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1995년 WTO 가입 때부터 국내 농업 보호를 명분으로 25년간 유지해오던 개발도상국 지위를 정부가 지난 25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그동안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에 대해 우리나라의 개도국 특혜를 인정했지만 정부의 포기로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래 농업 분야 피해는 불가피해졌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미국과 통상마찰을 무릅쓰면서까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개도국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이 양자 협상을 통해 어떤 통상 압박을 가해올지 알 수 없고 그걸 방어하는 기회비용까지 따졌을 때 차라리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관세 부과 여부, 한미 방위비 협상을 비롯 외교·안보·통상 등 여러 분야의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 유지를 무기로 활용할 개연성이 큰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개도국 지위 포기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실익을 우선한 차선책이 됐다.

우리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이미 확보한 개도국 특혜는 유지된다. 미래에 새로운 협상이 타결되면 그때부터는 개도국 특혜가 없어지고 선진국의 의무를 져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WTO 협상이 없어 개도국 지위 포기로 당장 영향을 받을 일은 없다.

그러나 농업분야 피해가 예상되면서 농민들이 개도국 지위 결정을 철회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농업계가 제시한 6개 요구 사항들을 검토해 신속하게 보완대책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공익형 직불제를 비롯 농어촌 상생 기금 확충, 주요 채소류 가격안정제 확충 등이 검토 대상이다.

나아가 개도국 지위 포기를 계기로 단순한 피해 보전 차원의 예산지원이 아니라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어 농업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또 스마트 기술과 접목된 미래 농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도 필수불가결이다.

현재는 개도국 특혜를 바탕으로 수입쌀에 513%의 관세를 부과하고 보조금인 고정·변동 직불제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새로운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앞으로 이를 줄이거나 없앨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농업계 피해가 가시화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 피해 최소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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