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충북도농업기술원 전작팀장·농학박사

이재웅 충북도농업기술원 전작팀장·농학박사

[동양일보]요즈음 가을이 저물면서 산과 들이 온통 붉은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형형색색의 단풍과 더불어 들판에는 노란색의 벼가, 밭에는 붉은 수수가 한창 수확을 마무리하고 있다.

도시민에게는 다소 생소한 듯한 수수는 중앙아시아~인도가 원산지로 붉은 이삭으로 인해 단풍과 경관면에서도 잘 어울린다. 특히 충북은 단양, 제천을 중심으로 641ha가 재배돼 전국 제일의 생산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작은 면적 충북의 몇 안 되는 1등(?) 작목이다.

수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생육기간이 짧아 파종 후 약 80일이면 수확이 가능하고 고온과 건조에도 잘 자라는 특성이 있어 재배도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이다.

그러한 장점으로 인해 우리의 어머니 세대인 70~80년대에 시골 들녘 여기저기에 큰 키의 수수를 심곤 하였는데, 배고픔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일날에는 어김없이 수수팥떡이 올라와 있던 어릴 적 기억이 새롭다.

우리 조상들은 수수의 붉은 색이 귀신을 물리치고 액을 방지한다는 생각에서 수수로 떡을 해서 동서남북으로 한 조각씩 버리기도 했으며, 아기 생일에 수수팥떡을 해주어야 자라면서 액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한국 전역에 걸쳐서 퍼져 있었다.

또한 수수는 목숨 수(壽)자가 둘씩 들어가므로 자손이 번성하고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 때마다 수수팥떡을 하는 것이 좋다는 믿음에서 하였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먹고 살기도 벅찬 가난한 살림이었고, 수수 알곡을 수확하고 난 줄기로 빗자루를 만들 정도로 사람키 보다도 훨씬 커서 재배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쓰러짐도 매우 심하였다.

그럼에도 우리 어머니들은 자식들 잘 되라는 한결같은 바람에서 그 어려운 수수를 재배해 수수팥떡을 해주신 것이었다.

그런 수수가 품종개발 덕분에 요즈음에는 재배가 비교적 쉬운 작물로 변신을 하였다. 충북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청풍찰수수는 키가 109cm 밖에 되지 않아 웬만한 바람에는 쓰러지지 않을 뿐 아니라 기계화 수확도 가능하기에 노동력도 대폭 감소하였다.

더구나 10a당 수량도 357kg 이상이니 어머니 세대에 비해 거의 2배 가량의 수량이 증대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품종이 개발되었으나 수수팥떡을 해서 먹는 전통은 요즈음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어머니의 정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을 터인데 그 어렵고 가난한 시절에는 수수팥떡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편해진 오늘날에 그 전통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수수팥떡은 옛날의 좋은 의미 뿐 아니라 한번 먹어본 사람은 또 찾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고 식감도 부드럽다. 곡물 중 거의 유일하게 들어있는 수수의 탄닌 성분과 미네랄, 생리활성 물질의 섭취는 덤으로 얻는 이득일 것이다.

이번 가을에는 영양성분이 뛰어난 잡곡인 수수로 떡을 한번 만들어 수수의 옛 전통과 기능성을 한 번 누리는 호사를 느껴보자

내 생일이 가을이라 찬바람이 불면 그런 수수팥떡을 해주시던 어머니의 정이 더욱 그리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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