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사고 차량 숨기는 등 증거인멸 시도…‘자수’ 논란도

▲ '크림빵 뺑소니' 사건 피의자 허모(37)씨가 3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청주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허씨는 이날 취재진에 "유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허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진/김수연>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고 피의자 허모(38)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청주지법 이현우 당직판사는 지난 31일 열린 허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도망갈 염려가 있고, 증거인멸 우려가 소명됐다”고 영장발부 사유를 밝혔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경찰호송차량을 타고 법원에 도착한 허씨는 취재진에게 “유가족들에게 죄송하다.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부터 자수하려고 했는데 겁이 나 못했다”며 “아내가 설득해 자수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람을 친 것을 기억하냐는 질문에는 “사고를 낸 것은 알았지만, 사람을 친 것은 몰랐다”고 부인했다.

허씨는 지난 1월 10일 새벽 1시 29분께 청주시 흥덕구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윈스톰 차량을 몰고 가다 강모(29)씨를 친 뒤 그대로 달아나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신 7개월이 된 아내의 임용고시 응시를 돕기 위해 화물차 기사 일을 하던 강씨는 당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 들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그를 ‘크림빵 아빠’라 부르고 애도했다.

허씨는 경찰 수사망이 좁혀지자 지난 29일 밤 11시 8분 경찰에 자수했다.

●고향집에 사고차량 숨겨

허씨는 사고 당시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수 전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씨 자수 이튿날인 지난 30일 박세호 청주흥덕경찰서장은 사건 브리핑에서 허씨의 자수동기에 대해 “허씨가 경찰 추적을 감지, 휴대전화를 꺼놓고 잠적했으며, 자살할 생각에 산에 올랐다가 ‘경찰에 사정설명이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에 하산했다”고 설명했다.

허씨 부인은 ‘자식이 2명이고 경찰수사에 두려움을 느낀 남편이 자살할까봐 걱정돼 자수의사를 경찰에 밝혔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허씨는 사고 당시 지인들과 소주 4병을 마시고 만취한 상태였으며 “사람이 아닌 조형물이나 자루를 친 걸로 알았다. 사고 4일 뒤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허씨 고향인 음성군 부모 집에서 사고차량인 윈스톰을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감식을 의뢰했다.

허씨 부인이 결정적 제보와 자수를 도운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경찰의 보상금이 지급될지에 눈길이 모인다. 보상금 지급 규정만 보면 허씨 부인이 수령대상이지만, 경찰은 사회통념과 여론 파장 등을 고려하면 그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사건 제보 보상금 지급 대상자 심사위원회를 열고 이에 대해 논의키로 했다.

●피해자 유족 “진솔한 사과”

피해자 강씨의 아버지 태호(58)씨는 허씨의 진솔한 사과를 요구했다.

허씨가 자수한 29일 “자수를 선택해 고맙다”고 용서의 손길을 내밀었던 태호씨는 허씨의 사고 이후 행적이나 경찰조사과정에서 그의 진술을 접한 뒤 허씨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태호씨는 “177㎝에 80㎏나가는 거구(아들)가 빵봉지를 들고 서면 사람이라고 보겠습니까, 강아지로 보겠냐”면서 “이는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원망하는 마음은 없지만, 진짜 잘못했다면 솔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무단횡단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사고가 난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아일공업사 앞 도로는 편도 1차선에다 인도가 매우 좁은 편이다. 공업사 건물 사이 도로에 맞은편은 무심천 뚝방길로 횡단보도도 없어 보행인들이 무단횡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찰은 “당시 정황상 횡단보도가 없어 무단횡단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태호씨는 “교차로 지점에는 도로 중앙 경계선이 잘려 있어 무단횡단이 아니다”면서 “횡단보도를 만들지 않은 건 청주시와 경찰이 사고를 방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 지역의 횡단보도 필요성을 검토할 계획이다.

●음주여부 등 처벌수위 관심

자수한 허씨가 구속되며 앞으로 처벌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경찰이 허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도주차량과 음주운전.

이 가운데 도주차량 혐의는 피해자가 사망하고 도주도 명백해 처벌을 면키 어렵다. 특가법상 도주차량 혐의의 경우 피해자를 사망하게 하거나 도주 후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받는다.

반면 음주운전 혐의 적용 여부는 미지수다. 허씨는 자수 뒤 경찰에서 “소주 4병을 마셨다”고 진술했으나 이미 시간이 지나 음주여부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

이처럼 뒤늦게 검거된 음주운전사범에겐 ‘위드마크’ 공식이 활용된다. 체중이 60㎏인 성인 남성이 18도짜리 소주 1병을 마시면 0.0615%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적용되는 방식이다. 공식대로라면 허씨의 음주수치는 0.26%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음주수치가 재판에서 적용될 지는 의문이다. 공식만으로 추정된 음주측정치가 유죄증거로 사용되려면 음주량·음주시간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대법 판례도 있다.

허씨의 ‘자수’가 정상참작을 받을지도 관심이다. 자수는 형법상 형량 감경사유지만, 일각에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허씨가 사고 후 19일이 지나 경찰서를 찾았고, 그동안 사고 차량을 음성 고향 집에 옮기는가 하면, 부품을 구입해 직접 수리하는 등 범행은폐를 시도한 정황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허씨가 음주사실을 자백한데에는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라는 점을 내세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고 후 굳이 거리가 짧고 넓은 길 대신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야산 옆길 등을 도주경로로 택한 것도 의심을 살 만한 행동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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