였다. 따라서 농업사회에서 중년기로 간주되던 시기를 교육기간에 해당하는 청소년기, 취업을 시작하는 청년기, 사회중견으로 역할을 하는 중년기로 세분하고, 80세부터 노년기로 구분하는 것이 현재의 세태다.

노후를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보면 노후를 지내는 여러 유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분은 그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며 보람을 느낀다. 어느 분은 지역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이웃에 봉사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즐겁게 지낸다. 어느 지인은 독서나 취미생활을 하며 한가로이 소일하다가도 기분이 나면 훌쩍 여행길에 올라 세상의 풍물을 즐기고 돌아온다. 또 어떤 이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산과 들로 마음껏 쏘다니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유․ 소년기에 갈고 닦은 지식을 청․ 장년기에 나름으로 펼쳐서 이제 노년기를 맞아 인생 삼모작을 거두는 것 같다. 마치 오늘을 위해 그 많은 날들을 준비해온 것처럼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여유가 넘친다. 미수米壽를 넘기고도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40대의 사람이라도 고희古稀의 연령에 달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70세지만 때늦은 불혹不惑의 연령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장수시대의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장수국가 일본에서는 진즉부터 ‘0.7☓인생’ 계산법으로 생활나이를 치고 있다. 실제나이가 80세라면 80에 0.7을 곱하여 56세를 생활나이로 생각한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80대에 있는 분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50 지천명의 연배에 버금가게 활동하는 분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40 불혹不惑이니 50 지천명知天命, 60 이순耳順 같은 연령을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은 이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세태를 보면 생의 주기는 연령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관리와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구분되는 정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공자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于學),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三十而立),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五十而知天命),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대로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고 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 세분하여 삶의 변환점을 기술하였다. 당시의 평균수명을 감안한다면 공자는 73세까지 장수하고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대로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고 정리한 것은 인생의 완성기에 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단계에서 삶을 정리하는 경건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3. 인생의 변곡점

학자마다 인생을 구분하는 단계가 다르고, 그 단계의 특성과 역할을 설명하지만,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나름으로 자신만의 변곡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에 있어서 제1의 인생기는 미성년으로서 부모나 사회로부터 세상살이에 필요한 가르침을 받았던 시기이다. 내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가문의 자식으로서, 또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르침을 받았던, 육체적으로는 성인에 가깝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상태에서 좌충우돌하며 성숙해 나갔던 시기다.

제2의 인생기는 직장을 잡고 가정을 이루며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때로는 열정에 넘쳐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 시기였다. 나의 경우 30세에서 50세까지의 시기가 아닌가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는 그가 저술한 <서드 에이지. The third age>에서 인생을 4단계로 구분하고 40세에서 70세 까지의 세 번째 연령기를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로 정의했다. 새들러 역시 인생의 황금기를 종전의 노년기에 해당하는 70대까지 확장하였으나 이러한 이론을 주장한지 이미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80대 이후까지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제3 인생기 역시 새들러가 정의한 세 번째 연령기와 비슷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내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들이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과의 이별이다. 어릴 때,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성장하다가 고향을 떠나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어려울 때나 기쁠 때 함께 했던 고향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또 근래에는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함께 시작하여 지금까지 직장 동료로서보다 삶의 동반자로서 자별하게 지내던 친구가 작년 금년 연연으로 유명을 달리했던 일이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 충격으로 한동안 우울증을 겪었다. 친구들을 보내고 나서,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고, 역지사지로 나의 죽음도 생각하였다.

제4의 인생기는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단계이리라. 절친한 친구들을 먼저 보내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 덧없음.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제3 인생기에서 이 단계를 구분하여 지금까지 논했던 죽음의 단순한 마무리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보람을 찾는 마무리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현실로서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미숙하고 여러 가지로 준비가 부족하여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생로병사에 초연하고, 안개 속에서 벗어나 대명천지를 접할 수 있는 심경에 들었을 때 나의 마지막 단계의 인생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유유자적하며 자유라는 신선함과 설렘을 만끽하면서 삶을 마무리할 것이다.



4.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노년은 가족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자유로움을 얻지만, 대신 자손들이 결혼하여 분가하면 품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어쩔 수 없이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식솔들로 북적이던 집안의 온기가 적막강산이 되고, 정이 넘치던 대화는 줄어들고 TV 소리가 대신하다보면 외로워지고 심하면 우울 증세까지 나타난다. 젊었을 때 활발하게 맺어진 인간관계마저 소원해지면 심리적으로 허탈감에 빠지기 쉽다.

은퇴 초기에는 의욕적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품격 있는 노쇠를 추구하며 제3의 인생기를 맞이한다. 마음속으로는 생의 마무리를 염두에 두고 지나온 삶의 미진한 부분을 찾아 보완한다. 그간 이런저런 사연으로 미루어 왔던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그것에 열중한다. 건강생활을 하며 취미생활을 즐긴다. 밖으로는 자원봉사에도 참여하고 지나쳤던 인연도 찾아 챙긴다.

