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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5) 사명대사의 길 충북 Ⅱ/충주 숭선사지(사적 제445호)
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5) 사명대사의 길 충북 Ⅱ/충주 숭선사지(사적 제445호)
  • 동양일보
  • 승인 2020.03.12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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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유정감진명 기와
숭선사명 기와
숭선사지 전경

[동양일보]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사명당이 충북지역의 어디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그의 행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명당은 선조 대에 충주에 위치한 숭선사에 주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의 수리산 아래에 자리한 숭선사지는 고려 광종 5년(945)에 광종이 어머니 신명순성 왕후를 위해 왕후의 고향인 충주에 세운 고려왕실 사찰이다. 신명순성 왕후는 태조 왕건의 3번 째 부인으로 충주지역의 대 호족이 였던 유긍달의 딸로서 그의 소생인 왕요와 왕소가 고려 3대 왕 정종과 4대 왕 광종이 된다.

고려 태조의 많은 왕비들 중에서 자신의 소생 2명을 왕위에 올린 것은 외가인 충주 유씨 가문이 고려 초기 왕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숭선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그 이후 법등이 이어지지 못하였는데, 여기서 출토되는 문자기와를 볼 때 숭선사의 마지막 중창 시기는 선조 12년인 1579년에 있었고, 그 후 13년 뒤 임진왜란 때에 폐사가 된다.

기와는 중국의 서주(西周)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활용되었고 지금까지도 건축물의 부재로 사용되고 있으니 기와의 연원은 대략 3천년 정도 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용도에 따라 다양하고 다채로운 기와들을 생산하였고 기와에 각종 문양을 담아 시대적인 특징과 사상을 표현하여 예술적 가치를 더하였다.

기와를 제작하면서 때로는 생산자가 글자를 새긴 기와들을 만들었는데 이를 “명문와“ 라고 한다. 이들 명문와는 해당 건축물이 언제? 누가? 왜?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를 음각 또는 양각으로 새겨놓아 역사학과 미술사연구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적인 기록이 부족한 실태에서 이러한 명문와는 공반하여 출토되는 다른 유물과 유적의 시대를 편년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움이 되고 있다. 기와는 출토지가 정확하다면 다른 일반적인 유물들과는 달리 움직이지 않는 유물로 평가 된다. 그것은 설령 이사를 한다 해도 가재도구 등 일반적인 용품들은 옮겨 가겠지만 지붕위의 기와를 베껴가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숭선사지에는 사찰의 중심인 당·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당간지주의 한 쪽만 겨우 남아있던 폐 사지였다. 2001년부터 충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연차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사찰의 내력이 밝혀지고 역사적, 미술사적으로 중요성이 인정되어 문화재보호의 최고 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적”으로 지정받게 되었다. 출토 유물은 금속류, 자기류, 와전류, 불기 등 다양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숭선사(崇善寺)명 기와를 비롯하여 선조 대에 사용된 연호인 만력(萬曆)이 새겨진 기와들과 유정감진(惟政監眞) 등의 명문와가 주목되었다.

『고려사』의 광종 5년 조에 “창숭선사(創崇善寺)”라고 하여 숭선사를 창건하였음을 알리고 있는데 그동안 숭선사의 위치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숭선사가 고려 수도인 개경근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명문와의 발견으로 인해서 숭선사가 개경이 아닌 충주에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몇 차례의 발굴조사를 마친 후 숭선사지를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이 심의과정에서 유서 깊은 강화도의 전등사가 동시에 의안제출 되었으나 이곳 폐사지가 고려사의 기록과 출토유물이 일치하는 관계로 숭선사지가 전등사에 앞서 우선하여 사적지로 지정 받게 되었다.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관심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진 기와 한 조각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규명되고 복원되고 있다는 사실이 있음을 알아야겠다.

앞에서 언급한 “유정감진” 명문와에서 보이는 생각할 유惟자와 정사 정政은 사명당의 법명인 유정과 한 획도 다르지 않은 同名이며. 감진(監眞)은 중창불사에서 총감독의 직책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정 즉 사명당이 1579년을 전후한 시기에 숭선사의 불사를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숭선사는 고려시대 이래 국찰로 경영되었기 때문에 국찰에 대한 중수책임은 당연히 당대의 고승대덕이 맡았을 가능성이 있고, 사명당은 선조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명문와의 유정을 사명대사로 보는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또한 선조 대에 유정(惟政)을 법명으로 하였던 스님은 사명당 한 분이기 때문에 위의 유정은 사명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명문와로 볼 때 사명당은 왕실사찰인 숭선사의 주지로 주석하였거나 숭선사의 중창역사를 총괄하는 책임자였다고 짐작된다.



1. 숭선사지 전경

2. 숭선사명 기와

3. 유정감진명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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