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1998년 11월과 12월의 어느 시점(時點)으로 돌아가 이 글을 쓴다.

11월 20일 강화 앞바다에 출몰한 간첩선 놓침. 12월 4일 인천 모 공군부대에서 발생한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 오발 사고, 같은 날 강원도 고성 모 육군부대 사병 휴게실에서의 무반동총 불발탄 사고로 3명 사망 5명 부상, 같은 날 강화도에서 레이더에 잡힌 철새 떼를 괴물체로 오인한 해군 함정들의 추적, 12월 6일 김포 주둔 해병부대의 야간 조명 사격으로 일산 민가 주민들의 부상.

이것은 불과 보름 사이에 일어난 육·해·공군의 어처구니없는 무기 사고다.

이는 국군 창설 이래 최대의 수치로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일들이다. 얼마나 해이하고 부주의했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다시피 하는가?

우리는 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고를 부주의와 무기 관리 소홀로만 보지 않는다.

이는 첫째, 군 기강의 무방비가 빚은 결과요 둘째, 긴장 해이가 가져온 결과다.

그러므로 이는 긴장 고조와 군기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할 수 있다.

세상에 나라를 지킨다는 국방의 간성이 이 모양이니 국민이 어찌 이들을 믿고 살 수 있는가.

군인의 임무와 사명이 도대체 무엇인가?

말할 나위도 없이 군인은 국가의 간성으로 국토방위 수호가 임무요 사명이다.

그런데 이래야 할 군이 정신이 해이할 때로 해이해져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하지만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위의 일들만이 아니다.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JSA)에 근무하는 일부 사병들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술을 마시고 선물까지 주고받는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30여 차례에 걸쳐 접촉하면서도 상부에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이들은 북한군과 접촉하면서 북한산 맥주와 담배, 인삼주, 독일제 위장약 등을 선물 받고도 순찰 도중 우연히 주운 것으로 보고해 우리를 더욱 기막히게 하고 있다.

군인은 언제 어디서나 군인다워야 군인이다. 군인이 군인답자면 어떡해야 하는가.

견인불발(堅忍不拔)의 투철한 군인정신이 있어야 한다.

정신 차릴 일이다.

정치가 부패하고 공직이 부정하고 교육이 비리하고 경제가 파탄나고 종교가 타락하는 이 마당에 나라 지키는 군인마저 이런다면 도대체 나라 꼴이 뭐가 되겠는가.

필자는 여기서 프랑스의 저 루이에르네스트 모피장군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잠시 소개하니 이 나라의 간성들은 감계로 삼으라.

모피장군은 프랑스의 원수(元帥)를 40명이나 배출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모피장군은 소년시절에 세운 맹세를 엄숙히 지켜 변화한 프랑스의 한복판에 살면서도 군인정신 하나로 일관했다.

1870년 그가 13세 때 고향인 메스시(市)가 독일로 붙어졌다.

적국의 압제 밑에서의 삶을 참지 못한 루이 소년은 남몰래 탈출하여 프랑스의 웨스트포인트라 불리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소년은 그가 고향인 메스시를 떠날 때 고향이 다시금 프랑스의 지배로 돌아올 때까지는 절대로 환락 장소는 드나들지 않겠다고 맹세해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 맹세를 지켰다.

그는 군사령관이라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고 두 아들도 군적(軍籍)에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아들로 하여금 스파르타식 맹세를 지키게 했다.

대한의 간성들이여! 그대들도 저 모피장군이 되라.

아니 루이에르네스트 모피장군을 본받아 세계에 드날리는 군인이 되라.

저 고구려의 상무정신(尙武精神)과 신라의 화랑정신(花郞精神)은 다 어디로 갔는가? 다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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