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종석 미술평론가

일회용 하루(2s), 청주시립미술관 설치작품, 2019

[동양일보] 다른 이(사물)에 호기심이 많다. 진심으로 이해한다. 세밀히 관찰한다. 공통점을 잘 찾아낸다. 호소력이 있다. 성정원(48) 작가는 특히 다른 이의 아픔에 민감한 사람 같다. 우리는 이러한 이를 공감(sympathy)능력이 큰 사람이라 이름한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돌, 제 자리 없이 구르고 있는 돌, 우연히 내가 만난 돌들이 이곳저곳 치이고 상처받아 움츠린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그들만의 시간이 있다(<돌들이 만난 시간>, 작가노트, 갤러리B77, 2021)’ 작가는 한낱 돌덩이에도 따스한 시선을 보내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이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일회용 하루(disposable days, 2013)>는 작가의 공감 능력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다. 2019년 같은 표제로 청주시립미술관에서 한 걸음 더 진화했다. 그녀는 이 전시기획에서 일회용 컵을 소재로 삼았다. ‘일회용(disposable) 컵’은 현대인들이 일상의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하는 수많은 물건의 대표단수(상징은유)이다. 작가 또한 매일 일회용 물건을 사용한다. 일회용 물건을 사용할 때면 ‘사치스럽다’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사치스럽다’라는 표현에는 양심의 떨림이 있다. 그녀는 일회용품의 사용을 ‘누군가의 시간을 훔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의 쓰임을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품은 당연히 그렇게 사용되어 폐기될 수 없는 존재이다. 작가는 일회용 컵을 앞에 두고 상상한다. 일회용 종이컵에는 수십 수백 수천의 시간이 들어있다. 한 그루의 나무로 자연 속에서 당당히 살아 버텨온 시간이 그 안에 있다. 플라스틱 컵도 마찬가지로 수만 년 수억 년 광물질로 지구의 한점을 지켜온 시간이 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순간의 소비로 빼앗고 있다.

작가는 ‘찰나의 시간 뒤에는 겁(劫)의 시간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짧은 소비로부터 오는 편리와 쾌감에는 존재와 시간의 약탈이 그 뒤에 있다. 작가가 줄지어 늘어놓고 쌓아 놓은 많은 일회용 컵은 현대소비사회에 대한 외침과 증언인 동시에 미래 고고학적 발굴의 반성적 은유이다.

인간은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다른 이의 살과 피를 취해서 생존한다. 약탈의 존재이다. 약탈자와 피약탈자 사이의 관계를 그저 운명적 관계로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피약탈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그 선 순환관계를 끊어지고 인간의 시간 또한 종료하게 된다.

<일회용 하루(청주시립미술관, 2019)> 4개 영상작품의 제목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작품 <결코 사라지지 않는(The Disposables never be disposable)>은 ‘일회적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면서 현대인의 일상, 시간, 소통 등 매우 반복적이지만 일회적으로 소비하는 메시지를 … 뜨거운 커피를 들고 다니며 마신 후 버려진 일회용 컵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찰나의 일상을 투영하며 젖어 일그러지고, 찢어져 마모되어 언제나 일회용인 우리의 오늘을 그려내고 있다.’

성정원 작가의 ‘일회용 컵’에서 사라질 운명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처연함이 아니라 결코 폐기될 수 없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성정원 작가
성정원 작가

▷성정원 작가는...
한국교원대 미술교육과, 뉴욕대학교(예술교육, 석사, 2005) 졸업. 한국교원대 대학원 박사과정(2011, 수료), 개인전 11회, 단체전 100여회. 청주시립미술관 등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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