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청주교육지원청 장학사

김미희 청주교육지원청 장학사

[동양일보]방학이라 집에 온 딸은 온라인 수업과 인턴일을 모두 재택으로 하게 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 치는 배드민턴으로는 운동량이 부족해 배가 나온다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집 근처 필라테스 학원을 알아본 모양이다. 어느 날 내 손을 이끌고 알아봐 둔 필라테스 학원 두 군데의 현장 답사를 갔다.

1번 학원, 4층짜리 건물에 두 개 층을 학원으로 쓰는 것으로 보이는 큰 학원에 들어서는 순간 원장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 상담받으러 왔냐고 물었다. 그녀는 우리를 작은 방으로 안내하며 앉자마자 준비한 파일을 넘기며 속사포처럼 설명했다.

필라테스를 하면 몸매도 예뻐지고 건강도 좋아진다는 말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대별로 이름만 약간씩 다른 프로그램들로 꽉 짜인 시간표를 보여줬다. 눈으로 표를 보고 귀로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기 바쁜 우리에게 1개월짜리부터 6개월짜리 수강료의 목록을 보여주며 6개월짜리가 할인 폭이 크니 알뜰한 사람들은 6개월을 한다고 말했다.

원장이자 필라테스 강사라는 그녀의 손은 건조해 보였다. 갈라진 목소리와 푸석한 파마머리로 약 20분 동안 일방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의 압박에 답답함을 느낀 우리는 더 생각해보고 오겠다는 궁한 답변을 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현관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등에 날리는 그녀의 마지막 말 "에구~~ 엄마도 운동 좀 해야겠네~~” 잔 주먹을 날리며 우리를 혼미하게 만들던 그녀는 마지막 어퍼컷으로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딸은 1번 원장의 무례함에 놀랐고, 나는 1번 원장의 정확한 지적에 기분이 상했다.

2번 학원, 한 층만 학원으로 쓰고 있는 아담한 학원 현관을 지나 도구들이 있는 운동실까지 들어가도 아무도 우릴 향해 돌진해오지 않아 조용히 학원을 둘러보았다. 필라테스 도구가 4개의 방에 10여 개씩 분산되어 있었다. 그사이 주인 같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무심하게 상담받으러 왔냐고 했다. 그렇다고 했더니 역시 준비한 파일을 넘기며 설명했다.

필라테스는 필라테스라는 사람이 자신의 병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었고 그가 직접 고안한 도구를 사용하는 운동이며 관절과 근육을 자극하여 원래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라고 했다.

여성 전용 학원이며 앱을 통해 자신의 운동 스케줄을 예약, 취소할 수 있다고…

딸은 그 자리에서 2번 학원에 등록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1번과 2번 원장이 사용한 설득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번 원장의 상담은 반찬은 많으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 상차림 같았고, 2번 원장의 상담은 반찬은 적으나 시식해보고 싶은 상차림이었다고.

1번 원장은 필라테스의 효과에 대한 강한 ‘신념’과 수강생 확보의 저돌적인 ‘의도’ 로 무장한 기술을 사용했고, 2번 원장은 필라테스의 객관적 ‘사실'과 ‘의미', 그리고 수강생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안내'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마치 교사의 말과 개입이 많으면 학생은 듣기만 하고 소극적으로 돼 가치판단력이 저하되고 질문이 없어지는 교실 현장처럼 말이다.

​설득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설득하려는 자의 ‘의도’보다, 상대방의 질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나만 알고 있다는 식으로 기존 ‘지식’을 강조하기보다 상대방도 알고 있을 것이라 인정하며 그 지식(정보)을 색다르게 '편집'하여 제시하는 설득의 기술을 우리는 관계 맺기라고 부른다. 설득이 기술이 아닌 관계 맺기일 때 소비자는 자유의지로 이끌리듯 기꺼이 소비하게 되고, 학생들은 자기주도적 배움의 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의 느슨한 생활을 ‘지적’하며 필라테스의 세계로 입문해야 사람답고 건강하게 산다고 ‘가르치는’ 1번 원장의 말은 불안하지만, 거부감이 들었고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2번 원장은 우리의 ‘자기결정권’을 가동했듯이 말이다.

상대방, 맥락, 배경이라는 다양한 조건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 이다지도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온 관절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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