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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6) 충주 숭선사지 사명대사의 길 3
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6) 충주 숭선사지 사명대사의 길 3
  • 동양일보
  • 승인 2020.03.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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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원장

[동양일보]지난 호에는 충주 숭선사지에서 출토된 유정감진(惟政監眞)이라고 쓰여진 작은 기와 쪽을 통해서 1579년을 전후한 시점에 사명당이 숭선사의 중창불사를 주도했음을 밝힌바 있다. 그렇다면 창사시기인 고려초기의 숭선사는 어떤 사찰 이였을까? 숭선사의 가람 배치와 출토 유물을 살펴봄으로서 이 절의 위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발굴조사 결과 숭선사의 금당은 일반사찰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대석형의 기단을 조성한 것과는 다르게 정면한 판석을 균형 있게 조립하는 가구식기단을 구축하였다. 이것은 석탑의 기단부를 조성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서리에는 가장자리의 기둥을 의미하는 우주를 만들고 판석과 판석사이에는 탱주를 모각한 고급형의 기단부를 구축하여 건물의 격을 높이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사진 1>

 

또한 금당의 지붕 끝 처마에는 일반적인 못을 사용하지 않고 금동제연꽃봉오리로 장식한 못을 사용하여 건물의 위용을 높였다. 이러한 금동제의 연꽃형와정(瓦釘)은 남‧북한을 통 털어 숭선사지에서만 발견되었다〈사진 2〉

우리나라 고건축사에 새롭게 기록될 만한 금동제연꽃와정의 출토를 볼 때 숭선사는 고려왕실 사찰로서 당대에 가장 화려했던 격조 높은 건물이었음이 고증되고 있다. 2002년 2월 kbs에서 방영된 역사스페셜 147회에서 숭선사의 금당을 디지털로 복원하여 그 장엄한 역사를 방영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사찰건축에는 진입공간과 중심공간, 그리고 주변공간으로 구분되어지며 건물의 용처에 맞게끔 가람이 배치되는 원칙이 준용된다.

그러나 숭선사는 금당의 뒤쪽 북편에 맞닿은 상단부지에서 특별한 구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중문을 지나서 시작되는 동·서 회랑시설이 금당의 양 옆으로 지나쳐 이 곳으로 연결되게 축조되었다. 지금도 원형이 잘 보존된 서 회랑은 금당의 기단과 같은 가구식 기단을 마련하였고 그 상면에는 초석을 놓고 중앙에 전돌을 깔아 답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로 볼 때 숭선사의 전각배치는 금당보다는 그 위편에 있는 亞자형의 건물에 더 중심을 두었고 이 건물이 숭선사에서는 가장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숭선사는 『고려사』에 의하면 광종이 어머니를 위해서 세운 원찰이기 때문에 이곳 亞자형의 건물지는 아버지 태조 왕건과 어머니 신명순성왕후의 영정을 봉안했던 영당(影堂)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따라서 숭선사는 건립초기부터 고려왕실의 진전사원(眞殿寺院)으로 경영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숭선사는 문숭리 수리산자락 아래에 자리한 계단식 산지가람이다. 산지에 가람을 조성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배수관련 시설이다. 숭선사는 길이 36m규모의 개도식 배수로와 암거식 배수로를 혼용하여 기초공사를 한 후 그 위에 교량과 같은 건축물을 배치한 토목공법을 사용하였음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중요한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많이 실시되었지만 숭선사지와 같은 우수하고 정교한 치수시설은 아직까지 보고된 예가 없어 숭선사의 창건에는 당대 최고의 수리 기술과 토목공학적 설계가 응용되었다고 하겠다.

 

6차 발굴조사에서는 남쪽 회랑지의 배수로에서 높이 28.6cm의 대형 금동제 풍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금당의 추녀에 걸렸던 것 중의 한 점으로, 이 금동제풍탁을 매달았던 건물의 규모가 웅장했고 화려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 금동제풍탁은 우리나라의 발굴조사현장에서 출토된 풍탁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큰 규모이다.〈사진3〉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풍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며 10세기 중반 숭선사의 창건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금동제풍탁과 금동제연봉와정은 2018년 고려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주최한 “중원의 고려사찰” 특별전에 일부를 복원하여 전시하였고 현재는 국립청주박물관의 상설전시관에 소장되어 공개되고 있다.

 

한편 1차 발굴조사에서는 동 회랑지 북쪽에서 분청사기장군 1점이 출토 되었는데 출토 당시에 병의 주둥이가 밀봉된 채 그 위를 백자접시로 덮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진4〉 출토당시에 묵직한 상태여서 병 안에 무엇인가 담겨 있음을 즉감했지만 내용물이 무엇인지 궁금증만 더해 갈 뿐, 알 수 없었다. 조사단의 어떤 이는 술이 담겨있는 것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결로현상으로 이슬과 같은 물이 채워져 있는 것 아니겠냐? 하는 추측만 난무하였다.

조사단에서는 한국지질과학연구소에 내용물의 분석을 의뢰하였는데, 분석결과 놀랍게도 다량의 꿀과 “자소”라는 한약재가 혼합 된 내용물로 확인되었다. 자소는 해충 등에게 물렸을 때 바르는 약재의 일종이라고 한다. 숭선사에 주석했던 이름 모를 스님에 의해 만들어진 약재와 분청사기병이 사백여 년 동안 땅 속에 매장되었다가 발굴조사과정에서 온전한 자태로 드러난 진기한 유물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15~16세기경 제작된 장군형태의 분청사기병은 많이 발견되고 있으나 내용물이 채워져 밀봉된 상태로 출토된 것은 숭선사의 분청사기 병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숭선사지는 6.25 한국전쟁 시에 미군 공병대가 주둔하던 곳으로 중장비의 운행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는데, 이들 중장비의 하중을 견디고 지표 20cm 아래서 그것도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일이며 우리나라 발굴사에서 하나의 미스터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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