제3의 인생기 초반에는 현직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알차고 보람을 느끼는 바쁜 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다. 현대의술의 도움을 받으며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한다 하더라도 자연의 법칙은 피할 수 없는 장벽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문화에 익숙한 손주 세대에 밀려 농경사회에서 필요했던 경험과 지혜는 거의 효용가치를 잃고 진부한 지식으로 무력해진, ‘나’를 본다. 체력과 심력, 역할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돌아보며‘나이 듦’의 의미와 이 사회에서‘나는 무엇인가’라는 노인의 존재적 가치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즈음에서 삶의 끝자락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노년과 죽음을 연관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편협한 발상이며, 노년과 죽음이 시간적으로 가까울 수는 있어도 노년의 삶과 죽음은 별개의 문제다. 노년을 맞아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삶의 의미를 찾는 가운데 인생의 죽음을 생각해야 올바른 방법이다. 결국 모든 인간의 끝자락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죽음 이후의 세계는 차원이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앞에서 소개한 논어에서 제시한 천명을 안다는 것을 어느 유학자는 ‘힘쓰지 않아도 들어맞고(不勉而中), 생각지 않아도 얻어지는(不思而得)’성자(誠者)의 경지라고 해석했다. 결국 삶의 의미와 우리 생애의 목표, 즉 죽음의 이미를 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는 가끔 삶의 문제에 대하여 논하다가 종착지로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종교, 그가 속해있는 지역사회 또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자아실현의 양상에 따라 크게 다르겠지만 ‘죽음’이란 우리 인간에게 평등하게 찾아온다. 삶이 개인의 능동적 영역이라면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적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죽음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대상이며,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적 명제는 후학들에 의해 ‘어떻게 살 것인가’로 이어져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마감된다.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는 그의 수상록에서 ‘우리 생애의 목표는 죽음이다’고 죽음에 대하여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어서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고, 죽음이란 단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겪게 되는 몇 가지 나쁜 순간에 불과할 뿐이며, 죽는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잠드는 것처럼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몰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自然)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일러줄 것이며,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라고.



5. 삶과 죽음의 의미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70 - 기원전 399)는‘아테네의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국교에 대한 불신을 가르쳐 타락시켰다’는 협의로 독배를 마시게 하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제자들의 주선으로 탈옥할 수 있는 여건인데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의연하게 독배를 마시고 최후를 맞이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까지 제자들과 나눈 대화는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새삼스럽게 이를 통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탄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제자가 정색하며 물었다.

‘저희를 뒤에 남겨 두고 가시면서 어찌하여 기쁘다는 말씀이십니까.’ 소크라테스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평생을 통해 번뇌와 싸우면서 늘 육체의 방해를 받아온 사람이 드디어 그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걸세. 죽음은 육체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자주 토론했던 자기완성이라는 것도 되도록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시켜 영혼이 육체 밖으로 나와 자신에게 스며들어 집중하는 것에 있는 것이고,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영혼을 해방시켜 주게 되는 걸세(중략) 소크라테스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목욕할 시간이 된 것 같군. 아낙네들이 시체를 씻는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목욕을 한 뒤 독약을 마시는 게 좋겠지?’ 침통해 있던 제자가 정중하게 물었다.

‘선생님의 장례식을 어떻게 할까요?’

소크라테스는 빙그레 웃으며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라고 대답했다. 제자들이 목 놓아 통곡하기 시작하자

‘ 왜들 이러나,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군. 죽을 때는 모름지기 경건한 침묵 속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야. 모두들 마음을 가라앉히고 용기를 내게.’(중략) 방금 전에 마신 독약의 기운이 퍼져 소크라테스의 몸이 점점 식어 가다가 아랫배까지 차가워졌을 무렵,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몸을 덮고 있던 홑이불에서 얼굴을 내밀며 마지막으로 말을 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제단에 수탉을 한 마리 바치는 것을 잊지 말게’

그 이후로 소크라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 옥리가 천을 덮었다. 소크라테스의 눈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크리톤이 다가가서 뜬 채로 굳어 버린 눈을 감겨 드렸다.”(플라톤의 <대화>에서)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삶을 마감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에게 독배를 마시게 한 재판관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심지어 죽은 뒤 자신의 시체를 씻겨줄 사람의 수고까지 걱정하는 인간적인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독약의 힘으로 자신을 이승의 생명에서 해방시켜준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에 대한 감사였다.



6. 맺으며

인간이 태어나 삶을 마감할 때까지 겪는 생로병사의 육체적 쇠퇴를 막을 길은 없다. 철학자들은 생물학적으로 늙어가는 육체란 단지 ‘영혼의 집’에 불과할 뿐이라고 했다. 만일 영혼의 집에 해당하는 육체를 잘 관리한다면 빛나는 영혼과 더불어 단 한 번뿐인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길이라 본다. 인위적으로 삶의 단계를 구분하여 자성예언처럼 자신을 그 단계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오히려‘늙음’을 더 가속화시키는 것이며, 삶을 무의미하게 마무리하는 우愚를 범하는 길이 아닐까.

한때는 방황하고, 어느 때는 생존을 위하여 본의 아니게 저지른 양심의 가책이나 무모한 이기심으로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꾸려나가면서 설령 바른길에서 벗어났더라도 탄성처럼 되돌리려는 이성이 있었음에 스스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어찌 보면 내 인생의 수확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렇게 물든 내 인생의 들녘을 바라보면서 거두어야 할 알곡도 있고, 버려야할 쭉정이도 있다. 누군가 노년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예측불가능성’을 말했지만 그래도 우선 당장 내 삶의 텃밭에 파종할 삶의 채종도 챙겨두고, 마음의 창고에 들여 놓을 여분도 필요하다.

거두어 무엇에 쓸 것인가는 차치해두고, 그간 좌충우돌하며 삶의 현장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 성취하고, 못 다한 ‘이승의 잔재미’도 즐기면서 또 하루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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