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경재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경재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동양일보]2008년도 여름이니 벌써 12년이나 지난 얘기다. 무덥고 어수선했던 그해 어느 여름날, 아버지가 갑자기 “이번 주 일요일에 개성관광 티켓을 끊었으니 같이 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개성? 뜬금없이 갑자기 개성이라니?’라고 내심 의아해했지만, 그해 만 80이 되신 신의주 출신 아버지의 망향의 그리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단 한번이라도 고향 근처라도 가고 싶은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개성은 고향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한번 다녀왔던 곳이었기에 고향만큼이나 그리운 곳인지라 나는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개성행 관광버스에 올랐다.

북으로, 북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고 긴장감이 더해졌다. 그러한 긴장감은 드디어 휴전선을 넘어 진짜 북녘 땅으로 들어서자 긴장감은 극에 달했고, 분명 같은 땅인데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곳에서 처음 본 광경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산은 민둥산이요, 논밭에는 곡식 한 줌 없이 메말라 그 흔한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몇 백미터마다 버스행렬을 감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총을 멘 군인들과 행여 치부가 될 만한 사진이 있을까 디지털카메라를 일일이 검사하던 군인들의 살벌한 눈초리에서 온몸을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가난하고 통제된 사회! 바로 말로만 듣고 TV에서만 보던 곳이었다.

하지만 버스 행렬에 손을 흔들어주던 착한 눈망울의 어린아이들, 송악산에서 시원한 맥주를 팔던 친절한 미소의 매점 아가씨, 중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관광안내원에 뽑힌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남측 소식에 밝았던 잘 생기고 쾌활한 성격의 청년안내원의 모습에서 ‘이들도 역시 우리 동포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게다가 점차 친절하고 붙임성 있는 그곳 사람들의 진심 어린 모습에서 나의 긴장감과 초조함을 눈 녹듯이 사려져 갔다. 아니 오히려 아주 오래된 친구나 친척을 만난 것처럼 푸근해지고 친근감마저 들었다.

개성시내는 고색창연한 한옥이 늘어서져 있어 마치 조선시대 영화세트처럼 느껴졌다. 점심은 어느 한옥에 깔끔하게 차려진 맛난 12첩 한정식! 점심 후에는 송도의 절경인 숲이 우거진 송악산과 속이 뻥 뚫리도록 시원하게 내려 쏟아지는 박연폭포, 아직도 정몽주의 선혈이 낭자해 보이는 선죽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려박물관 등등을 본 후 갔던 길을 되돌아 왔다.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는 만감이 교차되는 묘한 감정마저 들었다. 과연 우리 동포, 우리 땅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지금 그곳은 어떠할까? 개성관광이 끊긴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는데, 그 동포들과 숲과 폭포는 그대로일까... 다녀온 후에도 한동안 복잡다단한 생각이 많이 든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 그러나저러나 향수에 젖어 구석구석을 감개무량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던 아버지는, 가보고 싶어 하시던 그 땅을 하늘나라에서도 마음껏 둘러보고 계실지...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