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다.

그것은 선거를 통하여 스스로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기 때문이며, 누구나 후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마음이 나타나는 일은 놀랍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얼마 전 민심의 분노를 표출한 홍콩의 선거가 그랬다. 6개월째 시위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홍콩의 구의원 선거는 홍콩 선거 사상 최대 투표자가 참여했으며, 친중 여권이 참패하고 범민주 진영이 과반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쓰나미와 같은 분노가 홍콩을 휩쓸어 친 중파에 산사태와 같은 참패를 안겼다”고 선거결과를 표현했다.

선거는 민심을 반영하는 바로미터. 그래서 민주주의의 꽃이다.

내년 4·15 총선을 4개월 여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 꽃이 어떤 모습으로 피게 될지 몰라서 각 정당들이 초조한 민심읽기에 들어갔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불안한 모양이다.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정당마다 쇄신과 혁신을 화두로 꺼내기 시작한 것을 보면.

‘쇄신’은 ‘물갈이’로 대표되며, 혁신의 잣대가 된다. 하긴 선거 때마다 공천방식의 변화, 새로운 인물을 통한 인적쇄신은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였다. 이러한 이유로 정당들이 내놓은 방법 가운데 가장 큰 쇄신안은 현역 의원을 대다수 교체하겠다는 점이다. 때마침 더불어민주당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총선 ‘물갈이론’에 불을 지폈다.

먼저 민주당은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에 대해 감점을 준다고 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현역 의원의 절반이상을 교체한다고 했다. 이와함께 비례대표 후보의 선출방식도 바뀌어지고 있다. 과거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 순서 배정이 당내 세력의 입김에 의해 결정됐던 폐해를 막기 위해 일반국민의 참여로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권리당원과 일반국민으로 국민공천심사단을 구성, 이들이 직접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내놓는 이러한 ‘쇄신안’들이 임시방편이 아니고 실제로 실천이 된다면 21대 국회는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공천을 받고 표를 얻을 때만 몸을 낮추고 국회로 들어간 뒤엔 거수기 노릇만 하거나,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하는 의원을 막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쇄신안이 아니어도 지난 선거 때를 보면 40%에 달하는 물갈이가 이뤄질 정도로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총선을 준비하는 쇄신안이 바른 정책과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 시스템 정비로 가야지, 단순히 현역의원 몇 프로를 물갈이 하겠다는 싸움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물갈이’의 대상으로 관록이나 능력이 무시된 채 다선의원이거나, 나이가 많은 의원 순으로 거론되는 것 또한 비민주적이다. 관록이 있는 정치인이 제대로 된 정치력을 익히기까지 걸린 세월은 한국정치의 재산이 될 수 있다. 청년을 영입하고, 전문분야 사람을 영입한다고 해서 인적쇄신이 될까. 정치경험이 없는 초년생들이 대거 정치계에 입문하면 신선할 수는 있지만 국민의 이해가 제대로 대표되거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정치가 되려면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요즘 공천 쇄신안을 두고 정치계에서는 ‘나이는 경쟁력인가, 죄인가’라는 조크가 돈다.

‘팩트풀니스’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한스 로슬링은 현대 인간의 생애를 15세까지 아동, 74세까지가 성인, 75세 이상을 노인으로 구분했다. 100세 시대에 걸맞는 나이 구분이다. 총선의 승리를 위해서 정당들이 내놓은 쇄신안이 이해는 되지만 너무 나이로 구분하지 말고, 국민들이 똑똑하게 표로 ‘물갈이’하도록 믿어주는 것이 진정한 선거를 민주주의꽃으로 피우는 일이다. 지금 정당에 필요한 것은 인위적 쇄신안이 아니라 정당 민주주의를 발현할 수 있는 정당 시스템 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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